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남아 있는 글

by moonlight

나는 종종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쓴 글을 떠올리곤 한다. 졸업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내 기억 속에서 그 글은 여전히 멋진 문장으로 남아 있다.

그 글을 다시 읽고 싶어 친구를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그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친구가 직접 썼던 것일까? 아니면 어느 수필집에서 베껴 온 글이었을까? 3학년 졸업을 앞두고 학회지에 실렸던 글을 찾아보려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미색 모조지에 두꺼운 표지로 등사 인쇄된 학회지를 보관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 글을 다시 찾아 읽는다고 해도, 과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감동과 같을까?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 글의 실체보다, 사춘기 시절의 감성 속에 간직했던 그 느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글을 보고 싶고, 그 시절의 감성을 알고 싶어 문득문득 기억을 더듬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글의 한 구절은 이러했다.
"누가 떠내려 보냈는지 다리 밑으로 코스모스꽃이 떠내려와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그 글을 다시 상상해 본다.

누가 떠내려 보냈는지 모를 코스모스 몇 송이가 물결에 흔들린다. 잔잔한 강물은 소리 없이 꽃을 안고, 어디론가 흘러간다. 바람이 스쳤던 흔적일까, 아니면 손길이 닿지 못한 누군가의 마음일까.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 장면이, 내 마음에도 살며시 내려앉는다.

그 멋진 글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 문장이 내게 남긴 이미지는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있다.

아마도 미루나무와 자작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넓지 않은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한적하고 고요한 그 시내 위에, 통나무에 흙을 덮어 만든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자전거를 타고 두세 명이 함께 건널 수 있을 만큼 작은 다리. 그 다리 아래로 가을빛에 물든 코스모스 한 송이가 천천히 떠내려간다.
그리고 깊은 밤, 책상에 앉아 있던 그 친구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그 친구가 떠올렸던 강물과 코스모스가 내가 상상하는 그 시냇물과 똑같은 곳이었을까?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글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 글을 썼던 친구도 이제는 더 이상 그 순간을 떠올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친구는 우리 반에서 "바람둥이"라 불릴 만큼 멋을 부리던 학생이었다.

학교 마크가 반쯤 가려지도록 학사모를 눌러쓰고,
교복의 후크와 윗단추 두 개를 풀어헤친 채 겨드랑이에 책가방을 끼고 다녔다. 등하교 길, 학생들 사이에서도 멀리서 한눈에 들어오는 존재였다. 학교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동복과 하복, 계절마다 단 두 벌의 교복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출하는 데에는 열정이 있었다.

하복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흰 반팔 셔츠의 앞단추를 풀고, 같은 모습으로 가방을 겨드랑이에 낀 채 걸었다. 재촉해야 하는 등굣길, 빠른 걸음에 뺨이 달아오르면 모자의 채양을 45도로 치켜올리는 것 외에는 그의 스타일이 변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친구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혹시 여고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연애편지를 쓰다가 감성이 깊어져 학회지에 뜻하지 않게 멋진 글을 실었던 걸까? 나는 그런 상상도 해본다. 나는 한동안 비슷한 글을 찾아 뒤졌다. 혹시나 같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의 정원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우리 집에서 30리 떨어진 그 학교는, 봄이 오면 마치 청라언덕 위에 울려 퍼지는 교향악처럼
마음속에 꿈과 이상을 심어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기슭 아래에 자리 잡은 학교가 보였다. 산 아래에는 기와집들이 소담스럽게 모여 있었고, 길 양옆으로는 사각 대리석이 고성의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등굣길의 끝에 다다르면, 기숙사 주변을 따라 이어진 측백나무와 노송이 터널 같은 길을 이루고 있었다. 그 길은 고요하면서도 고풍스러웠고, 마치 시간을 멈추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운동장 위 언덕에 자리 잡은 학교 본관, 좌우로 길게 이어진 건물들, 목조 강당과 넓은 정원이 어우러져
그곳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가장 엄격했던 영어 선생님도 4월이 되면 그 풍경 앞에서 잠시 마음을 놓곤 하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만개한 벚꽃과 푸른 강변, 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마을의 모습. 그것은 우리를 창밖으로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장관이었다.

학교 앞마을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안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 사이로 주황빛 원통형 십자가가 선명한 교회가 있었다. 산 끝자락에 자리한 그 교회는, 바위와 나무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 친구가 쓴 글을 찾고 싶었던 이유는, 그저 한 편의 멋진 문장을 다시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글을 통해, 그 시절 우리가 느꼈던 감성과 꿈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그 글을 생각하며 사춘기 학창 시절을 뒤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