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선언
안도르 시즌 2 역시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제국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른 점이라면, 안도르 시즌 1에서는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느린 편이었지만 시즌 2의 경우 한 스토리 아크 (세 에피소드) 마다 1년씩을 점프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해당 전개 방식으로 수 년에 걸친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안도르 시즌 1의 엔딩으로부터 1년 후 시점에서 시작해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직전 시점까지의 내용을 다루게 된다. 다소 빠른 전개로 각 스토리 아크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 점을 제외한 다른 장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실 해당 문제는 기존 5시즌 구상이었던 이 드라마가 2시즌으로 축소되면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에 감안할 필요 역시 있다.
시즌 2에서는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이야기가 다루어지는데, "'빅스 캘린'의 이야기", "제 2차 고먼 학살", "반군 연합의 결성", "'루선 레일'과 '클레야 마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빅스와 고먼, 루선과 클레야에 대해 직전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기에 간략히 정리하고 넘어가자면, 빅스 캘린은 카시안의 친구이자 연인으로,(시즌 1 시점에는 헤어진 전 연인 겸 친구이지만 시즌 2 시점에서는 다시 연인이 된다.) 시즌 1의 후반부에서 제국의 과학자 고르스트 박사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하며 트라우마를 겪지만 시즌 2의 사건들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고먼은 은하 중심부와 가까운 "Colonies" 지역의 행성으로, 의류 산업이 발달한 곳으로 묘사된다. 또한 이 행성의 지하에는 죽음의 별 건설에 필요한 광물 "캘카이트"가 묻혀 있어 제국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해당 광물의 채굴을 제국의 목표치대로 진행하면 행성은 사실상 거주가 불가능한 지역이 되는데, 제국은 해당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굴을 진행하기 위해 고먼을 고립시킬 끔찍한 계획을 세운다.
루선은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시즌 1에서도 비중있게 다루어졌던 반군 리더이며, 클레야는 루선의 조력자이자 사실상의 수양딸이다. 시즌 1에서도 매우 유능하고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로 등장했지만, 루선의 조수 정도 외에는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었는데 시즌 2에서 클레야와 루선의 이야기들이 풀리면서 더욱 구체적인 캐릭터로써의 입지를 다졌다.
이 글에서는 고먼 학살과 반군 연합의 결성이라는, 안도르 시즌 2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이자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두 주제를 직전 글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룰 예정이다. 물론 빅스와 클레야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이며 그들의 이야기 역시 되짚어볼 만 하지만 역사성을 주제로 한 이 글과는 다소 맞지 않는다고 느껴 간략한 소개 정도로 넘어가겠다.
안도르는 사실 이 글에서 자세히 서술하는 내용들 외에도 배우들의 연기나, 스타워즈 세계관 내에서 이 이야기 전개가 차지하는 위치, 또 작은 사건들 각각의 구성이나 인물들 등 장점이 워낙에 많고, 이야기 나누어 볼 만한 것도 많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안도르의 전체적인 리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기에, 제목대로 역사적 사건들과 비교하여 의미를 가질 만한 내용을 위주로 짚어보겠다.
