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인 중 누군가가가 울고 있을 때, 위로를 해줄 수 있는가? 아니면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라며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 노력하는가? 안타깝게도 나는 후자였다. 이건 내가 행했던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고백이다.
우리 청소년 쉼터에는 두두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이 어린 두두는 한국계 중국인이었고, 더 높은 교육의 기회를 찾아서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두두에게는 한국에 거주하는 삼촌이 있었다. 처음에는 흔쾌히 두두를 맡아주기로 한 삼촌이었지만, 나중에는 집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들었을 뿐, 두두는 말을 아꼈다. 내가 함부로 추측하기 조심스러운 사정이었다.
두두는 한 겨울에 놀이터에서 잠을 청하다가 신고를 받고 온 사회복지사 님들의 손길에 구조되었다. 두두는 한국말이 어눌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실제로 나와도 부모님을 언급하는 일이 있어서 싸운 일이 있었다. 그 때, 두두는 나에게 무릎을 꿇었다. 나는 공부를 하고 있느라 책상 앞에서 책을 읽느라 모르고 있었는데, 뒤에서 그러고 있었다. 직접 사과할 용기가 없어서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한국말이 서툴러서 실수한 걸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속좁게 행동했나 싶다.
그것뿐만 아니라도 두두는 한국계 중국인, 소위 조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쉼터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적인 신분 자체가 모두가 평등해야 할 쉼터에서 또 다른 장벽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딱히 편견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은 한국 문화를 영위하며 웃고 떠들 때 두두는 그러지 못했다. 농담 도중에도 한국말의 뜻을 물으며 흐름을 끊기 일쑤였다. 두두는 쉼터생 중의 쉼터생이었던 셈이다. 남들은 쉼터에 적응하고 앞으로 먹고살 일을 걱정했다면, 두두는 이에 더해 한국 자체 적응하는 일까지 노력해야 했다. 특별히 성격이 모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회성이 넘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더더욱이 그러했다. 두두는 날이 갈수록 소심해져만 갔다. 원활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두두는 앞서 소개한 명수 형과 돈독한 사이를 자랑했다. 둘은 하루 종일 Tv를 시청하며 드라마 야인 시대를 즐겨보았다. 야인시대의 주인공인 김두한이 적대하는 인물들을 무력으로 하나 둘씩 쓰러뜨릴 때마다 무척이나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두두도 김두한처럼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을 향해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고 싶어 했던 건 아닐까. 어떤 때는 몸을 만들겠다고, 쉼터에 있는 헬스 기구를 이용하여 경쟁하듯이 운동했다. 물론 드라마를 보고 감명받았을 때만 운동을 했기에 몸이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두는 민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민수는 형이 형 다운 걸 좋아했는데, 두두는 말도 어눌했고 자신감도 부족했다. 솔직히 나라도 외국에서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된다면 똑같이 자신감이 없어질 테지만 말이다. 사실 그것뿐이었다면 민수가 두두를 싫어하지는 않았겠지만, 두두는 자신을 무시하는 민수를 싫어하는 티를 냈다. 하루는 자고 있는 민수를 두두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일이 있어서 둘이 크게 싸울 뻔 한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아라 평소 자신과 사이가 좋지 못하던 사람이 자신의 자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민수는 이것을 시빌호 받아들였고, 폭력 사태로까지 번질 뻔했다. 이런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는 복잡하고 미묘해서 쉼터 선생님들이 함부로 건들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직접적인 폭력 행사 시 퇴소 조치라는 말을 반복해주는 것뿐이었다.
