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바다, 새로운 감각

by 시준아빠

유제이의 첫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호주였다.

과거에 해외여행의 기회는 있었지만, 막연한 두려움과 익숙함에 안주하는 삶은

유제이에게 ‘낯선 세상’에 발을 내딛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삶의 방향에 대한 마음이 바뀌자, 세상도 조금씩 달리 보였다.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서 우연히 본


“해외에서 한달살아보기”


“각종 해외여행기”


그 영상들은 유제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를 끌어올렸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장기재직휴가를 쓸 기회가 생겼고,

여미행과 아이들 모두 설렘 섞인 긴장을 안고,

15일간의 말레이시아 자유여행이 시작되었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서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1시간을 기다린 끝에 투어 예약을 했다.

그리고 시작된 투어 두 개의 거대한 타워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중간 스카이 브리지는 투어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붐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카이 브리지에 올라서자

도시가 발 아래 펼쳐졌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벅차오르는 느낌이였다.


말라카, 문화의 시간 속으로 말라카로 이동했다.

한때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식민지였던 도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거리와 건물들.

한 걸음마다 역사와 문화가 뒤섞여 스며드는 공간이었다.

특히 존커 스트리트는 좁은 골목에서 느껴지는 향신료 냄새,

다양한 먹거리,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네덜란드 붉은 광장의 열기와 상징물

아이들도 신기한 듯 연신 사진을 찍었고

여미행은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렇게 고요하게 웃는 모습은 참 오랜만이었다.


쿠알라룸푸르 근교에 위치한 바투 동굴(Batu Caves).

도착하자마자 금빛으로 거대하게 솟아오른 무루간 상이 시선을 압도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272개의 가파른 계단.

여미행은 다리가 아프다고 했고, 유지원은 반쯤 투덜거렸다.

하지만 유제이와 유장헌은 말없이 천천히 한 계단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땀이 흘렀고 숨이 찼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계단은 내 삶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동굴에 도착해 바라본 힌두교 제단과 빛이 스며드는 석벽.

그곳에서 그는 어느 순간 멈춰 선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간 삶이라는 계단을 얼마나 의미 없이 올라오기만 했는지,

한 걸음 한 걸음 어떤 마음으로 올랐는지 떠올렸다.

바투 동굴은 종교적 신성함을 넘어, 유제이에게

‘지금부터는 의미 있는 계단을 오르자’는 결심을 심어주었다.


유제이는 생각했다.

삶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더 많은 장면을 눈으로 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감정을 나누는 것.


주석공장, 손끝에 남은 묵직함

여행 마지막 즈음, 쿠알라룸푸르 외곽에 위치한

<로열 셀랑고르 주석공장(Royal Selangor Pewter Factory)>을 방문했다.

스마트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공장을 돌아보며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고, 유제이는 대형 주석맥주잔을 직접 만져보는 체험을 하며

손끝으로 주석의 무게를 느꼈다.

주석의 차갑고 묵직한 감촉,

망치로 두드릴수록 형태가 변해가는 그 질감은

어쩌면 자신이 지금 두드리고 있는 삶의 방향과도 닮아 있었다.

그 여정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리셋, 방향의 전환, 감각의 회복이었다.


말레이시아의 푸른 바다, 이슬람 사원, 이국적 음식,

그리고 함께 걷는 가족의 그림자 속에서 유제이는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처럼만 산다면, 결국 나의 아버지의 삶을 되풀이할 뿐이다.

죽을 때 후회할 삶을 지금 살고 있다.”

바투 동굴을 오르던 그날처럼,


이제는 한 걸음이라도 의미 있는 삶의 계단을 올라야 할 때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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