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오후 일이 끝나면, 옷장에서 바지와 점퍼, 속옷과 양말을 챙긴 가방을 들고 아래층 샤워장으로 내려간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도 씻는 공간이 있긴 하지만, 비좁고 여름철엔 습기로 곰팡이까지 생겨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아래층의 넓고 쾌적한 샤워 시설을 이용한다. 한 번 허락을 받은 뒤로는 내 집처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아래층 샤워장은 높은 천장을 따라 냉·난방과 온수 배관들이 붉고 푸른색 테이프로 감겨 지나가며, 한쪽에는 시설자재와 탁구대, 체력 단련용 운동기구들이 놓여 있다. 실내체육관 처럼 넓은 시설공간은 녹색 페인트로 칠했고 쾌적하다.
샤워장내 시설물은 세련되지 않아서 시설직원들이 나름대로 실력을 발휘해 바닥과 벽에 타일을 깔고 개인별 사물함, 자외선 온열 전등까지 설치한듯 하다. 하지만, 샤워기를 틀면 냉·온수가 마치 용천수처럼 세차게 흘러나온다.
한여름에는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몸을 씻어낸다. 샴푸를 사용해 작업모에 눌린 머리를 깨끗이 감고, 긴 망사 타올에 물비누를 짜서 거품을 풍성하게 만들어 온종일 흘린 땀을 닦아낸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예전처럼 사우나를 자주 다니지 못하지만, 온수 레버를 돌리면 금세 뜨거운 물이 흘러나와 적당히 데워진 물이 머리부터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이 순간은 잠시나마 사우나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샤워를 할 때면, 마치 옅은 하늘을 나는 듯한 포근함이 온몸을 감싼다.
퇴직 후 공로휴가로 1년을 보내고, 6개월 동안은 동백회(우리 동네 백수 모임)회원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후 한국타이어 연구소에서 1년간 일했는데, 현대식 건물이라 샤워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퇴근 전에 샤워를 마치고, 얼굴에 스킨 로션을 바르며 깔끔하게 하루를 정리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다음으로 옮겼던 대한항공 연구소에서는 본관과 떨어진 기숙사 3층에 샤워장이 있었다. 느티나무 길을 따라 골프카트를 몰고 가 텅 빈 기숙사 건물에서 혼자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친 뒤, 몸이 가벼워진 채 붉은 벽돌로 지어진 연구소 건물을 바라보면, 마치 골프장의 너른 잔디밭을 연상하듯 호연지기를 느끼곤 했다. 오랜 시간 그 풍경을 바라보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까지 근무했던 곳마다 샤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던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샤워를 마치고, 우리 집 뒤 도솔산 기슭에 떠 있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운전해 퇴근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