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르>로 본 스타워즈의 역사성 1

제국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선언문

by 여행하는살별

지난 5월 14일 디즈니+ 스타워즈 드라마 안도르 시즌2가 끝났다. 2022년 공개되었던 시즌1 이후 3년 만의 두 번째 시즌이었다. 시즌1 또한 그랬지만 이번 시즌 역시 놀라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명작 드라마다. 안도르는 사실 첫 시즌이 공개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아니었다. 주인공 '카시안 안도르'는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주연급 캐릭터이기는 했지만, 그 영화 한 편에 출연한 게 전부인 캐릭터였기에 카시안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스핀오프 드라마가 흥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충분했다. 심지어 로그 원의 메인 주인공은 '진 어소'였지 카시안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오비완 케노비'나 '아소카 타노'처럼 사가 전체에서 큰 비중이 있는 캐릭터도 아니었기 때문에 단독 스핀오프 드라마 중에서는 가장 기대를 덜 받던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의 안도르의 위상은 공개 이전과는 천차만별이 되었다. 디즈니+ 역사상 스타워즈 IP를 가지고 나온 작품 가운데 최고의 드라마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스타워즈의 디즈니+ 시대 개국공신 격의 작품인 <만달로리안> 역시 좋은 작품이고, 개인적으로는 데이브 필로니의 <아소카>, 존 왓츠의 <스켈레톤 크루>도 재밌게 봤지만 <안도르>는 그 모든 드라마를 손쉽게 제친다.


zvsbIP9f6ua6Ahhc76r1a1z6TBf6Bx.jpg 카시안 안도르(Cassian Andor), 디에고 루나 扮

안도르는 반군 정보국 대위인 카시안 안도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 드라마로, (이 글에서 '안도르'라고 쓴다면 시리즈 명을, '카시안'이라고 쓴다면 시리즈의 주인공을 의미한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카시안이 어떻게 반란 연합의 군인이 되는지, 또 각지의 점조직에 불과했던 반란군들이 어떻게 모여 반란 연합이 탄생하게 되는지를 다루는 초기 반군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안도르의 모든 에피소드를 다루거나, 내용 전반에 대한 해설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상적인 캐릭터들이나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시즌1의 플롯을 간략히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행성 '페릭스'의 평범한 청년이었던 카시안은 우연한 계기로 초기 반군 지도자 '루선 라엘'을 만나 '알다니 작전'에 투입된다. 알다니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카시안은 반군을 떠나 보수를 두둑이 챙겨 휴양지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제국의 '공공질서 재심리 명령'에 의해 부당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카시안은 수감자들과 함께 봉기를 일으켜 탈옥에 성공하고,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고향 페릭스로 돌아온다. 고향 페릭스에서는 카시안의 어머니 '마바 안도르'의 장례식에서 제국에 대항하는 시위가 발생하고, 제국군을 이를 강압적으로 진압한다. 카시안이 친구들을 구출해 고향을 떠나고, 루선과 재회해 반군에 진정으로 합류하며 시즌이 마무리된다.


카시안은 제국에 반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크게 대항하려고 하지 않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페릭스 행성의 여러 이웃들 역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카시안이 루선을 만나 우연한 계기로 반군 군사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을 모두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이 '알다니 작전'에는 두 가지 정도 인상 깊은 포인트가 있었다.

latest?cb=20230105200535 알다니의 눈 (Eye of Aldhani)

첫 번째는 연출적인 부분이다. '알다니의 눈'이라는 천문 현상이 묘사되는데, 이 작품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각적으로 훌륭하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할 수 있는 한 큰 화면으로 시청하는 것을 권한다.

karis-nemik-main_a5e87a12.jpeg?region=160%2C1%2C1427%2C803 카리스 네믹 (Karis Nemik), 알렉스 로우더 扮

