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보다 못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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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산다는 것의 가치를 묻는다면 수천 가지의 답변이 나올지 모른다. 각자 가치를 두는 바가 다르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산다'라는 말의 가장 기저에 있는 생존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일단 가치를 생각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숨이 붙어서 심장이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다'를 충분히 해내고 있는가.
뭐든지 오케입니다
갑자기 삶이 편리해집니다
영화에 표류하는 김씨는 2명이다. 첫 번째 김씨는 빚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한 김씨로 엉겁결에 목숨을 부지해서 밤섬에 홀로 살게 된다. 두 번째 김씨는 왕따를 당한 후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거짓 홈페이지 운영과 달 사진만 찍다가 첫 번째 김씨를 발견한다. 궁지에 몰리다 세상에서 분리된 두 명의 김씨들은 표류하며 '살아'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생각을 영화화시킨 작품이라 한국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고 교과서에까지 실리는 기염을 토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아무런 생각 없이 보다가 커서 영화를 찾다 보니 이런 작품이 또 없지 싶다. 웃기지만 가치 있는 웃음. 재밌지만 마음 한켠이 짠한 재미. '있어 보이려' 애쓰는 쓸데없는 자존심도 없이 담백하게 전하는 삶의 의미.
두 명의 김씨는 사회에게 별 가치 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사회가 결정짓는 가치를 빼고 보면 한 명의 인간이 가지는 생명은 다른 누구의 생명과 다른 취급을 받을 수 없다. 내가 사는 집도, 일하는 회사도, 입는 옷도, 타는 차도 돈이어야 하는 사회. 나의 성격도, 얼굴도, 옷도, 인기도 평가받아야 하는 사회. 굳이 불필요한 사회의 족쇄에 '산다'라는 가치는 바래 간다.
짜장면은 제게 희망입니다
희망이 맛있다
김씨들에게 희망은 고작 짜장면이다. 가치를 잃고 정해진 가격만 내면 몇 분 만에 배달되는 그런 짜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에 담긴 곡물들이 자라는 경이로움과, 거름으로 밭을 일구는 농부의 정성과, 이들을 돌봐주는 햇살의 따스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짜장면이다. 삐빅하며 찍히는 가격과 종이 몇 장의 돈으로 환산되기엔 슬프도록 소중한 가치들을 알게 해 줄 짜장면 말이다.
그냥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으니까요
자라면서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너를 키우는데 드는 돈 얼마, 네가 회사에 가져다주는 이익 얼마, 네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돈 얼마.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처럼 취급받기에 무뎌지다가도 어느 날은 사무치게 서러울 때가 있다. 나는 그런 가치를 바란 적이 없다며 그냥 나로서 살고 싶을 뿐이라며 속으로 외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짜장면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게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