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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종훈 Aug 31. 2023

내 몸이 남들보다 좋은 이유 1

나는 한때 헬스 트레이너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고객들의 단골 이야기 중 하나는 "선생님 같은 몸은 얼마나 걸리나요?", "몸의 반만이라도 되고 싶어요"라는 말이었다. 몸이 보이는 것이 직업이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나를 닮고 싶다는 칭찬이 싫진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보다 더 크고 우람한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했다. 그 칭찬은 내가 듣고 싶은 말에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약 6년간의 트레이너 생활은 뒤로한 채 다른 사업들을 시작하면서 점점 운동은 본업이 아닌 취미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6살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여 약 25년 동안 나는 '운동'과의 동행을 꾸준히 해왔다. 물론 지금도 이전만큼은 못하지만 꾸준히 하는 중이다.


트레이너를 하던 시절에도 일반 회원의 운동이 운동선수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고 지금 헬스장만 가봐도 일반인인지 트레이너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은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동을 못해서 아니면 더 잘하고 싶어서 많은 정보들을 수집한다.


요즘은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돈 내고 배울 수만 있었던 고급 정보나 프로 선수들의 꿀팁들을 방출하곤 한다. 여러 정보를 토대로 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본인이 생각한 수준보다 성장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들도 하곤 한다.


운동은 '이론부터일까', '실기부터일까'라는 이야기로 많은 논쟁을 펼치기도 하지만 나의 입장은 실기부터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차차 다루도록 하고 정보가 이렇게나 넘치고 환경이 좋아졌음에도 운동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걸까?


나의 이야기로 그 답변을 해보려고 한다.




운동은 타고나는 것이다.

"한번 바로 하는구먼. xx는 역시 잘해." 그들끼리 환호하고 웃고 떠드는 사이 나는 슬며시 자리를 비켰다.


필자는 한때 굉장히 말랐던 적이 있었다. 해골이라는 말이 나 때문에 생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말이다. 학창 시절부터 군 제대 이후까지 그로 인한 콤플렉스가 꽤 오래갔었다. 어린 시절 합기도 선수를 지내면서 키에 비해 체중이 적게 나가 굉장히 고민이 많았었다.


합기도 대회는 태권도 겨루기 대회와 매우 유사한데, 합기도는 가장 큰 차이점은 유도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해 가면서 체중이 적게 나가는 것이 운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 부모님도 그런 나의 체중과 건강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다. 그 어린 나이에 약이란 약은(양방, 한방 가리지 않고) 다 먹어봤음에도 체중은 매일 제자리걸음이었다.


고3 졸업 시즌 무렵 성인부 형들과 함께 대전시 대표로 발탁이 된 기쁨도 잠시 점점 나 자신이 초라해져 갔다. 겨루기 대회와는 다르게 시범단은 당연히 외부 사람들이 보았을 때 힘이 넘치고 박력이 있는 모습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경력과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서 각자의 장점에 따라 맡는 파트들이 나뉘게 되는데, 프로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1.5군의 선수와도 같았다.


기회를 몇 번 받았지만 나를 대신할 형, 동생들이 더 많았다. 그래도 후보가 아닌 주전 선수(메인은 선수는 아니지만)로 시범 대회를 출전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렇게 먼저 고개를 젖히고 밀어서 해봐"

우상과도 같던 형이 자세를 알려주곤 했다.

"우와아아아"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한번 바로 하는구먼. xx는 역시 잘해."

그들끼리 환호하고 웃고 떠드는 사이 나는 슬며시 자리를 비켰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오랜 친구 xx는 운동을 엄청 잘했었다. 합기도, 축구, 농구, 수영 등 그 상황에 던져만 두면 스스로 바로 터득해서 수준급의 실력을 선보였다. 나는 항상 같은 것을 배웠고 같은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항상 늦었고 뒤처졌었다. 그 친구가 5번 하면 될 것을 나는 500번을 해야 했었다. 과장이 아닌 실제로 그랬었다. 어느 수준까지는 비슷하게 올라갔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2학년 사이부터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종훈아, 이렇게 해봐. 다시 하면 할 수 있겠는데? 그렇지! 그거야. 그거. 됐어. 다시 해봐!"

친구가 환호를 받고 꼬박 6개월이 걸렸다.

내가 고꾸라지는 모습을 남들이 혹여라도 볼까 몰래 연습하곤 했다.

나도 연습 없이 잘하는 모습을 한 번에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나이 11살이었다.


운동이 좋았지만 못하는 것이 스트레스였고 남들과 자연스레 비교당하는 것이 창피했지만 누구보다 잘하고는 싶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10번 하면 1,000번 연습을 했다. 그래야 수준이 비슷해졌고 그러다 보니 중학생이 된 나는 전국 대회는 밥 먹는 듯이 나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모든 결과는 운동을 잘하고 싶지만 남들보다 못하는 '콤플렉스'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이렇게 낳아준 부모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를 갉아먹다가는 내가 사라질 것 같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새로운 '콤플렉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까지는 체중이 적게 나가더라도 대회에서 키로 압도하면 됐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체중이 적게 나가는 것은 약점이 되기 시작했다. 다들 체력이 좋아지고 힘이 세지기 때문에 같은 체중이면 불리하기 부분들이 많아진다. 대전시 대표로 발탁이 되었을 당시에도 나는 항상 해오던 연습을 밤늦게까지 했었지만 더 이상 그 격차를 줄일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붙잡을 힘이 남아있지 않아 스스로 눈을 가리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콤플렉스'가 '자존심'이 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형사가 되기 위해 경찰 공부를 노량진까지 가서 시작했지만 공부라고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는 자꾸 다른 길로 새어나갔다. 그래도 운동을 해왔다는 자존심 하나에 덩치가 우람한 친구들보다 힘이 세다고 스스로 자만했고 지지 않을 거라고 혼자 다짐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혼자서 키워나간 것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이 왜 이렇게 없어?", "여자보다 다리가 가는 거 같아", "해골이 따로 없네" 매일 같이 나를 갉아먹던 '콤플렉스'를 사람들은 나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이렇게 낳아준 부모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를 갉아먹다가는 내가 사라질 것 같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나아지기 위한 노력은 나에게 잊혀간 지 오래되었고 남 탓을 하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었고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좋은 방법이었다. 결국 얻는 것 없는 자책과 원망만이 나의 20대 초반을 앗아갔다.


다른 일을 할 심산으로 고향으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 선택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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