두 번째는 '카리스 네믹'이라고 하는 캐릭터의 존재이다. 알다니 팀에서 전략가 역할을 맡던 인물로, 혁명 사상가이기도 하다. 작중에는 그가 자신의 사상을 글로 정리한 <네믹의 선언문>이 등장하는데, 매우 인상적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There will be times when the struggle seems impossible. I know this already. Alone, unsure, dwarfed by the scale of the enemy. Remember this. Freedom is a pure idea. It occurs spontaneously and without instruction. Random acts of insurrection are occurring constantly throughout the galaxy. There are whole armies, battalions that have no idea that they've already enlisted in the cause. Remember that the frontier of the Rebellion is everywhere. And even the smallest act of insurrection pushes our lines forward. And then remember this. The Imperial need for control is so desperate because it is so unnatural. Tyranny requires constant effort. It breaks, it leaks. Authority is brittle. Oppression is the mask of fear. Remember that. And know this, the day will come when all these skirmishes and battles, these moments of defiance will have flooded the banks of the Empire's authority and then there will be one too many. One single thing will break the siege. Remember this. Try.
투쟁이 불가능해 보일 때가 있을 겁니다. 저도 잘 알죠. 외롭고, 불확실하고, 적의 규모에 압도되는 그 느낌을요. 이걸 명심하세요. 자유는 순수한 개념입니다. 자유는 자발적으로 발생합니다. 민중 봉기가 은하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군대가 싸우고 있지만 아직 그 사실을 모릅니다. 반란의 전선은 어디에나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요. 아무리 작은 봉기라도 우리 전선을 전진시키죠. 이걸 명심하세요. 제국이 통제에 그토록 간절한 이유는 통제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폭정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폭정은 부서지고 새어나가며, 권위는 불안정합니다. 억압은 공포의 다른 얼굴입니다. 이걸 명심하세요. 그날이 오면 끝없는 교전과 전투, 저항의 순간들이 제국의 권위라는 둑 위로 흘러넘쳐 제국을 비틀거리게 할 겁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둑을 무너트립니다. 명심하세요. 행동하세요.


이 선언문은 반군 지도자들이나 제다이 같은 영웅들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내용이 아니다. 은하계의 시민들에게 제국에 맞서 작은 행동이라도 시도하라고 외치는 선언이다. 이 글은 우리에게 과거 현실에서 일어났던 권위적 정부에 대한 수많은 민중봉기와 시민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혁명은 한두 명의 영웅이나 혁명가가 이뤄내는 것이 아니다. 민중들이 그들의 대의에 응답해 진정한 의미의 시민혁명이 되어야지만 그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 <안도르>는 그런 면에서 매우 탁월한 드라마이다.


기존의 스타워즈는 SF의 탈을 쓰고 있지만 고전 영웅 설화에 더 가깝다. 스타워즈의 장르를 스페이스 오페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내용 전개는 조지프 캠벨의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 Monomyth)를 따라간다. 주인공은 미지의 힘인 '포스'를 다루는 '제다이'이고, '다스 베이더'로 대표되는 안타고니스트들 역시 포스를 다루는 '시스'로 묘사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을 다루고, 스치기만 해도 금속마저 잘려나가는 광선검을 든 제다이와 시스의 운명적 싸움." 이것이 기존의 스타워즈를 한 문장으로 표상하는 문장이라면, 안도르는 이를 훨씬 현실에 가깝게 바꾼다.

안도르는 "제국"이라는 폭정을 일삼는 사악한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의 이야기이다. 기존 시리즈에서 주인공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능력치를 가진 적군으로 묘사되던 "스톰트루퍼"나 "타이 전투기" 같은 개체들도 이 드라마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그동안 스타워즈 속에서 제국이라는 대상을 반군 영웅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아 왔지만, 안도르에서 우리는 민중 반란군의 일원으로서 제국을 올려다보게 된다. 스톰트루퍼의 블라스터 한 발에 얼굴이 익숙한 동료 캐릭터들이 마구 죽어나가고, 타이 전투기 특유의 소음이 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하게 된다.

안도르에 등장하는 주요 적대 세력은 제국 보안국 ISB인데, 이들 역시 기존 스타워즈에서 보여주는 제국 관료들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오리지널 트릴로지에서 주로 무능한 모습만을 보이며 다스 베이더에게 처형당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제국군 관료들과는 달리, 보안국 감독관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능하다. 온 은하계를 감시하며 반군을 쫓고, 스스로를 "병을 치료하는 보건업자"라 칭하며 제국이라는 시스템 내에 암약하는 질병과도 같은 반란군을 '치료'하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기존의 강력한 힘을 가진 영웅 주인공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일반 민중 반군이 제국이라는 시스템에 대항하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하고 얼마나 큰 위험이 따를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시즌 1의 수많은 명장면 가운데 많은 이들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는 장면은 크게 세 가지인데, 세 장면은 모두 어떤 인물이 독백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군 지도자 루선 레일, 감옥 봉기의 주도자 키노 로이, 카시안의 어머니 마바 안도르가 그 독백의 주인공들이다.


화면 캡처 2025-07-19 154410.png 루선 레일 (Luthen Rael), 스텔란 스카스가드 扮

첫째로, 안도르에서 가장 조명되는 반군 지도자 루선 레일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안도르의 기존 톤과 마찬가지로 이 인물 역시 기존 스타워즈의 고전적 지도자상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기존 스타워즈의 지도자들은 주로 천재 파일럿, 제다이, 뛰어난 정치가와 같이 이상적인 모습의 영웅상을 가진다. 그러나 루선은 그런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판타지 속 영웅보다는 현실세계의 암울한 시대에 자유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의 모습에 더 가깝다.