고먼은 앞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캘카이트 광물 때문에 제국의 계획에 휘말린 행성이다. 고먼의 설정은 프랑스를 모티브로 하였는데, 고먼인으로 등장하는 주요 배우들이 프랑스인인 것 뿐 아니라 작중 등장하는 "고먼어" 역시 프랑스어를 기반으로 한 가상언어이며, 패션 산업을 비롯해 문화적 자산이 발달한 지역이라는 점에서도 역시 비슷하다. 고먼에는 제국에 대항하는 '고먼 전선' 이라는 지역 반군 집단이 있다. 작중 시간으로부터 약 15년 전, 고먼에서는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에 제국의 대모프로 등장했던 '윌허프 타킨'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다. 타킨이 이 지역 총독이던 시절 고먼에 우주선 착륙을 시도하자 타킨에 반대하던 고먼의 시민들이 팰모 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는데, 타킨은 시민들을 무시하고 그 위로 우주선을 강제 착륙시켜 500명에 달하는 고먼인들이 학살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1차 고먼 학살로, 작중에는 '타킨 학살'이라는 용어로 불리며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 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팰모 광장에는 메모리얼이 만들어졌는데, 위에 첨부한 사진의 중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타킨 학살이 일어난 지 10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 제국은 팰모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부지에 무기고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위 사진의 좌측 상단부에서 건설되고 있는 무기고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실을 파악한 고먼 전선은 루선과 카시안을 비롯한 다른 반군들의 도움을 받아 자체적인 투쟁에 나선다. 그러나 제국은 은하계 전역에 고먼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트려 이들을 여론전에서 고립시키려 한다. 제국은 고먼인들에 의해 해군 무기고가 폭발한 척 자작극을 벌여 이들이 마치 폭력적인 시민들인 것 처럼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등 지속적으로 고먼에 대한 악의적 선동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캘카이트 채굴 작업에 들어가기 직전 고먼인들의 저항을 분쇄해 버리기 위한 이 작전이 최종 단계에 들어서자, 시즌 1부터 카시안 안도르와 지속적인 적대관계를 만들어왔던 시리즈의 메인 안타고니스트인 ISB의 감독관 '데드라 미로'가 직접 계획을 감독하기 위해 고먼을 찾는다. 해당 정보를 접한 카시안은 루선의 지시를 받아 데드라를 암살하기 위해 역시 직접 고먼으로 향한다. 고먼인들은 채굴 장비가 행성 전역에 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국에 항의하기 위해 팰모 광장으로 보여 시위를 전개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진짜 비극이 시작되는데, 고먼인들이 팰모 광장에 모이자 제국은 정예보병 스톰트루퍼까지 동원해 시민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팰모 광장을 봉쇄하고, 저격수와 보안 드로이드를 비롯한 병력을 배치하여 시민들을 제압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고먼인들은 자리에 서서 고먼의 국가인 "We are the Ghor"를 제창하며 시위를 이어갔을 뿐, 제국군에 대한 어떠한 직접 공격도 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도 제국은 역시 시민들을 공격할 이유를 만들어낸다. 이전에 배치해놓은 제국의 저격수에게 아군 병사를 공격하도록 지시함으로써, 고먼인들이 먼저 발포한 것 처럼 상황을 조작해 팰모에 모인 고먼의 시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스타워즈의 작중 군 병력들은 실탄 총이 아닌 레이저 유탄을 발사하는 "블라스터"를 사용하기에 시각적으로 유혈이 흐른다거나 하는 잔인한 연출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은 두 눈을 뜨고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장면이다. 제국의 훈련을 철저히 받은 정예병사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전투 환경에나 투입되는 드로이드인 KX 시리즈 경비 드로이드가 투입되어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한다. 고먼의 무고한 시민들이 제국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사건임에도, 제국 방송국은 은하 전역에 "폭력적인 고먼인"의 이미지와, "고먼인들에게 희생당한 제국군"의 모습들만 보여주며 악의적으로 진실을 은폐한다.
이전 글에서 안도르 시즌 1 피날레의 페릭스 시위가 3.1 운동을 연상케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시즌 2의 고먼 학살의 경우에는 또 다른, 우리에게는 더더욱이나 익숙한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1980년 5월의 광주다.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금남로의 시민들에게 총을 집단 발포한 신군부의 계엄군과, 고먼인들의 'We ar the Ghor' 제창이 끝나자 팰모의 시민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제국군의 모습은 무서울 정도로 닮아 있다. 그뿐인가? 신군부가 전국의 언론을 통제하며 광주의 진실을 은폐했던 것처럼, 제국 역시 언론을 이용해 고먼의 진실을 숨긴다. 제국은 신군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 사건이 '권력 기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아니라,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생긴 사태'인 것처럼 가짜 정보를 퍼트린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도청 방송실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시민군의 상황을 알렸던 박영순씨처럼, 고먼의 '드리나'는 고먼 전선의 본부에서 마지막까지 은하계를 향해 진실을 알리기 위한 방송을 하려 애쓴다.
