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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림 Nov 10. 2024

방금 내가 본 풍경

퇴사, 첫 평일 아침 출근길.


 번쩍 눈을 떴다. 눈앞의 먼지가 평화롭게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굵은 햇빛은 창문을 뚫고 들어와 벽을 두 개로 구분 지었다. 월요일 아침 7시 40분. 알람 없이 생체 시계로 깬 평일 아침, 내 심박수는 세상보다 고요했다. 이 시간에 조급하지 않던 적이 있었던가. 몇 년간 경미한 긴장으로 퀘스트를 깨듯 1시간을 보냈다. 게임은 끝났다. 출근 없는 생활 1일 차. 나는 신입 퇴사인이다.


 일찍 일어난 김에 아침 요가를 나섰다. 요가원은 버스 정류장 근처. 출근길을 체육복 차림에 민낯으로 걷는 내 모습이 낯설지만, 마음에 들었다. 지난주는 시계를 보며 전력 질주, 오늘은 하늘, 사람, 나무, 건물을 보며 걸었다. 나무엔 노란 계절이 물들었고, 하늘 저 높은 곳엔 구름이 걸려 있었다. 아스팔트 위 바퀴는 언덕을 오르다 이내 사라졌다.


 퇴근길 오른쪽 눈알을 굴려 훔쳐보던 동네 빵집을 처음으로 구경했다. 늘 비어 있던 선반은 황금빛 빵으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페도라며 베레모를 쓴 할아버지 네 분이 센강 근처 카페처럼 크루아상과 커피로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그동안 놓친 평화가 거기에 있었다.

 콰삭. 발밑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불쑥 침입한 구린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맡은 가을의 향, 은행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출근 만원 버스 탈 건 아니니까.

 신호등 앞에 섰다. 버릇처럼 과일가게로 시선을 돌렸다. 달리면서도 꼭 과일을 훑어보던 나였다. ‘한 바구니 사서 사무실 사람들이랑 나눠 먹을까?’ 철마다 과일이 바뀔 때면 고민했지만, ‘회사가 뭐 좋다고’, ‘이러다 버스 놓치면 어떡하지?’ 매번 미뤘다. 가져갈 사무실도, 나눠 먹을 사람도 없어지니, 지난 고민이 쓸데없이 그리워졌다.


 드디어 요가원 도착. 15분이 걸렸다. 지난주, 지난달 아침 모두, 정류장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늘어난 5분은 그동안 긴장으로 달린 길을 감각으로 걸은 결과였다. 나는 비로소 평화를 봤고, 계절을 맡았으며, 사람을 생각했다. 봉인되어 있던 감각이 깨어난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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