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福音)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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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초대장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의 어느 작은 마을. 가난한 농부인 당신은 오늘도 땀 흘리며 밭을 갈고 있습니다. 내일 먹을 빵조차 걱정해야 하는 고된 하루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립니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황실 전령이 당신 앞에 멈춰 섭니다.

"황제 폐하의 명으로 전하노라!"

전령의 손에는 황제의 인장이 찍힌 양피지가 들려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신이 황제의 생일 축제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초대장이 아닙니다. 이 한 장의 문서가 당신의 신분을, 운명을, 미래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이 초대장의 이름은 유앙겔리온.....우리말로 번역하면 복음(福音), 곧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소식'을 찾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수백 개의 알림이 쏟아집니다. 누군가의 결혼 소식, 정치 뉴스, 연예인 이야기, 주식 정보, 추천 영상…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매일 떠밀리듯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이렇게 많은 소식을 접하는데도 마음 깊은 곳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목마른 것 같습니다.

밤에 혼자 누웠을 때 찾아오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게 다인가?" "이 공허함은 도대체 뭐지?"

어떤 사람은 술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쇼핑에서, 어떤 사람은 일에서, 어떤 사람은 관계에서 찾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예외는 없다. 그런데 인간은 주변의 모든 것으로 이 구멍을 채우려 헛되이 노력한다. 이 무한한 심연은 오직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말한 그 구멍, 그 심연. 여러분도 느끼신 적 있으십니까?


종교와 복음은 다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 기독교 이야기구나. 또 종교 권하는 거 아냐?"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복음은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와 정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조언(advice)을 합니다. "이렇게 살아라", "이 규칙을 지켜라", "충분히 착하게 살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당신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충분히 잘 살았는지, 아닌지. 불확실하고 불안합니다.

반면 복음은 소식(news)입니다.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났다", "당신을 위해 누군가가 이미 모든 것을 했다", "당신은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차이가 보이십니까?

종교는 "하나님을 찾아라"고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당신을 찾아오셨다"고 말합니다. 종교는 해야 할 일의 목록입니다. 복음은 이미 끝난 일에 대한 보고입니다.


1.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전통적인 이해 — 개인의 구원

복음에 대한 가장 전통적인 이해는 이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를 지었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여기서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내 자신이 그 자리에 앉으려는 근본적인 반역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공허함과 불안, 삶의 의미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종교 개혁 이후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평안을 가져다준 메시지입니다.


더 넓은 이해 — 하나님 나라의 회복

20세기 후반, 신학자 톰 라이트를 비롯한 학자들은 이 전통적 이해가 복음의 일부만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복음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 훨씬 더 크고 장엄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

예수님은 "죽어서 천국 가는 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 나라란 무엇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왕국에 반란이 일어나 도둑이 왕을 몰아내고 백성들을 억압하며 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혼란과 불의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진짜 왕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도둑을 물리치고 왕좌를 되찾습니다. 그 순간 선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왕께서 돌아오셨다! 왕의 통치가 회복되었다!" 이것이 그 나라 백성들에게 최고의 좋은 소식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인류는 죄로 인해 하나님을 거부하고 반역했고, 그 결과 악의 세력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악의 권세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셨습니다. 복음은 바로 이 선포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셨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전체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 주는 사건들이었습니다.

병자를 고치신 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사탄의 통치가 무너지고 있음을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28)

가난한 자, 소외된 자와 함께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다는 혁명적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은 그 모든 것의 절정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리셨고, 부활로 그 승리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여전히 악으로 가득할까요?

당연히 드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셨다면, 왜 전쟁과 불의가 계속되는 걸까요?

2차 세계대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은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연합군의 승리는 사실상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실제로 끝난 것은 1945년 5월 승전기념일(V-Day)이었습니다. D-Day와 V-Day 사이에도 여전히 전투가 있었고 희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D-Day입니다. 결정적 승리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V-Day)에 그 승리가 완전히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승리한 왕의 백성으로서, 아직 남아 있는 악과 싸우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펼쳐 나가는 시대입니다.


두 이해는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전통적 이해와 더 넓은 이해는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완성합니다.

전통적 이해는 어떻게 한 개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구원을 받는가를 명확히 보여 줍니다. 더 넓은 이해는 복음이 단지 내세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실현과 창조 세계 전체의 회복을 포함하는 장엄한 이야기임을 보여 줍니다.

온전한 복음은 이 둘을 함께 붙듭니다. 구원은 문이고, 하나님 나라는 그 문을 통해 들어가 누리는 삶입니다.


2. 복음은 당신을 향한 초대입니다

이론적인 이야기는 충분히 했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이 복음이 지금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강제로 들어오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자유로운 결단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초대에 응답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첫째,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십시오. 하나님 없이 내 방식대로 살아온 모습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분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그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셋째, 그분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셔들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이것을 기도로 표현하고 싶으신 분은 이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내 방식대로 살아온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저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지금 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저의 구원자, 저의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제 삶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도에 진심이 담겼다면, 여러분에게는 지금 이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3. 복음은 세상을 바꿉니다

복음은 개인의 마음을 바꾸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역사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윌리엄 윌버포스 — 노예제도를 무너뜨린 한 사람

18세기 영국에서 노예무역은 국가 경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이것을 건드리는 것은 국가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원의원이었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복음을 만난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두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것과 이 나라의 관습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그는 1787년부터 20년간 의회에서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제출했지만 번번이 부결되었습니다. 목숨의 위협도 받았고 건강도 악화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807년 노예무역 폐지법이 통과되었고, 1833년에는 노예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윌버포스는 그 소식을 들은 지 사흘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노예무역 폐지로 영국이 입은 경제적 손실을 260조 달러로 추산합니다. 그럼에도 그의 복음 신앙이 국가 전체를 움직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 꿈을 가진 목사

20세기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은 백인 전용 학교, 식당,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고 투표권도 실질적으로 박탈당한 상태였습니다.

침례교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에게 정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었고,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963년 워싱턴 행진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비폭력 저항운동은 1964년 민권법 통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1968년 암살당했지만, 그의 신앙에 근거한 운동은 미국 사회의 제도적 인종차별을 무너뜨렸습니다.


복음은 유명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창한 계획 없이, 단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복음을 살아낸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잔나 웨슬리는 18세기 영국의 평범한 목사 아내였습니다. 19명의 자녀를 낳았고, 가난한 살림에 허덕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일 저녁 두 시간을 '거룩한 시간'으로 정해 자녀 한 명 한 명과 개별적으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한 번도 강단에 서지 않았고, 책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부엌에서 자녀들에게 복음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이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였습니다. 이들이 이끈 18세기 대각성 운동은 영국 사회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제임스 해리슨은 평범한 호주의 철도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14살 때 수혈로 생명을 건진 후 헌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혈액에 희귀한 항체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고, 이것으로 만든 약이 수많은 신생아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60년 동안 1,173회 헌혈해 240만 명이 넘는 아기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루터교 신자였던 그는 헌혈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1934년 중국에서는 젊은 선교사 부부가 공산 게릴라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후 3개월 된 딸만 남기고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중국인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그 아기를 구출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할 수 있던 시대에, 원수의 아기까지 품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평범한 신자들이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마지막 초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인 복음이, 오늘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소식도 이 소식만큼 크지 않습니다. 어떤 초대도 이 초대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점검하기]

1. 이 글을 읽기 전, 내가 생각하던 복음은 무엇이었습니까? 읽고 난 후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2. 복음이 '개인의 구원'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는 사실이 나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줍니까?

3. 복음은 지금 내 삶의 모든 영역 — 가정, 직장, 관계, 가치관 — 을 실제로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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