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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목소리, 닫힌 귀
도심의 번화가나 지하철역 입구, 확성기 소리와 함께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붉은 띠의 전도자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 그 소리는 잠든 영혼을 깨우는 경종이었을지 모르나, 오늘날 행인들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은 소음이자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복음은 여전히 진리이지만, 그 진리를 담아내는 그릇과 전달하는 방식이 시대와 불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전도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단순히 전도 방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 자체가 대중에게 매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이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천 명을 모아놓고 외치던 대중전도의 향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2천 년 전,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폭발적인 생명력으로 퍼져나갔던 초대교회의 '삶을 통한 전도'로 회귀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메신저에 대한 불신
전도의 문이 닫힌 가장 큰 원인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에 대한 신뢰 상실에 있습니다. 개인 간에 대화를 할 경우에도 옳은 이야기를 기분 나쁘게 하면 상대방이 전달 방식 때문에 전달 내용에 귀를 기울이기 어렵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개신교)가 가진 이미지는 안타깝게도 '배타성', '이기주의', '언행불일치'라는 키워드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나 주요 리서치 기관의 신뢰도 조사에서 개신교는 타 종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신뢰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2030 젊은 세대에게 교회는 '비상식적이고 소통이 불가능한 집단'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부정적인 이미지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복음의 진입 장벽을 높였습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선도하고 구제와 봉사에 앞장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 매체에 비친 교회의 모습은 세습 문제, 재정 비리, 정치적 편향성, 그리고 타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공격적인 선교 방식 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묻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사랑과 구원이 당신들의 삶에는 왜 나타나지 않는가?"
교회가 사회적 공공성을 상실하고 개교회주의에 함몰된 사이, 세상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마케팅으로 치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뢰라는 밑거름이 없는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던지는 선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거나, 오히려 반감만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중전도를 멈추고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시작은 어떠했습니까?
초대교회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형 전도 집회나 조직적인 전도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서슬 퍼런 핍박 아래 있었고, 거대한 예배당도 없었으며, 사회적 지위도 낮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던 313년, 로마 제국 인구의 약 10퍼센트가 교회에 소속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문헌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공개석상에서 신앙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전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말의 힘이 아닌 삶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신자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교회의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 사회가 돌보지 않던 고아와 과부, 병든 자들을 자기 가족처럼 돌보았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가족조차 환자를 버리고 도망칠 때, 남아서 그들을 간호하다 죽어간 이들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윤리적 탁월함과 공동체적 사랑은 불신자들에게 거룩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로마의 어떤 황제조차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빈민뿐만 아니라 우리(이교도)의 빈민까지 먹여 살린다"고 표현하였을 정도입니다. 초대교회의 전도는 논쟁을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사랑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질문을 유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들은 왜 저렇게 사는가?"라는 질문 앞에 그들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의 전도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생명력이 넘치는 공동체를 가꾸어 감으로써 생긴 부산물에 불과하였습니다.
교회사에 가장 오래된 설교문으로 알려진 제2클레멘트 서신을 보더라도 가르침과 일치된 삶을 얼마나 강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로 인해 그 이름이 훼방 받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주님은 '내 이름이 너희로 말미암아 항상 모든 민족 가운데서 모독을 받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일로 그분의 이름이 모독을 받습니까? 여러분이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모독을 받으십니다. 이방인들은 우리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탁월함과 가치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의 행위가 우리가 말하는 바에 합당하지 않음을 알고는 비방거리로 삼아 우리 말이 허탄하고 거짓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마는,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면 상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들을 때면, 그들은 이 말씀의 선함에 놀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워하는 자는 고사하고 사랑하는 자도 사랑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은 비웃으며 그 이름이 모독을 받습니다."
