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난 날을 축하받고 싶어한다. 마음이 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도 따뜻한 축가와 선물들을 은연 중에 바란다. 그리고 그건 쉼터 입소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축하 따위 필요 없다고 하는 쉼터생이라도 간단하게나마 음료수라도 개인적으로 챙겨주면 그렇게나 기뻐한다.
내가 입소한 지 한 달이 지났고 마침내 월말이 되어서 생일 파티가 열렸다. 솔직히 나는 쉼터에서 생일 파티가 열리는 줄 몰랐었다. 아무래도 나도 쉼터생이지만, 쉼터라고 해서 이렇게 정이 넘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쉼터라는 게 아무래도 막연히 숙식만 제공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쉼터생들의 정서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이는 쉼터나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상처받을 기회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고로 쉼터에서의 생일 축하 파티는 3개월 간격으로 열린다. 각 아이마다 생일을 챙겨주기에는 인력과 자금이 부족해서 세 개의 달을 묶어 중간 달에 축하하는 방식으로, 1, 2, 3월달 생일을 2월달에 축하하는 식이었다. 생일 파티에서는 선생님들이 직접 주문하신 햄버거, 피자, 치킨들과 콜라를 갖고 생일 파티를 연다. 생각해보면 케이크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인스턴트를 포식할 기회라고 여겨 들떴던 기억이 난다. 쉼터생들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어 여가 생활도 잘 못 누리는 형편인데, 햄버거나 피자를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겠나. 나라도 생일 파티가 기다려질 형편이었다.
그렇게 생일 축가를 부르고 한창 음식들을 마음껏 포식하고 있을 무렵, 태현이가 충격적인 소식을 발표했다. 곧 군대에 가야 한단다. 솔직히 나는 쉼터생이라면 군대 입대가 면제될 줄 알았다. 물론 내가 안 가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20살이 넘어서 쉼터에 입소한 경우이었으니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현은 경우가 다르지 않나. 중학교 시절부터 쉼터에서 생활했고, 정상적인 가정이 부재했더라면 국방의 의무는 수행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당시의 나는 태현의 가정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잘 곳을 구하지 못해 온풍기 옆에서 잠들어야 했던 경험이라던지, 늘상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험상궂은 얼굴을 해야만 했다든지 말이다. 그렇기에 태현의 상황이 더더욱 안타깝고 우울했다. 내가 가는 건 상관 없었다. 하지만 나보다 불우한 이가 가는 건 상관이 있었다.
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드려 하는 것인가. 사실 청소년 쉼터생이 군입대가 면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고아의 군면제 조건이 13세 이전에 부모님 양쪽 모두가 돌아가시고, 부양의무자가 없는 경우. 혹은 만 18세 이전에 아동보호시설에서 5년 이상 양육된 자. 그리고 가족관계등록부상 부모를 알 수가 없는 경우다. 우선 첫 번째의 경우, 쉼터 아이들은 ‘살아 있는 부모’에게 가정폭력을 당해 들어온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해당이 안 된다. 또한 쉼터는 여성 가족부 산하 시설로 보건복지부 산하 시설인 양육시설과는 다르다. 쉼터의 목적 자체가 “일시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동보호시설의 혜택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두 번째 경우에도 효능이 없다.
여성 가족부와 복지부의 청소년 정책 관할 중복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이야기해서는 입만 아프다. 이 부분은 정책적인 부분으로 내 정치적인 사견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행정적력의 낭비와 법안의 구멍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그것 아는가? 대학교에서는 특별전형으로 복지 시설의 아이들을 뽑곤 한다. 하지만 개중에 청소년 쉼터생들의 비율은 현저히 적기만 하다. 왜냐고? 그런 제도가 있는지 잘 모르고, 대학교 입시 제도와 전력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의지 이전의 능력에 대한 문제였다.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쉼터생들은 대부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릴 것이다. 고학력이 필요한 기업에는 입사도 지원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새 그렇게 정해져 버렸다.
