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자락 깊숙한 곳, 장군봉 아래 자리한 작은 교회. 돌로 정성껏 쌓아 올린 종탑이 고즈넉한 멋을 더한다. 누렇고 흰 돌을 한 겹 한 겹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들어진 50여 미터의 원통형 종탑. 멀리서 바라보면 신작로 조약돌처럼 매끈하면서도 세월의 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지닌다.
교회는 산 능선을 따라 내려와 마을 뒤편, 높은 언덕 위에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차를 타고 오가며 스쳐 볼 때면, 교회는 마치 산과 하나 되어 품어 안기는 듯하다. 때로는 예술 작품처럼, 때로는 신비로운 풍경처럼 보인다.
종탑 아래엔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원추형 돌 지붕은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듯하면서도 전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정서 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오래된 기억처럼 친숙하다. 교회는 마치 한 조각가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작품처럼, 조용한 위엄과 따뜻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고요한 정원, 살아 숨 쉬는 소나무
언덕 아래 펼쳐진 교회 앞마당은 초록 잔디로 덮여 있다. 그 둘레를 따라 돌담이 세워져 있고, 사철나무와 회양목, 영산홍과 철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꽃이 만개하는 4월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정원은 돌계단을 따라 고풍스러운 소나무, 단풍나무,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향나무도 한 그루. 하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모두 저마다의 시간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궁금증을 품고 마침내 예배당의 문을 열었다. 삼각형 지붕 아래 자리한 교회 내부는 화려하지 않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은은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앞면 돌회랑과 흰 벽, 그리고 십자가가 조화를 이루며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날 이후, 이 정원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졌다. 영산홍과 사철나무, 측백나무의 가지를 다듬고, 나무 하나하나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정성스럽게 손을 보았다. 꽃이 피고, 잎이 돋아나는 계절마다 이 정원을 더욱 빛나게 하고 싶었다.
소나무, 하늘과 맞닿다
겨울이 찾아올 무렵, 나는 다시 교회를 찾았다. 허리춤에 전지가위와 톱을 차고 알루미늄 사다리를 펼쳤다. 소나무 잎은 마치 솜이불처럼 부드럽게 뭉쳐 있었고, 가지들은 빛을 가린 채 자라 있었다.
가지를 하나하나 다듬어 가자, 숨겨져 있던 연한 솔잎이 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이 소나무를 더욱 생기 있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 소나무들도 마치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나무 세 그루를 다듬고 나니, 중앙에 서 있는 향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가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있었고, 원형을 잃은 채 힘겹게 서 있었다. 목사님께 조심스레 말씀드리자, 교회가 지어질 때부터 함께한 나무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가지를 정리하고, 원형으로 다듬자 향나무도 다시 생기를 찾았다. 목사님께서 다듬어진 나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모습에 나 역시 작은 보람을 느꼈다.
정원을 가꾸며, 마음을 가꾸다
해가 저물 무렵, 목사님께서 쟁반에 사과와 따끈한 만두를 담아 오셨다. 하루 동안 정원에서 흘린 땀방울을 보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담긴 이야기를 되새겼다.
마지막으로 편백나무를 정리하고 나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온몸은 땀으로 후끈했다. 털실 모자를 벗으니, 하루의 노동이 남긴 흔적이 머리카락에 얽혀 있었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엔 나뭇잎 몇 개가 붙어 있었고, 멀리 보이는 교회는 저녁노을 속에서 더욱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날, 나는 한적한 사우나에 들러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천국을 닮은 정원을 꿈꾸며
이 교회를 설계한 건축가는 서울의 각박한 삶 속에서 병을 얻고, 휴양차 계룡산 자락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산속 오솔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곳에 새로운 교회를 지어야겠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친구를 따라 교회를 찾았던 기억이 전부였다는 그.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지만, 계곡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처럼 지난날의 삶을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한적한 마을에서 느낀 외로움이 그를 아름다운 교회 건축으로 이끌었을까.
나는 이 교회의 정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꿔갈 것이다. 천국을 닮은 정원을 꿈꾸며.
영산홍은 붉은 꽃을 피우고, 사철나무는 사계절 푸르름을 더할 것이다. 돌로 쌓아 올린 종탑 아래, 소나무들은 마치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듯한 자태를 뽐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교회의 정원을 거닐며 행복한 미소를 짓길 바란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며, 따뜻한 위로와 평온을 느끼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이곳에서, 조용한 기쁨과 감사 속에 정원을 가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