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설명을 받으면서 나는 프로그램이 무척이나 다채로운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첫번째로 '문화 활동 프로그램'이 있었다. 테마파크나 미술관을 견학하거나 지역 상권과 연계하여 장신구나 도자기 등을 만드는 창작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탐색해보는 시간이다. 두 번째는 '건강 증진 교육'이 있다. 단순히 운동이나 산책들을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쉼터 선생님이나 외부 강사들을 초청하여 금연 프로그램, 코로나 19 예방 교육, 정신 건강 치료 프로그램 등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놀랐던 부분이 바로 '자립 지원 교육'이었다. 쉼터생들의 원할한 자립을 위해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자격증 획득을 위한 학원 수업을 지원해주거나 주거지 계약 방법 등을 교육함으로서 쉼터생들의 미래를 설계한다.
실제로 나는 독립할 당시,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신 자립 지원 교육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선생님들의 안목으로 좋은 공인 중개사를 선택할 수 있었고, 다소 간의 편의 또한 배려받을 수 있었다. 공인 중개사가 내 사정을 언뜻 눈치채곤, 계약금을 깎아주었다고 한다면 믿어주겠는가?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가 속한 청소년 쉼터는 국가 지자체 소속이 아닌, 종교계 법인체에 소속되어 있었고 코로나 19로 인한 재정적 악화 여파로 많은 프로그램이 취소되거나, 다른 지역의 쉼터들보다는 다소 프로그램이 빈약했다. 수도권 내 쉼터에서 진행되는 활동비 지원은 꿈꾸기도 어려웠고, 자격증 지원도 모든 쉼터생들에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열의를 인정받아 쉼터에서 자격증 공부를 위한 지원을 받았지만, 다른 쉼터생들은 그러지 못했다. 모두를 전부 다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체험 학습 활동으로 돌아와서, 나는 솔직히 집돌이여서 안 가고 쉼터에 있고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쉼터는 기본적으로 등교를 해야 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곤 의무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반항심을 접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고 빠질까도 고민을 해보았지만, 첫 날부터 그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방학이었어서 학교를 가는 아이들 없이 모든 쉼터생들이 봉고차를 타고 프로그램이 있는 타지역으로 이동했다. 선생님의 설명으로는 복지 예산을 얼마나 어떻게 편성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질이 달라지지만, 이렇게 종종 타지역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쉼터에서 처음으로 외부 현장 체험 학습에 참여하게 되었다.
남자 선생님께서 봉고차의 운전대를 잡고, 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인솔하여 태웠다. 당시에 우리는 의무감으로 참여하는 티를 팍팍 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선생님들의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된다.
처음으로 참여한 프로그램은 현장 체험 학습이었다. 생태 공원과 동물원이 합쳐진 구조로 다양한 동식물이 구현되었다는 소개였다. 당나귀와 꿩들 그리고 물 속에서 헤엄치는 다양한 수중 생물이 호화스럽게 우리의 시야를 채웠다. 돈을 주고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쉼터생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돈이 없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로 흥미가 없었던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동식물들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현장 체험 학습에서 누구랑 같이 다니지? 라는 고민이 더 컸었던 것 같았다. 아직 그렇게 친한 사람도 없었고, 학창 시절에는 늘 겉돌았던 기억이 비수처럼 내 심장을 콕콕 찔렀다. 하지만 그런 내 불안감을 예상이라도 했던 건지 쉼터 선생님들은 혼자 다니는 나와 함께 다니며 생태 학습관을 천천히 구경했다. 민수는 멋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태현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표정은 퉁명스러웠는데, 설명문은 잘만 읽더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친해졌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쉼터생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야 나는 생태원 탐방에 흥미를 붙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가족들과 생태공원을 방문한 적도 없었다.
