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이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청소년 쉼터를 바라보는 상반된 두 가지 시선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호오와 선악을 따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가해지는 시선은 퍽이나 명확한 것이었다. 적어도 호오의 면에서는 말이다.
우선은 대표적인 긍정적이고 헌신적인 시선이었던 복지 선생님들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쉼터에는 사회 복지사 님들을 포함하여 그 밖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저녁부터 야간을 넘어 아침까지 쉼터에는 남자 당직 선생님들께서 거주한다. 내가 있던 쉼터의 당직 선생님은 두 분으로, 평일마다 하루씩 번갈아가며 우리들을 케어해주셨다.
당직 선생님들은 서류 작업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쉼터생들이 쉼터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회 복지사 선생님들과 연계하여 많은 문제들을 처리한다. 특히 야밤에는 쉼터생들이 갑작스럽게 아프거나, 다칠 수 있으므로 잠을 자지 않고 사무실에서 대기하신다. 우리들이 편안하게 잘 동안 선생님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해 한 몸 희생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한창 물류 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던 형은 선생님이 지각하지 않도록 깨워주기도 하셨다. 이제 아침이 되면, 대다수의 쉼터생들은 등교를 준비한다. 그렇다면 아침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씻기고 밥을 짓는다.
아무래도 준비에 소홀히 했다가는 쉼터생들이 추문에 싸일 이유가 되거나 괴롭힘의 이유가 되기에 더더욱 꼼꼼하게 준비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잘 씻지 못해서 무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세심함에 크게 감동했다. 솔직히 보호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는가. 문득 씻지 못하고, 면도도 하지 못하고 학교를 갔을 때, 나를 조롱하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침 9시에 사회 복지사 님들이 출근하면 당직 선생님은 퇴근을 하신다. 딱히 정해진 규칙은 아니지만 쉼터생들은 출근하거나 퇴근하시는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아무래도 그게 예의이지 않겠는가.
기분 나쁠 수 있는, 퍽퍽한 직장 생활이 우리를 보고 밝고 기쁘게 바뀌었으면 했다면, 그건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 시간에는 등교한 아이들을 빼고 사회 복지사 선생님 한 분과 다도회를 가진다. 다도회 후에는 만다라 색칠이나 종이접기 같은 비교적 간단하고 오래 걸리지 않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것도 본래는 좀 더 바깥으로 나가는 활동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당시가 코로나 시기였어서 실내에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래도 역시나 일주일 중 3-4일을 만다라나 종이 접기만 하는 건 너무나 지루했다.
1-2시간 정도 진행하고 나면 12시가 된다. 점심 시간에는 조리사 선생님이 쉼터에 방문한다. 조리 선생님은 아이들이 하루 먹을 음식을 책임지시며 10명이 넘는 인원수의 세 끼 분량의 식사를 조리하신다. 조리사 선생님이 얼마나 밥을 맛있게 하시는지, 잘 먹지 못해 뼈밖에 남지 않은 아이들도 통통함을 넘어 뚱뚱해지기까지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는 조리라는 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PC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힘듬을 깨달았다(요즘 PC방은 게임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음식과 음료를 즐기는 장소다). 조리 선생님이 요리를 끝내시면 우리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식사를 시작한다. 부엌이 그리 크지는 않아서 아이들은 항상 다닥다닥 붙어서 식사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한창 사람이 많아질 적에는 거실에 탁자를 펴서 먹기까지 했다.
이제 조리 선생님께서 퇴근하시고, 배가 꺼질 때 쯔음이 되면 사회복지사 님들은 아이들을 인솔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만든다. 솔직히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아이들을 인솔하는 것만으로 쉽지 않은데,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해서 타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경우 지옥문 오픈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떠들고 말 잘 안 듣고... 귀찮게 일을 만든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웃을 수 있는 많은 추억들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사회 복지사 선생님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면, 아침과는 다른 당직 선생님께서 출근하신다. 저녁을 먹기 전에는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점심 때 남은 음식을 데워 저녁을 먹는다. 도중에 음식이 부족하거나 하면 라면을 끓여먹거나 스팸을 구워 먹는다. 전형적인 ‘아빠 식단’이었다.
저녁 식사 이후에는 정기 모임을 갖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프로그램에 불참하거나 외박 일정을 알리는 자리가 된다. 이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총 관리 감독하여 화장실과 거주 장소를 청소한다. 특히나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었던 때라 더욱 청결에 신경을 썼었다. 보통은 자신이 맡은 분야의 관리가 있는데, 나는 그 부분이 끝나면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곤 했다.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아이들도 있긴 했다.