모더니즘의 시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대중전도 방식은 기독교 역사의 전체 흐름에서 볼 때 비교적 근대의 산물입니다. 18세기 조지 화이트필드와 존 웨슬리로부터 시작된 영적 대각성 운동, 19세기 찰스 피니, 그리고 20세기 빌리 그레이엄으로 이어지는 대형 부흥 집회는 대중전도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이 방식은 산업화 시대, 대중 매체의 발달과 궤를 같이합니다. 많은 사람을 한 장소에 모으고 스피커를 통해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모더니즘' 시대에 최적화된 방식이었습니다. 서구의 경우 당시에는 기독교 문화가 서구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었고, 한국의 경우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가 선진 문명으로 인식되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권위 있는 연사가 전하는 절대 진리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거리에서 외치는 복음에도 일말의 호기심과 경외심을 가졌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그러나 시대가 변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절대 진리의 거부, 다원주의, 그리고 개인의 프라이버시 존중입니다. 현대인은 획일적인 메시지 선포를 싫어하며, 검증되지 않은 낯선 이의 접근을 경계합니다. 또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광고성 메시지를 본능적으로 필터링합니다. 지하철에서의 고성방가식 전도나 획일적인 전도지를 나눠주는 행위는 이제 복음 전파가 아니라 '스팸(Spam) 메시지'와 다를 바 없이 취급됩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그물을 던지던 대중전도의 시대는, 개인의 취향과 진정성을 중시하는 현대에는 한계에 부딪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초대교회의 길, 즉 관계전도로의 대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전도 전략의 수정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운동입니다. 관계전도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과정'이며, 말이 아니라 '삶'입니다.
1) '불특정 다수'에서 '한 영혼'으로
예수님은 군중을 가르치셨지만, 전도의 핵심은 언제나 인격적인 만남에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한 명을 만나기 위해 길을 돌아가셨고, 세리 삭개오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관계전도는 내 주변에 하나님이 붙여주신 가족, 친구, 동료, 이웃이 바로 나의 선교지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전단지를 돌리는 것보다, 매일 마주치는 직장 동료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 오늘날에는 더 강력한 전도입니다.
2) '선포' 이전에 '경청'과 '섬김'이 선행되어야
신뢰가 깨진 시대에 말은 힘을 잃습니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진정성 있는 경청과 대가 없는 섬김뿐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때 비로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영적 호기심이 싹틉니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기다리듯, 관계전도는 인내심을 갖고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3) '교회로 데려오는 것'보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과거의 전도가 불신자를 교회 건물 안으로 데려오는 것에 집중했다면, 관계전도는 내가 있는 그곳을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정직하게 사업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손해를 보더라도 윤리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 그 '차별화된 삶' 자체가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곧 전도지가 되어야 합니다.
관계전도는 '사냥(Hunting)'이 아니라 '농사(Farming)'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기다리는 인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불신자의 닫힌 마음을 열고 복음으로 초대하는 구체적인 4단계 방법론입니다.
1단계: 밭 갈기 (관계의 대상 선정과 중보기도)
전도는 사람의 설득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기도가 가장 먼저입니다.
대상자 명단 작성하기: 막연히 "누군가에게 전도해야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름을 적어야 합니다. 나의 가족, 친척, 친구, 직장 동료, 자주 가는 가게 점원 등 내 주변의 인물 3~5명의 이름을 적습니다.
구체적인 필요를 위한 기도: "예수 믿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와 함께,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위해 기도합니다. 승진, 자녀 문제, 건강 회복, 가정의 평화 등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비는 기도를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시작합니다. 이는 전도 대상자의 영적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영적 분위기 파악하기: 그들이 현재 인생의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살핍니다. 대체로 사람이 신을 찾게 되는 시기는 인생의 위기(질병, 실직, 이별 등)나 변화(이사, 출산, 결혼 등)의 때입니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영적 타이밍입니다.
2단계: 씨 뿌리기 (신뢰 형성 및 공감대 형성)
부정적인 기독교 이미지를 깨는 유일한 방법은 '상식적이고 따뜻한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기보다 성실과 친절하게 인간적인 면을 먼저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경청'의 기술 (7:3 법칙): 만났을 때 70%는 듣고 30%만 말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내 이야기(교회 자랑)보다는 상대방의 관심사(취미, 자녀, 맛집, 회사 일)를 주제로 대화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중간중간에 추임새로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문은 열립니다.
전략적 밥상 공동체: 초대교회의 전도는 식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창한 선물이 아니라 커피 한 잔, 따뜻한 밥 한 끼를 사는 것이 관계의 윤활유가 됩니다. 무심히 건네는 작은 관심의 선물 하나가 수백 장의 전도지보다 강력합니다.
직업적 탁월함과 정직: 직장인이라면 업무에서 성실함과 실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솔선수범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저 사람은 교회 다니더니 역시 다르네"라는 평판이 최고의 전도 메시지입니다.
