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

by 시준아빠

중학생쯤이었을까.

그 시절의 유제이는 학습 외의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음악, 예술, 책—누군가는 그것들을 통해 감성을 키우고 세계를 넓혀갔다지만,

유제이는 그저 주어진 교과서 안에 머물러 있었다.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은 건지, 관심을 가져도 되는 줄 몰랐던 건지.

어쩌면 그때의 그 막막함이 지금까지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지 못하는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무렵, 반 친구 중 한 명이 있었다.

박학다식했고, 음악과 영화, 예술에 유독 관심이 많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야, ‘쇼생크 탈출’ 꼭 봐. 진짜 인생 영화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반복되는 권유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를 빌려왔다.


커다란 포스터 속, 교도소에서 탈출해 두 팔 벌린 채 비를 맞는 팀 로빈스의 장면은

당시에도 워낙 유명했다.

비를 맞는 남자, 자유의 외침, 드라마틱한 구도—누구나 기억할 장면이었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제이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그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다.


그가 평생 잊지 못한 장면은, 마지막.

어딘가 중남미를 연상케 하는 푸르른 바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그리고 조용히 다가가는 한 남자와 기다리는 또 한 남자의 재회.

작고 낡은 배 한 척, 햇살을 머금은 하늘, 바람이 스치는 소리.

말도 없고, 드라마도 없고, 오직 자유와 평화만 존재하던 그 순간.


그 장면은 오랫동안 유제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유’라는 단어와 겹쳐진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직업이 아니라, 어떠한 상태였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하지만 유제이는 정반대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정해진 출근과 퇴근, 반복되는 문서 작업, 관행이라는 이름의 행정 시스템.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 촘촘히 짜여 있는 세계.


그는 문득 떠올렸다.


쇼생크 교도소의 수감자들.

오랜 수감 생활 끝에 가석방된 노인 브룩스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끝내 자살을 택했던 장면.

그는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렸다.

자유는 오히려 두려운 것이 되었고,

그는 구속이 사라진 순간 무너져내렸다.


그 장면은 단지 영화적 비극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으로 다가왔다.

이 직장을 그만둔다면 나는 정말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직장은 교도소고, 나는 적응된 수감자였다.

탈출을 꿈꾸면서도, 정작 벗어나는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다로 향하던 팀 로빈스처럼, 나도 어떤 끝을 향해 걷고 있는 걸까?

불현듯 유제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결심이 움트는 것을 느꼈다.

아직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

하지만 더는 외면할 수 없는,

그 바다를 향한 이끌림 같은 것.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