이전 글에서 페릭스 시위와 3.1 운동을 연관시킨 것은 몇 가지 요소들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고먼 학살과 광주 항쟁은 무서울 정도로 유사하다. 광주 민주화운동으로부터 45년이 지난 해,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불법 비상계엄이 일어난 바로 다음 해, 그것도 5월에 이러한 에피소드가 공개되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심지어 고먼 사태의 이튿날을 다룬 바로 다음 에피소드에서 보여지는 은하 의회의 모습마저도 2025년의 우리에게 와닿는 모습이다. 제국 의회 본회의장에서 경찰도 아닌 제국군 병사들이 고먼 행성의 의원을 영장도 기소도 없이 불체포 특권도 무시한 채 불법으로 무력 체포한다. 이 일에 분노한 샨드릴라의 상원의원이자 비밀리에 반군 연합을 돕던 인물인 몬 모스마는 제국 의회에서 고먼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연설을 준비한다.
몬은 얼데란의 상원의원이자 뜻을 함께하는 동료인 베일 오르가나로부터 발언권을 넘겨받아 발언을 시작한다.
The distance between what is said and what is known to be true has become an abyss. Of all the things at risk, the loss of an objective reality is perhaps the most dangerous. The death of truth is the ultimate victory of evil. When truth leaves us, when we let it slip away, when it is ripped from our hands, we become vulnerable to the appetite of whatever monster screams the loudest. This Chamber’s hold on the truth was finally lost on the Ghorman Plaza. What took place yesterday… what happened yesterday on Ghorman was unprovoked genocide! Yes! Genocide! And that truth has been exiled from this chamber! And the monster screaming the loudest? The monster we’ve helped create? The monster who will come for us all soon enough is Emperor Palpatine!
알려진 것과 진실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졌습니다. 모든 위험 중에서 객관적인 현실을 잃는 것이 가장 위험할 것일지 모릅니다. 진실의 죽음은 악의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진실이 우리를 떠날 때, 우리가 그것을 흘려보낼 때, 그것이 우리의 손에서 찢어질 때, 우리는 가장 큰 소리를 지르는 괴물에게 내던져집니다. 이 방에서 붙잡아야 할 진실은 붙잡은 마침내 고먼 광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어제 고먼에서 일어났던 일은 이유 없는 제노사이드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노사이드! 그리고 그 진실은 이 방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가장 큰 소리를 지르는 괴물, 우리가 만들도록 도운 괴물, 곧 우리 모두를 찾아올 괴물은 바로 팰퍼틴 황제입니다!
몬은 진실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며 고먼에서 일어난 일의 실체를 밝힌다. 몬이 고먼 사건을 "제노사이드"로 직접 규정하는 장면과, 이 모든 일의 원흉을 황제라 지목하며 그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는 장면을 보다 보면 소름이 돋는다. 몬은 이 의회 연설을 기점으로 수도성 코러산트를 떠나 반군 연합의 기지에 합류하게 되고, 본격적인 스타워즈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안도르 시즌 1의 나키나 5에서 "공공질서 재심리 명령"이라는 악법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마구잡이로 교정시설에 잡혀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시즌 2의 고먼에서는 제국이 자신에 반하는 시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스타워즈 세계관 내에서 가장 끔찍한 학살 사건으로 볼 수 있는 얼데란 파괴 사건 역시 작중 시간으로 안도르 시즌2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다.
이 이야기는 비단 "스타워즈" 속 "은하 제국"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에 이러한 일들을 직접 겪었다. 분명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일어났던 일에만 그치는 것 또한 아니다.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언제라도 다시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안도르>는 단순히 잘 만들어진 스타워즈 드라마가 아니다. 정치적 극단화가 심해지며 세계적 분쟁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