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이는 사직서를 여전히 품속 깊은 곳에 접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분명 작은 균열, 아니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코인 투자 수익은 여전히 크지 않았다.
한 달 수익을 모두 더해도 월급의 1/10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요즘은 숫자에 휘둘리지 않았다.
조급함보다는 차분함, 불안보다는 관찰자의 시선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예전처럼 무표정하게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예전엔 늘 바쁘다는 핑계로 회피했던 회의나 대화에도 조금씩 귀를 기울였다.
복도에서 마주친 후배에게 “요즘 어때?” 하고 먼저 말을 건네는 자신이 어색하지 않았다.
커피 한 잔 들고 옥상에 올라가 멍하니 하늘을 보는 시간이 늘었고,
그 짧은 틈에서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곱씹어보곤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삶의 또 다른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 유지원이 다가왔다.
"아빠, 나 오늘 학교 유튜브 채널에 영상 올라갔어!"
"그래? 무슨 영상인데?"
"우리가 만든 ‘AI 시대에 필요한 공부’ 콘텐츠야. 내가 대본 쓰고 나레이션도 했어.
아빠 글 보면서 아이디어 떠올랐거든."”
유제이는 조용히 웃었다.
“그거 멋진 말이다. 아빠가 더 힘내야겠네.”
장헌도 여전히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었다.
구독자는 어느새 300명을 넘었고,
“초등학생 맞나요?”, “편집 진짜 귀엽고 센스 있어요” 같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화면 속에서 아들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기특하면서도 놀라웠다.
주말 저녁, 가족은 오랜만에 함께 집 앞 장미공원을 산책했다.
노을이 번지는 하늘 아래, 세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유지원이 말했다.
“아빠, 다음에 우리가족 넷이서 콘텐츠 하나 만들어볼까? 가족 프로젝트!”
장헌이 손을 번쩍 들었다.
“좋다! 내가 영상 만들게!”
유제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도 우리 이야기 한번 찍어보자.”
그 순간, 그는 느꼈다.
아직 퇴사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다른 삶’의 문턱에 들어서 있었다.
‘나만의 길’이라는 단어가 막연한 꿈이 아니라,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