두두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돈을 벌어서 휴대폰도 구매하고 싶어 했고, 맛있는 군것질도 먹고 싶어 했다. 하지만 두두는 재외동포였고,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우연히 치킨집 사장님이 두두를 고용하고 싶다는 의견을 타진했지만, 결론적으로 흐지부지 되었다. 낙담한 두두는 이틀간 무력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명수 형이 외출한 어느 날 두두가 거실에서 혼자서 운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았다. 쉼터에서 안 슬픈 사람은 없고, 그것을 티를 내는 사람은 배려가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특히나 어떤 쉼터생들은 타인의 아픔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안 슬프고 억울한 사람이 있겠냐고 속으로 비웃었다. 어지간히 친한 게 아니라면 위로조차 해주지 않았다. 두두가 취업에도 실패하고, 친했던 명수 형과도 관계가 소홀해져 슬퍼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소홀해진 이유도 명수 형이 독립을 선언하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두두가 자존심이 상할 것을 염려해 위로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사람의 슬픔은 수치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고 믿고 있었다. 이는 내 경험에 기반한 생각이었다. 내가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며 슬퍼했을 때마다, 어른들의 호의를 바랬을 때마다 거절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시리도록 증오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그런데 그 때는 그걸 몰랐고, 위로해주지 못했고, 가만히 방치했다.
한 가지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 동갑내기 친구 ‘광휘’가 두두에게 울 거라면 들어가서 울라고 말한 것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나 어이가 없어 언성을 높이고 싸우게 되었다. 약간 원래부터 독특한 친구이기는 했지만, 너무 심한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그 친구와 크게 싸웠지만, 나중에는 그 친구가 나에게 후회되는 일이라고 고백했다. 솔직히 방으로 보내려 했던 친구와 위로해주지 않은 나나 거기서 거기이지 않을까 싶다. 그 친구 딴에는 울면 분위기도 안 좋아지고, 쉼터에서 자기 처지를 한탄하는 건 ‘금기’에 가까웠기 때문에 경고를 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뒤로 두두는 급격히 살이 찌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먹는 식사량이 늘었고, 좋아하던 외출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혼자서 울고 있을 때,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위로를 바랐으면서 대체 왜 두두를 위로해 줄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반드시 두두를 위로해주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그 때 너를 위로해줬어야 했는데, 너무 내 위주로만 생각했다고.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네게 위로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정말로 미안하다, 두두야.
사실 내가 쉼터에서 있었던 긍정적인 일들을 위주로 언급하다보니 청소년 쉼터의 여러 어두운 점들을 놓칠 수가 있다. 내가 두두의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다른 예를 들자면 의외로 부모와 사이가 좋은 경우라면 그 부분에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 애초에 가정 폭력이나 가정 해체 같은 경우가 아니면 쉼터 내에 입소하기도 어렵지만, 간혹 가족끼리 사이가 좋은데도 헝거 할 수 없는 이유로 가정이 해체된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이런 경우의 아이가 쉼터에 입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우리 청소년 쉼터가 첫 쉼터였다.
본래 재수를 하던 아이였는데, 가정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공부도 할 수 없게 되고, 집에 거주할 수도 없게 되었던 이유로 입소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정말 사소한 말실수로 본인의 가정환경을 노출해 버렸다. 덕분에 그 아이는 묘하게 붕 뜬 채로 쉼터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또 내가 거주했던 쉼터는 중단기 쉼터가 아닌 단기 쉼터였다. 어떤 때는 가정 폭력을 피해 도망쳐 온 초등학생 고학년 아이가 있었다. 쉼터생들은 그 아이를 딱하게 여겨 이것저것 챙겨주며 돌보았지만, 하루도 안 돼서 어머니가 데리러 왔다. 이별과 만남은 청소년 쉼터에서 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서로의 공통점을 파악하며 오랫동안 쉼터에 거주할 사람인지, 잠깐만 머물고 갈 사람인지를 파악한다. 이건 차별이라기보다는 괜히 마음 아플 일을 적게 만들 지혜가 아닐까 싶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청소년 쉼터에서는 어느 정도 타인과 선을 긋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서로 상처 받지 않을 정도로, 설령 나중에 뒤돈다고 해도 아프지 않을 정도의 촘촘한 경계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