3단계: 물 주기 (섬김과 간증을 통한 호기심 유발)
신뢰가 쌓였다면, 이제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를 자연스럽게 노출해야 합니다.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 상대방이 도움이 필요할 때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 도움을 받는 순간 마음 문이 열리게 마련입니다.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범위를 정해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시간과 금전적인 지출이 뒤따를 수 있으나, 마리아가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린 것처럼 이런 섬김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거룩한 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간증 준비: 논쟁적인 교리 설명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대신 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를 믿기 전 나의 모습 (불안, 허무, 분노 등), 예수를 만나게 된 계기, 믿은 후 변화된 나의 삶 (평안, 기쁨, 회복) 이렇게 3단 구성을 짧게 요약해 두었다가, 상대방이 인생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 "나도 예전엔 그랬는데..." 하며 자연스럽게 들려줍니다.
4단계: 거두기 (초대와 복음 제시)
충분한 관계가 맺어졌다고 판단될 때, 용기 내어 초대합니다.
교회로 초대: 교회에서 불신자 초청의 날이 있을 경우 초대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선 환경에 주저하기 마련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핑계를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대상자가 마음에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해 줍니다.
부담 없는 초대 화법: "이번 주에 좋은 말씀(혹은 행사)이 있는데, 부담 갖지 말고 딱 한 번만 오셔서 들어보시죠. 끝나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얘기도 좀 하시고요" 정도로 제안합니다. 거절당하더라도 "그래, 다음에 기회 되면 가자"며 쿨하게 넘기고 관계를 지속하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AS: 당연히 한 번 교회에 왔다고 끝이 아닙니다. 교회에 온 후 느낌이 어땠는지 묻고, 불편했던 점은 없었는지 세심하게 살핍니다. 정착은 전적으로 성령님께 맡기고, 우리는 계속해서 좋은 친구로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필자의 전도 방법
1단계 적용: 자신의 생활 반경을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는 게 좋습니다. 필자의 경우 업무의 성격상 사건 의뢰인들이 전도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분들은 법률 사건으로 인해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본모습을 잊거나 감추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곤경에 처했을 때 연약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됩니다.
필자는 성심을 다해 의뢰인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마음이 갈급한 사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한 번은 필자가 교회나 복음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서 사건이 끝난 뒤 교회에 등록한 분도 있습니다.
2단계 적용: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도대상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우선입니다. 만일 필자가 의뢰인으로부터 맡은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원활한 소통도 하지 않으면서 의뢰인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한다면 결과가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할 것입니다.
따라서 업무적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원활한 소통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의뢰인과 업무적인 대화를 하다가 3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의뢰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 외적으로 식사나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업무의 효율성만을 두고 생각한다면 필자의 이런 행동은 업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소비적인 행동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과 같은 '거룩한 소비'입니다.
3단계 적용: 의뢰인과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의뢰인이 인생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가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갈 때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전도대상자가 아닌지 확인을 합니다. 만일 의뢰인이 과거 신앙생활을 했거나 죽음이나 신이나 영원의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할 경우 전도대상자임을 확증합니다. 그때 필자가 하나님을 믿게 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합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어떤 수준의 생활을 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의뢰인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필자가 신앙을 갖기 전과 그 이후의 삶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합니다.
4단계 적용: 일단 교회에 한 번만 나오시도록 초대합니다. 이 경우 가급적이면 오시는 분이 마음에 부담을 갖도록 약속시간과 장소를 명확하게 정합니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악한 영의 공격이 있어 의뢰인이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서 다음에 교회에 가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단계 전략에서 살펴본 전도대상자를 위한 중보기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대중전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은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기회'일 수 있습니다. 거품을 걷어내고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과 '생명'으로 승부할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더 이상 세련된 설교나 거대해진 교회 건물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예수를 닮은 '진짜 그리스도인' 한 사람입니다.
관계전도로의 전환은 단순히 전도 방법론의 변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을 말씀에 따라 살도록 유도하는 영적 훈련이며, 동시에 그 거룩한 삶을 통해 불신자들이 자연스럽게 복음으로 이끌리게 하는 일석이조의 전략입니다. 우리가 삶으로 복음을 증거할 때, 교회는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작은 예수가 될 때, 한국 교회는 다시 부흥할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선교지이고,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복음이 되고, 우리의 관계가 전도가 되는 날, 닫혔던 복음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방인들 앞에서 선행으로 밝게 빛나 그들이 그러한 삶을 보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지금, 당신 곁에 있는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첫걸음을 내딛으시기 바랍니다.
[점검하기]
1. 나는 교회에서의 모습과 사회에서의 모습이 일치하는가?
2.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구원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3. 전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4. 전도에 관심이 없다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