루선이 제국 정보국 ISB 내에 심어 놓은 반군 첩자인 로니 영은 자신의 일에 부담을 느끼며 루선에게 당신은 무엇을 희생했는지 따지듯 묻는다. 루선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Calm. Kindness, kinship. Love. I’ve given up all chance at inner peace. I’ve made my mind a sunless space. I share my dreams with ghosts. I wake up every day to an equation I wrote 15 years ago from which there’s only one conclusion: I’m damned for what I do. My anger, my ego, my unwillingness to yield, my eagerness to fight, they’ve set me on a path from which there is no escape. I yearned to be a savior against injustice without contemplating the cost, and by the time I looked down, there was no longer any ground beneath my feet. What is... what is my sacrifice? I’m condemned to use the tools of my enemy to defeat them. I burn my decency for someone else’s future. I burn my life, to make a sunrise that I know I’ll never see. No, the ego that started this fight will never have a mirror, or an audience, or the light of gratitude. So what do I sacrifice? Everything!
평온함, 친절함, 유대감. 사랑. 나에게 내면의 평화를 줄 수 있 건 모두 포기했네. 나는 내 정신을 햇빛 하나 없는 어둠으로 추락시켰어. 나와 꿈을 나누는 것은 유령들 뿐이야. 아침마다 내가 15년 전에 쓴 방정식에 매달려도 답은 하나더군. 나는 이 일로 인해 저주받으리라는 것. 내 분노, 자존심, 반골 기질, 싸움에 대한 열망... 그런 것들이 날 도망칠 수 없는 길로 몰아세웠어. 치러야 하는 희생은 생각지도 않은 채 구세주가 되길 바랐고, 그러다 보니 발 디딜 땅 하나 없는 신세가 되었더군. 내가... 내가 어떤 희생을 치렀냐고? 나는 적들을 이기기 위해 적의 수법을 쓰고 있네. 다른 사람의 미래를 위해 내 인간성을 불태우고 있지. 내 생전엔 절대 볼 수 없을 일출을 위해 내 삶을 불태우고 있다고! 이 싸움을 시작한 이상 화려한 조명이나 박수, 감사 인사 따윈 결코 받지 못하겠지. 그래서 내가 뭘 희생했냐고? 모든 것을!

이 장면에서의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명연기는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루선은 기존에 선하게만 묘사되던 반군의 다른 유명 지도자들과는 달리, 제국의 몰락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동료도 희생시킬 수 있는 마키아밸리주의자적 면모도 보인다. 이 독백에서 루선의 대사는 단순히 스타워즈 세계관 내의 반군 지도자의 외침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많은 다른 이들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신이 어떤 것을 희생했는지 열변을 토하는 루선의 모습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Andy-Serkis-Kino-Loy-In-Andor-Episode-10.png 키노 로이 (Kino Loy), 앤디 서키스 扮

두 번째 독백의 주인공은 키노 로이라는 인물이다. 누명을 쓴 카시안이 갇혔던 제국 감옥 시설 나키나 5에 복역 중인 또 다른 죄수로, 죄수들 사이 리더 역할을 맡은 인물이었다. 처음에 이 인물은 시스템에 성실히 복역해 출소하는 것만을 목표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해당 시설의 실체를 알게 되며, 출소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카시안과 함께 탈옥을 위한 죄수 봉기를 주도한다.

카시안과 함께 나키나 5의 통제 시설을 탈취한 키노 로이는 감옥 내 전체 방송으로 연설을 하는데, 이 연설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키노의 연설이 끝난 후 나키나 5의 수감자들이 키노를 따라 "One way out!"을 외치며 뛰어나가는 장면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키노의 연설은 전문을 옮기지는 않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I would rather die trying to take them down than giving them what they want.
난 고분고분하게 시키는 일만 하다가 죽느니 최소한 싸워보다가 죽겠어.

시키는 일을 성실히 따르면 출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던 인물이 제국의 실체를 알게 된 후 단숨에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하고, 관료가 아닌 수감자라는 면에서는 다를 수 있지만 "잘못된 지시를 고분고분 이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측면에서 본다면 역사 속 나치 관료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추가적으로 이 장면 역시 배우의 연기가 매우 돋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앤디 서키스를 주로 골룸, 킹콩, 시저, 스노크 등 모션 캡처 영역에서 이름을 날렸던 배우로만 기억해 왔는데 안도르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맨 얼굴 연기를 볼 수 있어 좋았다.


andor-112-highlights-maarvas-mes_7a367e77.jpeg?region=0,0,1280,536 마바 안도르 (Maarva Andor), 피오나 쇼 扮

세 번째 독백의 주인공은 카시안의 어머니인 마바 안도르이다. 카시안과 마바의 고향 행성인 페릭스에는 특별한 장례 문화가 있는데, 고인이 죽기 직전 녹화한 연설 영상을 장례식에서 재생하며 조문객들에게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고인의 유해로 "장례석"을 만들어 건축 자재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바 역시 장례식을 위한 홀로그램 영상을 남겼고, 존경받는 지역 어른인 그녀의 장례에는 수많은 지역 주민들이 참석했다. 안도르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마바는 이 연설을 통해 제국을 향해 본격적인 선전포고를 날린다.


