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이는 공무원이 된 후,
같은 시청에서 일하던 여미행과 연인이 되었고 결혼에 골인했다.
성실하게 일하던 모습, 맡은 업무를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
그리고 어디서나 단정한 미소를 잃지 않던 그녀의 모습은
유제이의 눈에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결혼 후 2년 만에 유지원이 태어났고, 5년 뒤 둘째 유장헌이 태어났다.
하지만 유제이는 내심 아이를 갖는 것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책임과 부담을 수반하는지
주변의 사례들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반대할 용기도 없었다.
여미행이 아이를 원했고,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수순처럼 여겨졌다.
여미행은 육아와 직장을 병행했다.
출근 시간에 쫓기듯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하자마자 반찬을 사들고 집으로 달려왔다.
저녁을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숙제를 봐주고, 다음 날 준비물을 챙기고 나면
11시에 가까운 시간.
그녀는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두통을 호소했고,
불면과 극심한 피로가 반복되었다.
병원에서는 불안장애라고 진단을 내렸다.
결국, 여미행은 휴직계를 내고 잠시 일을 내려놓았다.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최선을 다했는데… 남은 게 병이라니.”
거울 앞에서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던 여미행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유제이의 가슴을 콕 찔렀다.
그는 위로도,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 미안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그 침묵이 사죄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미행은 웃음을 잃어갔다.
그녀의 눈빛은 흐려졌고, 말수가 줄었다.
그 밝고 단정하던 여자는 이제 ‘버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유제이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가정이라는 게 이렇게 사람을 소모시키는 구조였나.”
“우린 함께 버티고 있는 걸까, 따로 무너지고 있는 걸까.”
그는 어쩌면, 자신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침묵의 대가로, 아내는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 거실은 조용했다.
아이들은 방에서 잠들었고,
유제이는 휴대폰화면 불빛 아래 여미행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미행은 아무 말 없이 쇼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오늘 병원은 어땠어?”
유제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똑같지 뭐.
스트레스 줄이라고… 약 좀 바꾸자고 하더라.”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깊은 무기력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그녀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덜컥 닫히는 방문 소리에 유제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겨진 거실, 적막한 공간에 앉아 유제이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이렇게 침묵으로 서로를 지나치게 된 게…’
아이들이 태어나고, 책임과 일정이 삶을 밀고 들어왔다.
각자의 몫을 묵묵히 감당하느라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여미행의 웃음도, 농담도, 장난스런 눈빛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쁘니까’, ‘지나갈 거니까’라는 핑계로 애써 외면해왔다.
‘그 모든 책임을 나눴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그녀 혼자 감당하게 했던 건 아닐까.’
그제서야 유제이는 깨달았다.
그동안 쌓아온 직장생활, 짜인 계획표, 하루하루의 반복이
모두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엔 마음이 비어 있었다.
삶이란 게 결국 ‘함께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가면 서로를 놓친 채 견디는 삶이 될 것 같았다.
아내가 무너지는 걸 곁에서 지켜보기만 한다면
자신의 인생도 이미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닐까.
유제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닫힌 방문 앞에 섰지만, 손잡이를 돌리진 못했다.
그저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
무언가를 다짐하려는 사람처럼.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지금 아니면, 영영 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