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 중에서 재수가 없는 것들을 뽑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두 종류를 선택하겠다. 하나는 부모가 있어서 불행한 친구들. 다른 한쪽은 부모가 있어서 불행한 친구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롤모델의 부재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테고, 생계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심지어 가장 아끼고 소중해야 할 존재에 대한 원망과 고달픈 인생에 대한 원한이 합쳐져 부모를 증오하게 되고,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 혐오하게 되는 일련의 굴레까지 존재한다. 나는 감히 양측 중 어느 한쪽이 더 불행한지 판단하지 못하겠다. 가장 믿었던 존재에게 배신을 당했건, 그 대상이 애초에 부재했건 간에 둘 다 슬픈 이야기니까 말이다. 하지만 국가에게 이건 너무나 간단한 문제였나보다. 하기사 부모 없는 아이들도 조건부로 끌고 가는 게 국가란 존재가 아닌가. 몸이 불편해도,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어도 희생을 강요하는 국방의 의무였다. 고아라도 13세 이전에 부모를 잃지 않으면 군대 입대라니?
깜짝 입영 발표가 벌어진 뒤에 나는 태현과 부쩍이나 가까워졌다. 대체 그 험악한 인상에 애니메이션은 왜 좋아하는지 몰랐다. 내가 유튜브에 있는 오타쿠 채널을 들켜 강제로 덕밍아웃을 당한 뒤로 태현은 지신도 오타쿠라며 웃으며 같이 덕질을 했다. 태현의 불우한 가정사도 들었다. 나는 태현이 내게 말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누군가에게 꼭 털어놓고 싶었구나-라는 감상을 느꼈다. 쉼터의 베란다에는 탁구대가 놓여 있었다. 탁구는 쉼터 내에서 무척이나 인기인 스포츠였는데, 맏형인 명수 형이 재외 동포인 두두를 끌고와 하루 종일 탁구를 쳤다. 나는 평소에는 베란다에 있는 책장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독서하기를 즐겼지만, 태현의 강압에 못 이겨 탁구대에 섰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태현과 치킨을 걸고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돈이 없다고 말했지만, 녀석이 먼저 시작하는 게 아닌가! 결국 나는 지고, 찌질하게 한 번 봐달라고 했다. 그런데 대체 어느 부분에서 마음에 들었던 건지 태현은 군대를 간 이후에도 연락을 나누자며 연락처를 교환했다. 나는 대체 어디에서 호감을 느꼈는지 궁금해하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떠나기 이틀날 전, 태현과 술을 마셨다. 대학교를 다닐 적에도 술을 즐기지 못하던 아웃 사이더였던 나에게 직장의 회식으로 단련된 태현은 견디기 버거운 적수였다. 나는 태현이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보았다. 마지막 날, 태현은 군대를 쉼터생들에게 족발을 선물해주고 떠났다.
태현이 떠나고 쉼터에는 여느 때처럼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남자와 초등학생 고학년 그리고 잘 씻지 않아 기피 대상이던 형이 짧게 머무르다가 떠났다. 사람이 오고 가는 건 쉼터의 특성이라 누구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일이다. 그런데 태현이 떠나가고 나서 그동안 태현이 수행해왔던 일들이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서 태현이 설거지를 하면, 내가 뒷정리를 도왔을 터였다(혼자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자발적으로 나서서 도왔다). 하지만 태현은 이제 없고, 우리들이 나눠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쉼터생들은 누구도 나서지 않았고, 자질 구레한 일들은 당직 선생님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작정 설거지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일도 꺼려졌다. 내가 희생하기 싫다는 뜻이 아니라, 이 정도 일은 나눠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나는 우선 나와 의견이 같은 이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설거지를 하자고 주장하면 '나댄다'라고 여겨질까봐 꺼려졌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자기 주장이 확실하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 위주로 만나 내 의견을 피력했다. '민수'와 '명수' 형이 나와 뜻을 같이 했다. 나는 이 둘의 지지를 받아 다른 사람들을 포섭했고, 과반수 이상을 포섭한 뒤로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설거지를 비롯한 많은 쉼터 관리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는 이미 결정된 사안을 다시 확인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지만, 모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이로 인해 쉼터생들은 태현의 잡무를 분배받게 되었다. 나는 이 일로 그동안 태현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스스로 희생해 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태현의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쉼터에 잘 적응한 것처럼 태현도 군대에서 잘 적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심각한 오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