And I've been turning away from the truth I wanted not to face. There is a wound that won't heal at the center of the galaxy. There is a darkness reaching like rust into everything around us. We let it grow, and now it's here. It's here, and it's not visiting anymore. It wants to stay. The Empire is a disease that thrives in darkness, it is never more alive than when we sleep. It's easy for the dead to tell you to fight, and maybe it's true, maybe fighting is useless. Perhaps it's too late. But I'll tell you this. If I could do it again, I'd wake up early and be fighting these bastards from the start! Fight the Empire!
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저 은하의 중심에 낫지 않는 상처가 있다는 진실을요. 그곳의 어둠이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녹슬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방관하는 사이, 그 질병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이상, 그것은 더 이상 잠깐 왔다 가는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여기에 있기를 원하죠. 제국은 어둠 속에서 번식하는 질병이며,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더욱 강해집니다. 망자의 입장에서 싸우라고 말하기는 쉬울지 모르고, 그리고 사실 싸움이 무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전 일찍 깨어나 처음부터 이 개자식들과 싸울 거라고요! 제국과 싸우세요!

알다니 사건 이후로 늙은 몸으로도 제국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보였던 그녀가 죽고 나서도 민중 봉기의 도화선이 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카시안을 잡기 위해 이 장례식을 감시하고 있던 제국 장교는 연설의 내용을 참지 못하고 망토를 벗어 마바의 영상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 홀로그램을 재생하던 드로이드 B2를 엎어버리기까지 한다. 마바의 연설에 고무되어 있던 페릭스의 민중들은 제국 장교의 행동에 분노해 결국 페릭스 시내의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여기서 처음으로 제국 측 인물이 타격당하는 장면이 재미있는데, 장례를 주도한 인물이자 카시안의 친구인 '브라소'가 B2를 공격한 제국 장교의 머리를 마바의 유해로 만들어진 장례석으로 가격하며 본격적인 봉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바가 망자의 입장에서 싸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쉬울지 모른다고,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먼저 싸우겠다고 이야기했던 것 처럼 결국 가장 먼저 제국과 싸우기 시작한 것은 마바의 장례석이었던 것이다.

이 장면 역시 앞서 소개한 두 장면과 마찬가지로 독백 장면이기에 배우의 연기가 눈에 들어왔는데, 우리에게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페투니아 더즐리로 익숙한 피오나 쇼가 배역을 맡았지만 해당 캐릭터와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연설의 내용을 좀 더 훑어보자면, 초반부 에피소드에서 제국 보안국의 '파르타가즈 소령'이 반란군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스스로를 보건업자라고 칭한 데 반해 마바는 제국을 은하계를 망치는 질병으로 규정하고 민중을 이끈다. 결국 마지막 에피소드에서까지 안도르는 민주적 질서와 절차를 파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중을 착취하며 폭정을 일삼는 권력에 대한 민중들의 혁명을 보여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캐릭터나 장치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제국군을 쓸어버리는 강력한 영웅도 없다. 그저 폭정에 분노한 민중들의 모습만을 비출 뿐이다.

안도르 마지막 에피소드의 이 장면은 장례식에 사람들이 모이고, 연설을 듣고 고무되어 혁명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사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황제의 장례식에 사람들이 모이고 독립선언을 낭독하며 제국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난 3.1 운동과, 마바의 장례식에서 발생한 페릭스 시위는 하나하나 대구를 이룬다. 이 드라마는 미국인들이 제작하고 멕시코인이 주연을 맡은 만큼, 또 한국의 현대사가 외국에 구체적으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의도된 대구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웬만한 국내 영상매체보다 잘 만들어진 항일문학으로 느껴진다. 사실, 제작자들의 의도는 기실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으려 했겠지만, 한국의 시청자로써는 반제국주의라는 주제가 특정 시대를 연상시킬 수 밖에 없다.


p22265604_b_h8_aa.jpg?w=1280&h=720 <Andor>, Seoson 1

결국 안도르는 영웅 설화였던 기존의 스타워즈와 달리, 이름 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깨어나 저항을 시작할 때 진정한 혁명의 시계가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즌 2에서는 같은 주제의식 속에서 다른 이야기들이 전개되는데, 그 역시도 독자적으로 분석해 볼 만하다. 다음 글에서는 비슷한 방식으로 안도르 시즌2의 내용들 역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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