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쉬는 날에도 바쁘게 보내야 하는 인간

부제: 쉬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by 이채


무려 2주간의 병가가 내려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게 나와서,

이 정도면 어떠한 병도 다 나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사실 감기몸살이라든지 배탈이라든지 실제로 몸이 아픈 것이 아니다 보니,

병원을 가야 할지, 약을 먹어야 할지... 처음 겪어보는 일에 시작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한 번쯤 초등학교 조회 시간에 쓰러져보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왠지 그땐 그런 친구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약해 보이면서 청순가련한 느낌이라 부러웠다.

코피라도 났다 하면 (친구들에게 보이고 난 뒤) 괜히 조금 늦게 닦기도 했는데,

이건 뭐 코피 수준이 아니다. 코피는 몇 번 난 적 있어도 쓰러져본 건 내 인생 정말 처음 있는 일이라,

사실 남들보다 내가 제일 놀랐다.


어디든 가봐야 했다. 집에서 가까운 정신의학과를 검색해서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간단한 질문들을 하셨다

.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요즘 많이 신경 썼던 고민이 있는지.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어 신체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라고 하셨고, 약도 받아왔다.

그다음부터가 정말 문제였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냥 쉬어야지, 정말 침대에만 있을 거야!"라고 다짐했지만,

그것도 4일 정도 지나고 나서는 집에만 있는 게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잠은 정말 평생 잘 잠을 다 몰아서 잔 것처럼 많이 잤고, 몸이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쉬는 법을 모르는 인간은 결국 '노동'을 택했다.

"그래, 청소라도 하자."

나는 집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옷장을 뒤집고, 서랍을 엎었다.

그러다 부엌 찬장 가장 깊숙한 곳,

손이 잘 닿지 않아 까치발을 들어야 하는 그 구석에서 뽀얗게 먼지 쌓인 상자 하나가 툭 떨어졌다.

"아... 이거."

작년 생일에 친구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내줬던 티(Tea) 세트였다.

당시 [배송지 입력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알림톡이 올 때까지 미루고 미루다, 귀찮은 마음으로 주소를 입력했던 기억이 났다.

그땐 '치킨이나 커피가 좋은데...'라고 생각했었다.


화려한 포장지 속에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블렌딩 티'라고 적힌 틴케이스가 들어 있었다.

설명서를 읽어보았다.

[100도의 끓는 물, 300ml, 그리고 3분.]

나는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금세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났다.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붉은 수색이 우러난 찻잔을 들었다.

호호 불어 한 모금 넘기니, 밍밍하고 심심한 맛이 났다. 혀를 때리는 달고 쓴 자극적인 맛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명치끝에 꽉 막혀 있던 딱딱한 덩어리가 아주 조금, 말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맛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시간의 맛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멍하니 서서 기다려준, 나를 위한 3분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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