청소 관리가 미흡한 건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셨지만, 선생님이 견디실 수 없어 하시던 건, 의지박약이었다. 설렁설렁 걸레질하고, 남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는 이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공동체 생활의 중요성을 설파하셨다.
저녁 식사 후 청소가 끝나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자유 시간이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웃음 꽃을 피우지는… 않고,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휴대폰을 한다. 자기들끼리 합동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보드 게임을 한다. 출근을 했던 쉼터생들이 복귀하면 취침에 들어간다. 여기까지가 그나마 쉬운 경우다.
쉼터생들 중에는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있다. 대다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수가 그렇다. 아침 준비를 따르기 싫다고 기상 시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선생님들과 기싸움을 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쉼터 아이들끼리 싸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될 경우 저녁 식사 후에 갖는 정기 모임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장이 된다. 선생님들은 최대한 사견은 배제한 채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셨다. 때때로는 아이들에게 알리지 못할 문제는 당사자들 간의 합의로 해결했다.
업무와 직장 동료들끼리의 인간 관계도 힘든데, 비행 청소년들까지 인도하고 계도하느라 애쓰는 선생님들!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 글을 빌어서 꼭 전하고 싶었어요. 제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쉼터생들과 선생님들 덕분이었습니다.
특히나 내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과거에 쉼터에서 문제를 일으켜 퇴소를 당했던 쉼터생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명수’ 형을 겁박하며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려 했었지만, 여자 원장 선생님과 남자 복지사 선생님 둘께서 아주 부드럽지만 강경하게 대처를 해 쉼터생들을 지켰던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복지사 선생님들은 아주 멋있었고 믿음직스러웠다. 보호자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나도 어찌어찌 돕고 싶다고, 옆에서 팔짱을 끼고 부릅 눈을 뜨곤 거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주제넘었다.
하지만 마냥 쉼터를 위해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분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쉼터생들은 이러한 선생님들의 헌신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차별적인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다. 내가 쉼터에 입소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근처 주민들이 청소년 쉼터를 혐오 시설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소년 쉼터는 가정 해체, 가정 폭력 청소년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하여 생존과 옳바른 생애 계획을 수립하도록 돕는 복지 시설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쉼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쉼터의 취지는 이해해도 내 주변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가출 청소년에게 갖는 편견들이 결합되어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2020년 안양시에서 설립을 추진 중이던 청소년 쉼터가 있었다. 당시 안양시는 청소년 쉼터를 겨우 2개 정도를 민간법인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었고, 새로운 청소년 쉼터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지로 선정된 주상복합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단체로 반발하고 일어났다. 쉼터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시설인 만큼 거주 공간과는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시민들은 대체 왜 청소년 쉼터의 설립을 반대했던 것일까. 집값이 떨어질까봐? 자신의 자식들에게 안 좋은 물을 들일까봐? 무엇이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저들은 그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 또한 그들의 권리를 행사당한 것일까. 내가 거주하던 청소년 쉼터에는 화장실이 딱 하나 뿐이라서 등교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곤란을 겪은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쉼터가 속해 있는 상가의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거나 급한 일을 처리했다. 당연히 머리를 감거나 씻는 행위는 민폐이니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게 주인 중 하나는 이를 매우 반기지 않았는데, 화장실의 주인이 아이들이 더럽게 쓸 수도 있고 휴지도 치우질 않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다지 비난할 일도 아니고. 그러던 어느날, 내가 쉼터를 올라가는 도중에 너무나 급한 용무로 딱 한 번 상가의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가게 주인은 청소년 쉼터에 거주하는 내가 왜 이 화장실을 쓰냐고 화를 냈다. 솔직히 억울했다. 청소년 쉼터에 거주하는 아이가 뭔가. 그냥 한 번 정도 급하면 방문객이 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가게 주인은 나를 손으로 밀쳐서 화장실 밖으로 쫓아냈다. 모멸감을 느꼈지만, 참았다. 나는 한 번도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없었고, 지나가던 용변이 급한 사람이 화장실을 이용해도 똑같이 말할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여기서 내가 화를 낸다면 다른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른 쉼터생들은 분연히 화를 냈고, 왜 따지지 않았냐는 소리에, 나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가는 게 싫다는 답을 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여태껏 보호 받는 동안 느꼈던 희망찬 분위기가 순식간에 답답한 돌덩이에 눌려 암울해지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화장실은 굳게 잠겼고, 상가의 손님들만 이용할 수 있게 바뀌었다. 나도 이 이야기를 쓰면서 내가 받은 대우가 혐오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그저 자신이 속한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건 그들의 권리니까. 이걸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그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일 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