여기서 태현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보자면 쉼터에는 속칭 ‘군기담당’라는 게 있다. 나이가 가장 많던, 리더십이 있다는 이유든, 쉼터생들이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사회 복지사님들과 협력하며 무게 중심을 잡는 사람이다. 우리 쉼터의 군기담당였던 ‘태현’은 자기희생적인 친구였다. 솔직히 생긴 건 많이 무섭게 생긴 친구였는데, 나는 그의 얼굴만을 보곤 일진(내지는 양아치)인 줄 알아서 조금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맙소사 세상에! 하필이면 나를 챙겨주었던 '민수'와 '태현'이 무척이나 친밀한 관계였던 것이다.
서로 형 동생하면서 사이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곤 솔직히 질투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설마하니 민수가 나에게 태현을 소개해줄 줄은 몰랐다. 왜 그런 친구가 있지 않은가. 셋이 모여 있었을 때는 즐겁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둘이서만 있을 때는 할 말이 없는 친구 사이. 나와 태현이 딱 그런 사이였다. 하지만 이런 서먹한 관계는 태현의 호의로 금세 허물어질 수 있었다. 생태원을 탐방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쉼터생들은 각자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우산을 구매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태현이 내게 우산을 건네주었다. 분명히 아직은 어색한 사이였는데, 나는 이런 태현의 배려가 너무나 고마웠고 감동적이었다.
생기기는 조폭 같이 생긴 친구가 이렇게 우아한 다정함을 보이다니. 상대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던 내가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기를 내서 먼저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 덕분에 나는 태현과 상당히 친밀해질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태현은 상당히 배려심 넘치는 친구라 식사 정리와 설거지도 직접 혼자서 척척 해내는 친구였다.
쉼터생들과의 이야기는 즐거웠다. 생태원을 걸으면서 동물들을 보며 키우고 싶은 동물들을 말해보기도 했다. 역시 아이스 브레이킹 하는 데에는 공통 분모가 있어야 한다. 나는 쉼터생들이 선생님들께 음료수를 사달라고 조르는 부분에서 상당히 놀랐다. 솔직히 복지 선생님들이라면 직장이니까 귀찮고 짜증나고 일에 돈을 쓰기는 싫었을 텐데, 흔쾌히 음료수를 사주시는 모습에서 더욱 놀랐다. 이 모습에서 쉼터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쉼터생들을 챙기려 한다는 모습을 알 수가 있었다. 쉼터에서는 정서적인 부분은 채울 수 없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럴 수가 있다고. 막연히 복지사 님들에게 쉼터란 직장인 것만은 아니라고.
쉼터 선생님들은 우리들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계셨을까? 연민이었을까? 그래도 어른들이 보여주는 호의란 내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쉼터생 중에서는 쉼터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선생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 쉼터생에게 다가가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셨다.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말이다.
나라면 참으로 힘들고 마음 아팠을 텐데, 선생님들은 프로다운 마음가짐으로 따뜻하면서도 무뎌진 마음으로 우리를 대했다. 사랑을 베풀 수 있을 때는 베풀었고, 쉼터를 지키기 위한 규율을 집행할 때는 칼 같았다.
쉼터로 돌아가는 봉고차 안에서 선생님께서는 평소에는 절약적으로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지만, 겨울이나 여름에 한 번씩은 국내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고 말하셨다. 내가 입소한 시기는 안타깝게도 코로나 시기와 연말이었던 관계로 겨울 여행에 참여하지 못했었다고 하셨다. 본래라면 스키장 여행에 참여했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참으로 아쉬웠다. 이런 분위기와 프로그램으로 여행을 간다면 꽤 즐거웠을 텐데. 선생님은 웃으면서 쉼터에서 퇴소만 안 한다면 나도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하셨다.
그렇게 나는 제각기 웃고 있는 쉼터생들을 보고는 대체 왜 이런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지 궁금해했던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이전에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왜 필요한지 몰랐다. 돈이 있으면 자립을 위해 생활비를 지원해 주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하나라도 더 짜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필요했음을 안다. 쉼터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기념할만한 추억이다. 비록 우리에게는 가족은 없지만, 그것을 대신할만한 것이 있어서 현재에서 과거로 고개를 돌려봤을 때 그래도 나쁜 일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지-라고 기억할 추억이 된다. 지금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