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정년퇴임 후 집에서 쉬는 일이 두려웠다. 하던 일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는 것이 막연한 걱정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은 세종에서 대전까지 출퇴근하는 아내의 아침 운전을 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 아내가 출근한 뒤 돌아오는 길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때로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개울길을 따라 걷고, 여고와 침신대 뒷산 길을 지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함께 정년을 맞은 그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고 직장에서도 함께했던 막역한 사이다. 친구는 퇴직 전에 공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전원주택지를 마련했다. 퇴직 후 혼자만의 놀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집터는 오랫동안 비어 있어 반쯤 허물어져 있었고, 오른편에는 벽돌 위에 투박하게 시멘트를 바른 작은 건너 채가 있었다. 친구는 그곳을 농막처럼 사용하며 한쪽에 색소폰과 반주기, 앰프 시설을 갖추었다.
집은 새 주인을 만나자 생명을 얻은 듯 바뀌어 갔다. 앞마당에 잔디를 심고, 주변에 돌담을 두르며 각종 야생초를 키우자 제대로 된 전원주택처럼 변해갔다. 허물어진 집터에는 마치 인형의 집처럼 아담한 초록집이 들어섰다. 그 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밤나무 밭이 능선 가까이 이어지고, 그 아래로는 가재가 사는 맑은 개울이 흐른다. 멀리 공주의 봉황산이 보이는 한적한 곳이라 악기를 마음껏 연습해도 방해받을 일이 없었다.
이곳에 오면 밤하늘의 별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뉴월에는 지천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와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때로는 푸른 잔디가 깔린 앞마당에서 직접 기른 상추, 고추, 가지를 곁들여 김장 김치와 삼겹살을 구우며 옛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거의 매주 이곳에서 만나 팝송과 대중음악을 함께 연주했다. 퇴직 후에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안식처였다.
나는 피아노 반주에 익숙하지 않았다. 35년 전 군인 교회에서 반주를 한 경험이 있을 뿐 대중음악과 팝송에는 문외한이었다. 반면 친구는 퇴직하기 오래전부터 음대생에게 색소폰 레슨을 받았고 음향 기기까지 갖춘 연습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더욱이 퇴직 무렵 유럽 연수 중에 색소폰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직접 악기를 사 올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그렇게 우리는 퇴직 후에도 다시 만나 종종 늦은 시간까지 함께 연주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연주가 서로 호흡을 맞추며 점점 발전해 갔다. 그러다 보니 고교 동창생의 정년퇴임 행사나 마을 페스티벌에도 초대되어 함께 연주할 기회가 생겼다. 친구 모임이나 작가 모임에서도 우리의 연주는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그럴때마다 우리가 가장 즐겨 연주한 곡은 김인배님의 석양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처럼 감성있는 Slow Rock 장르의 이 곡은 색소폰 선율이 아름다운 곡으로, 마치 붉게 물든 바닷가의 석양을 그려내는 듯했다. 우리는 대부분 연주의 마지막 곡으로 석양을 연주했고, 그리고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검푸른 바다 위로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고 금빛 구름 사이로 장엄하게 지는 해가 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색소폰 소리는 마치 외로움과 쓸쓸함을 위로하는 듯했다.
내가 살던 고향은 노을이 아름다웠다. 서해안 바다와 가까워서인지 산등성이 너머로 지는 저녁 노을은 더욱 크고 붉었다. 물든 구름에 따라 노을의 빛깔은 날마다 달랐다. 때로는 그 풍경이 마치 하늘나라 천성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나는 강둑 길을 따라 걸으며 석양을 바라보고 감성에 젖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석양을 보며 시인이 된 듯 글을 써보기도 했다.
가을걷이가 한창일 무렵, 동네 옆으로 누각처럼 세워진 큰 바위산 위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는 산은 단풍으로 온통 붉게 물들었다. 산 아래 작은 연못과 어우러진 산과 석양을 연신 바라보는 내 마음도 함께 물들어갔다. 서산 너머로 유난히 둥근 해가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저무는 석양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가을 추수에 바쁜 농부들은 그런 석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곡식을 털었지만, 내 가슴 속에는 그 풍경이 깊이 남아 있다.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가끔 저녁 무렵 양옥 지붕에 올라 서쪽 하늘의 석양을 바라본다. 고향에서 보는 붉은 석양과 친구와 함께 연주하던 석양이 겹쳐지며, 나는 여전히 그 순간 속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