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연인을 만들고, 친밀한 관계의 지인을 만들어도 어딘가 어긋나고, 삐그덕 거리는 부접합 부분이 생겨난다고. 그래서 쉼터에서의 사랑은 건강하지 않다. 이건 비단 연애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호의와 배려도 포함되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쉼터의 아이들은 타인의 사랑과 배려를 대하는 법에 서투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너무나 어설픈 호의를 보였다가 이용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명수 형은 내 명치 쯤 오는 신장의 맏형이었다. 명수 형은 쉼터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를 만큼 애정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내 신장이 170cm이니, 명수 형은 상당히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형은 가족의 온정을 받지 못했고, 결국 쉼터에 오게 되었다. 형은 남들보다 느리고, 조금 어리숙한 편이었다. 사람을 너무 믿었고, 그래서 자주 다쳤다. 주로 마음을 말이다.
명수 형은 전 여자 친구의 인스타를 염탐하고 쪽지를 보내는 다소 찌질한 남자였다. 언제는 컴퓨터실에 앉아 페이스북으로 전 여자친구의 근황을 묻는 형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명수 형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명수 형은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음에도 많이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고,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는 나보다 더 미숙해 보였다. 사랑을 원했고, 사랑받고 싶어 했으며, 그 때문에 상처받았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내심 무척이나 안타까웠던 감정을 가졌었다.
쉼터생들은 그런 명수 형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존중하지도 않았다. 내가 오기 한참 전부터 있었던 명수형은 남들보다 어리숙했기에, 이를 이용하는 이도 많았다고 한다.
누구는 명수 형이 틱톡에 올린 댄스를 보면서 비웃기도 했다. 솔직히 영상으로 올린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춘 춤은 웃기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싫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숨기지 않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연애 같은 건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제법 새로웠다.
명수 형은 나를 제법 살갑게 대했는데, 내가 허리 디스크가 있다는 것을 알자 과거에 배웠다던 마사지 기술로 내 몸을 풀어주기도 했다. 나도 고마운 마음에 명수 형을 마사지 해줬더니 형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힘 조절이 무척이나 서툴렀기에 적잖이 아팠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정말 친형제처럼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작은 친절을 교환하며 우정을 쌓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친절이 화답되는 건 아니었다.
명수 형은 근면하고 성실했다. 공공근로 사업으로 일자리를 얻은 명수 형은 하루 종일 복도를 청소하며 돈을 벌었고, 그 일을 하면서도 단 하나의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다. '물론 힘들지만 안 할 수는 없다'. 명수 형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언젠가 내가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어디에 쓰고 싶냐고 물었더니 ‘나도 몰라’라는 답변을 받았다. 뭐 솔직히 돈을 버는 데에 이유가 어디에 있나, 그냥 살기 위해 버는 거지. 나는 그렇게 납득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명수 형은 독립을 위한 재정적 자립을 이루어 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랬던 명수 형이 요즘 썸을 타는 사람이 생겼다고 기뻐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다소의 불안감을 억누르고 축하해줬다. 그 이후로 명수 형은 비싼 약정이 딸린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평범할 때는 달에 한 번, 심할 때는 달에 두 번씩 바꿨다. 당연히 명수 형은 이를 숨겼지만, 결국 발각되었고 쉼터 선생님들은 난리가 났다. 알고 보니 썸을 탄다는 여자가 지인의 가게에서 계속해서 휴대폰을 바꾸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명수 형은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쉼터 선생님들이 이 일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명수 형의 통장은 텅장이 된 상태였다. 휴대폰 약정은 취소하지 못하고, 돈만 날렸다고 했다. 당연히 여자는 떠나갔다.
세상에는 사람을 속여서 돈을 빼먹는 사람이 정말로 많구나-라는 감상을 가졌던 사건이었다. 타인의 호의를 이용하다니. 명수 형이 어떻게 돈을 벌어왔는지 아는 나로써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언제는 명수 형을 찾아온 양아치가 쉼터에서 행패를 벌인 적이 있었다. 원래 그 아이도 쉼터에 속해 있던 아이였지만, 지속적으로 명수 형을 착취하면서 퇴소당했다고 한다. 양아치는 명수 형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쉼터 선생님들과 말다툼을 벌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상대는 명수 형이 가진 돈을 노리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조금 어리숙하고 인정에 약한 면모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이용해보려 한 것이었다. 당시를 회고해보자면 무척이나 분위기가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남자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이 양아치를 상대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선생님들은 그 아이에게 위압감을 행사하지 않았다.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그 아이를 걱정하는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무척이나 앳되게 생긴 중학생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학급에서 볼법한 평범해 보이게 불량한 아이였다. 그 뒤로도 그 중학생 아이는 몇 번이고 쉼터를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도대체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나는 명수 형이 겪은 여러 불우한 사건들을 들을 수 있었다. 명수 형은 장애인 복지 정책의 대상자로 주거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이를 쉼터의 질 나쁜 이들이 멋대로 주거지를 점거하면서 악용을 했다고 했다. 또 언제는 내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민수가 과거에 명수 형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음을 고백했다. 나는 그때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또 언제는 질이 안 좋은 가출팸이 국가에서 지원해준 명수 형의 집을 무단으로 점거한 적도 있었다.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밖에도 명수 형은 쉼터에서 많은 착취를 당했다고 한다. 잠에서 일어나고 이부자리를 정리할 때에도 몇몇 쉼터생들의 몫까지 떠맡아서 정리해야 했다고.
명수 형은 쉼터 선생님을 아버지로 부르지만, 쉼터 선생님은 그러지 말라고 대답한다. 이는 지나친 편애를 막기 위함임을 알고 있다. 만약에 명수 형과 그 선생님이 지나친 애착 관계가 형성된다면 형평성 측면에서 어긋나고, 다른 쉼터생들이 역차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명수 형의 아버지라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이유가 뭘까. 명수 형의 사랑은 보답 받지 못한다. 그저 명수 형은 사랑을 했을 뿐이다. 이성을 사랑하고, 동생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명수 형의 사랑은 써먹기 좋은 도구로 취급될 뿐이었다. 나는 부디 언젠가 명수 형의 사랑이 보답받기를 원한다. 더는 이용당하지 않고, 누군가의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은 언제나 냉혹하지만, 어딘가에는 명수 형의 선함을 알아주는 이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형이 사랑을 주는 것만큼, 언젠가 자신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깨닫기를 바란다. 그래도 한 명쯤은 명수 형의 사랑에 보답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