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SD
I'm 23 years old
(난 23살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는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쓰여왔다. 누가 어떤 땅을 차지했고, 누가 누구를 죽였으며, 무엇이 얼마나 파괴적인 무기인가 설명하는 이름과 숫자가 훈장처럼 기록돼 전해졌다. 하지만 명예롭게 포장된 역사 아래 누군가를 죽이고 정복하는 것에 가치를 둔 선택은 적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을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My one true accomplishment was not dying
(내 유일한 성취는 죽지 않은 것이다)
군인은 각 나라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싸운다. 여전히 상대를 직접 죽이는 것만큼 정복하기 쉽고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이 없어서 세계의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끊이지 않는 탓이다. 당연히 어떤 생명의 희생 없이 상호 간 합의를 통한 갈등의 해결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사실은 다들 안다. 그럼에도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누군가가 선을 넘는다면 준비되지 않는 상대는 속절없이 죽게 된다. 그건 정의롭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의 방안을 두고 여전히 희생이 동반되는 대안을 포기하지 못한다. 문제는 여기서 희생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사람들이 쉽게 간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기회'와 '붉은 과일'이라는 의미를 가진 체리를 제목으로 두고 어떤 기회에 의해 붉게 물들어가는 주인공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람은 약하고 감정적이다. 스스로 온전하지 않은 약함을 이겨내기 위해 고뇌하고 사랑할 줄 안다. 그렇다면 사랑할 대상이 없다면 어떨까. 심지어 사랑을 흔적도 남지 않도록 죽이려 드는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세상에 던져지면 어떨까. 누구나처럼 사랑하고 고민하던 23살은 군대에 자원하면서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된다. 자신이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공감하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던 주인공은 차마 이해하기 어려운 군대의 현실 속에서 이제까지의 자신을 잃어간다. 쓸데없이 고집만 센 상사, 미친 장난을 일삼는 선임, 왜 하는지 모르겠는 오리걸음. 비정상적인 훈련 다음에 투입된 실전은 피가 낭자하고 개인적인 생각은 일절 할 틈이 없다. 음식을 구걸하는 아이들과 어느새인가 죽은 동료. 제발 다 괜찮으라고 애원을 해도 주인공의 간절함을 들어줄 만큼의 여유로움은 어디에도 없다. 다들 제정신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었다.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살아남은 후 인간적인 삶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떨까. 나라를 지켜준 영웅들을 위해 사람들은 팡파르를 울리고 꽃가루를 뿌려준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돌아 걸어와야 할 길은 꽃길이 아닌 전쟁으로 걸어갈 때와 같은 그 길이다. 게다가 길을 걸으며 생긴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평화로운 현실과 대조되면서 상처는 선명해진다. 아주 깊은 상처는 시도 때도 없이 저려오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로 괴사해간다.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일반인들에게 무뎌진 전쟁의 절망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욕심으로 시들어가는 행복의 크기는 이토록 방대하다. 분명히 전쟁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일이다.
And It's a nightmare
(그리고 이건 악몽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나의 동료와 가족이 눈앞에서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 언제라도 자신이 고문당하거나 살해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죄책감. 어떤 안정감도 없는 전쟁이라는 산물은 차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압박과 신체적 상해를 양산한다. 지배는 욕심이고 욕심에 의해 방어하는 이들까지 욕심의 늪에 발목을 잡힌다. 승리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이라 붙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