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홍
영산홍이 꽃 몽우리를 터뜨렸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많은 꽃망울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연한 초록빛 새순들 사이로 분홍과 붉은 꽃잎들이 무리를 지어 올랐다. 긴 겨울을 지나 앙상했던 가지들, 마른풀뿐이던 정원이 황량해 보였던 탓일까. 이른 봄, 그 꽃들은 내 가슴에 더욱 선명하고 고운 빛으로 다가왔다.
비발디의 사계 속 현란한 바이올린 선율처럼 꽃망울이 피어났다. 이렇게 고울 수 있을까? 엷은 파란 안개꽃을 앞세운 채, 연한 초록 곰취 사이에서 피어난 영산홍의 무리는 내 마음을 단번에 빼앗았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또 있을까?
잠시 상상해본다. 이 꽃을 그대로 꽃다발로 묶어 오월의 신부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나는 빨강과 분홍의 꽃망울을 크로즈업 렌즈에 담아 아내에게 보냈다. 봄을 전하고 싶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어머님 산소 둘레에 영산홍을 심겠다고 하셨다. 나는 한사코 반대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자연 속, 초록 잔디로 덮인 산소의 단정함이 좋았기에, 울긋불긋한 영산홍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넓은 산소 둘레에 정성껏 영산홍을 심으셨다.
그 선택엔 이유가 있었다. 어머님을 순애보처럼 사랑하셨던 아버지.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삶의 낙을 모두 내려놓고 그리움만 안고 사셨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고, 물에 밥을 말아 단무지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시던 날이 많았다. 바닷가 경치 좋은 식당에 모시고 가도, 입맛은 돌아오지 않았다. 간장게장 같은 별미에도 무반응이셨다.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지내셨다. 농사일도 놓고, 시골집 거실을 몇 바퀴 돌다 오후엔 낡은 트럭을 몰고 부여 부소산으로 다녀오시곤 했다. 올라가는 길 포장마차에 들러 커피 한 잔 나누고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나는 가끔 고향 인근 옛 보건소를 개조한 카페 ‘춘향소’에서 아버지와 차를 마셨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좋아하셨다. 이야기의 내용은 언제나 같았다. 동네 50 넘은 총각들이 장가를 못 간 이야기, 각박해진 세상 인심, 그리고 소소한 일상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님 산소 곁에 영산홍을 심었던 이유가 문득 이해되었다. 그 꽃들은 어머님을 향한 아버지의 그리움이자, 사랑의 흔적이었다.
올해 오월 연휴, 동생들과 함께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잡초를 뽑고, 잔디를 이식하고, 고사목을 정리하며 땀을 흘렸다. 문득 고운 피부에 머리를 단정히 빗으시고 웃고 계신 어머님의 모습이 활짝 핀 영산홍 속에서 겹쳐 보였다. 인생의 덧없음과 빠름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 전도서 중에서-
모든 것이 지나가고 반복된다. 그러나 사랑은, 그 반복 속에서도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다. 언젠가, 우리 모두 돌아갈 그 자리에서 붉은 영산홍은 또 피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