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차장과 인도 사이, 버려진 가구들 사이에 한 그림이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거실 한켠에 걸려 있다가 이제는 버려진 듯, 사각 나무로 둘러진 그림의 테두리는 고급스러운 옛 모습이 변색되어 있었다. 비록 프린트된 유화 그림이었지만, 옅은 밤갈색의 원목 테두리는 그 주인이 이 그림을 한때 사랑하고 아꼈을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림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인도 옆, 버려진 진한 밤색 레자 소파, 여전히 쓸 만해 보이는 미색 원목 책상, 검은 천으로 덮인 플라스틱 의자, 그리고 황토빛 식탁 의자들 사이에 놓여 있었다.
지나는 길에 그 옆을 보면, 그림은 모서리가 하늘을 향한 채 방치되어 있다. 액자의 뒷면 합판에는 헐거워진 노끈이 늘어져 있지만, 그림 자체는 지나가는 이들로 하여금 멋스러움과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며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림 속 하늘은 연푸른 청색이었다. 구름들은 하늘을 방해하지 않으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그 아래 장미꽃이 만개해 있지만, 화가는 빨강, 흰색, 노란 장미들을 선명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장미 덩굴이 가득한 길은 언덕으로 오르는 작은 오솔길 같기도 하고, 드문드문 집들이 있는 길목 같기도 했다.
푸른 잎 사이 만발한 장미들은 생생하지만, 화가는 그 아래의 바위나 조약돌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요소들을 생략했다. 장미꽃들의 아름다움에 집중한 듯 보였다.
그렇다. 화가는 낮은 창공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장미 덩굴과 그 사이를 채우는 노랑, 빨강, 흰 장미꽃들, 그리고 덩굴 너머 푸른 허공을 묘사하며 풍경의 깊이를 담아냈다. 이 장면을 붓으로 담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조물주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림 중앙에는 희고 미색의 건물이 장미 덩굴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커튼이 실바람에 흔들리며 삼 층 높이의 집 창문에 드리워져 있다. 건물의 윤곽과 창문은 자연과 경계를 이루지 않고 흐릿하게 어우러져 있다.
저 집에 살고 있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고상하고 멋진 부부가 떠오른다. 짙푸른 남쪽 바다와 어우러진 하얀 대리석 집들처럼, 이 집은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 단순한 욕망 대신 평화로운 삶을 꿈꾸게 한다.
화가는 장미 덩굴 앞을 지나며 서 있는 두 사람을 그렸다. 그러나 그들은 선명하지 않았다. 화가가 인물화를 자신 없어한 것인지, 혹은 그저 한 줄기 빛처럼 자연스럽게 담아낸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선명하지 않아서 더 시선을 끌었다. 이들이 그림 속 집에 사는 부부일까, 아니면 장미 덩굴 사이를 산책하는 연인일까?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한 인물들이다. 꽃길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계절에 맞춰 깊어지는 사랑처럼 보였다. 그들은 들풀 하나를 건네며 말 없이 사랑을 나누는 듯했다.
이 그림은 이제 길가에 버려져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누가 이 그림을 그렸을까? 또 주인은 이 그림을 보며 어떤 꿈을 꾸었으며, 왜 이토록 좋아했을까? 아마도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추운 겨울, 두터운 옷을 입은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다. 학교가 끝난 초등학생들이 긴 코트 단추를 풀고 가방을 하늘로 던지며 지나간다. 하늘은 눈이 내릴 듯 흐릿하지만 한낮의 온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파트 높이만큼 자란 느티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서 있고, 그 아래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한 소나무와 사철나무들 사이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공원을 돌며 지팡이를 짚고 있다.
이 겨울 풍경 속에서, 버려진 그림 앞에 잠시 멈춰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마치 한 무리의 수선화를 발견한 듯 감사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