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여전한 학벌사회

by 시준아빠

지방의 작은 국립대를 졸업한 유제이는

우리 사회에서 ‘학벌’이 차지하는 자리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며 살아왔다.

학벌은 단지 졸업장이 아니라, 사회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이 되었다.

마치 이력서에 붙어 있는 ‘라벨’처럼,


사람들은 학교 이름 하나로 상대를 구분했다.

"인서울 대학 졸업한 9급 공무원"과

"지방대를 졸업한 9급 공무원"은 분명 같은 일을 해도 다른 대접을 받았다.

그 차이는 승진에서, 평가에서, 동료들의 대화 주제 속에서 드러났다.

겉으로는 공정하고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배경과 간판, 줄과 학연을 기준으로 줄을 세웠다.


공무원 사회는 그나마 학벌의 비중이 낮다고 말들 하지만,

그조차도 철저히 서열화된 인식의 일부였다.

"서울대를 나왔는데 왜 9급이야?"

"지방대인데 그 나이에 벌써 사무관이야?"

이런 말들은 능력보다 출신을 먼저 보는 이 사회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제이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평가의 출발선조차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사회의 기준은 어디서 시작했는가를 묻고,

개인의 노력이나 내면의 깊이보다

간판과 배경으로 사람을 서열화했다.


그렇다면 이 사회 전체는 어떨까.

학벌을 무시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학벌이 사람의 무게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린 곳.

면접장, 모임 자리, 심지어 SNS에서도

사람들은 묻지 않아도 어느 학교 출신인지 찾아보고 있었다.


유제이는 깨달았다.

학벌이 단지 한 번의 시험 결과가 아니라,

평생을 따라다니는 사회적 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 길을,

아이들도 따라가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 앞에서

조금씩 회의하고 있었다.


퇴근 후, 유제이는 주방 식탁에 앉아 있었다.

학원에서 돌아온 지원이는 가방을 내려놓고 간식부터 찾았다.

여미행이 밀키트로 빠르게 만들어준 떡볶이를 한 입 먹으며, 지원이가 말했다.


“아빠, 근데 이번 시험 수학이 진짜 어려웠어. 92점 나왔어.”


“어? 잘했네.”


“근데 반 평균이 95점이래. 나 하위권이야…”


지원이는 떡볶이 국물에 젓가락을 툭 담그며 고개를 떨궜다.

유제이는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점수가 전부가 아니야.’

‘대학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 점수 몇 점이 너의 전부는 아니야.’


입 안에서 말이 맴돌았지만, 끝내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이 위로인지, 회피인지, 무책임한 낭만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심코 내뱉은 그 한마디가

아이에게 더 큰 혼란이 될까봐 두려웠다.


“음…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뭐.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됐잖아.”


결국 평범한 말로 입을 닫았다.

지원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듯한 고개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제이는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내가 정말 믿는 가치를 아이에게 말하지 못하다니.’

그는 분명 대학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사람의 깊이, 생각하는 힘, 배려와 자율성 같은 것들.


하지만 그 가치들이 입시와 성적 앞에서는 늘 무기력했다.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현실을 버텨낼 무기였지,

철학이나 삶의 태도 같은 추상적인 말이 아니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믿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조용히 식탁에 놓인 물컵을 들어 마셨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