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믿을 수 있는가?

성경의 조작 가능성

"성경? 그거 오래전에 누군가 조작한 거 아니야?"


이런 의문을 한 번쯤 품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실 이 질문은 당연합니다. 2천 년이나 된 고대 문서를, 그것도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필사된 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혹시 권력을 가진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골라 넣고, 불편한 진실은 감춰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신앙의 영역이 아닌 과학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고대 문서를 검증하는 객관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고고학자들은 땅속에 묻힌 증거들을 발굴해 냅니다. 문헌학자들은 수천 개의 고대 사본을 비교 분석하여 원본의 모습을 추적합니다.


글에서는 신약성경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같은 고대 명작과 비교하고, 구약의 기록을 고고학 발굴 성과와 대조하며, 성경 사본들이 어떻게 보존되어 왔는지 추적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66권의 성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확정되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PART 1. 신약성경의 문헌적 신뢰성: 숫자가 말해주는 진실


고대 문서는 어떻게 검증하는가?

고대에는 인쇄술이 없었습니다. 모든 책은 손으로 베껴 써야 했고, 원본은 세월이 지나며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원본 그대로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학자들은 '고서 검증법'을 사용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본이 많을수록, 원본과 사본 사이의 시간 간격이 짧을수록, 사본들끼리 내용이 일치할수록 그 문서는 신뢰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신약성경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압도적인 숫자의 차이

다음 표를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신약성경의 사본은 《일리아스》보다 약 40배나 많습니다. 원본과 가장 오래된 사본 사이의 시간 간격은 10분의 1 수준입니다. 그리고 사본들 간의 내용 일치율은 99.5%에 달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간단합니다. 만약 누군가 성경을 조작하려 했다면, 전 세계에 흩어진 2만 4천 개의 사본을 모두 똑같이 고쳐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성경 밖의 증인들

"그래도 성경 안의 기록만으로는 믿기 어렵지 않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예수와 초기 기독교에 대한 기록은 성경 밖에도 존재합니다.

요세푸스(Josephus), 1세기 유대인 역사가는 예수를 "기적을 행하고 많은 사람을 가르친 현자"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추종자들의 존재를 기록했습니다.

타키투스(Tacitus), 로마의 역사가는 A.D. 64년 로마 대화재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 이름의 창시자인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본티오 빌라도 총독의 손에 처형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기독교를 옹호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타키투스는 기독교에 적대적이었습니다. 적대적인 증인의 증언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요?


"예수는 고대 신화를 베낀 것 아닌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오시리스나 아티스 같은 고대 신들의 신화를 모방한 거야. 죽었다가 부활하는 신 이야기는 이미 많았어."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버드 대학의 헬무트 쾨스터(Helmut Koester) 박사를 비롯한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독교가 생기기 전에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한 신'을 믿었던 종교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기독교와 유사한 의식을 가진 신비 종교들은 대부분 기독교가 확산된 이후인 A.D. 2~3세기에 나타났습니다. 누가 누구를 모방한 걸까요?


신약성경은 검증을 통과했다

신약성경은 고대 문서 검증의 모든 기준을 압도적으로 통과합니다. 사본의 수, 원본과의 시간 간격, 내용 일치율 모든 면에서 다른 고대 문헌을 훨씬 능가합니다. 성경 밖의 역사 기록들도 핵심 내용을 뒷받침하고, 신화 차용설은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은 어떨까요? 훨씬 더 오래된 문서인데, 신뢰할 수 있을까요?


PART 2. 구약성경의 역사적 기반: 땅이 증언하다


신화인가, 역사인가?

구약성경은 신약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일부는 3천 년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책은 신화와 전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고고학 발굴이 구약의 기록들을 하나씩 확인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땅속에서 나온 세 가지 증거

1) 텔 단 석비 (Tel Dan Stele) - 다윗은 실존했다

1993년, 이스라엘 북부에서 발견된 이 석비는 학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9세기경의 유물로 추정되며 고대 아람어로 기록된 석비입니다. '다윗 왕조(House of David)'라는 문구가 명확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왜 충격이었을까요? 과거 다윗 왕의 행적에 비추어 볼 때 다윗 왕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 인물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석비는 성경 밖에서 다윗의 존재를 증명한 최초의 증거였습니다. 이 발견 이후, 다윗을 신화라고 주장하던 학자들은 조용해졌습니다.


2) 니느웨 유적의 발견

성경에는 앗수르 제국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여러 예언자들이 앗수르에 대한 예언을 했고 특별히 성경 요나서와 나훔서에서는 예언의 대상이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를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 니느웨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845년 영국의 고고학자 헨리 레이어드에 의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발굴한 유물 중에는 기원전 825년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블랙 오벨리스크(Black Obelisk)가 있는데, 5단으로 구성된 부조(조각) 중 두 번째 단(Row) 바로 윗부분에 쐐기문자로 아래와 같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I received the tribute of Iaua(Jehu) the House of Humri (Omri): silver, gold, a golden bowl, a golden vase with pointed bottom, golden tumblers, golden buckets, tin, a staff for a king [and] spears."

"나는 오므리의 아들(오므리 가문) 예후로부터 은, 금, 금 사발, 밑이 뾰족한 금 화병, 금잔, 금 양동이, 주석, 왕의 지팡이, 창을 조공으로 받았다."

이는 열왕기하 9-10장에 등장하는 예후 왕의 존재를 성경 외의 기록에서 증명하는 최초의 증거입니다.


3) 앗시리아 제국의 기록 - 적국의 증언

시카고 대학의 박물관에는 현재의 이라크 땅에서 고고학탐사팀이 발굴한 높이 40cm 남짓한 6각 기둥 형태의 산헤립 육각주(Sennacherib's Hexagonal Prism)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유각주의 제작시기를 주전 689년으로 보고 있는데, 기둥에는 여덟 번의 군사 원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유다 왕국을 침공하여 히스기야 왕과 맞붙은 제3차 원정입니다(아래 글은 육각주의 글을 번역한 번역문입니다).

"As for Hezekiah the Judahite, who did not submit to my yoke: forty-six of his strong, walled cities, as well as the small towns in their area, which were without number, by leveling with battering-rams and by bringing up seige-engines, by attacking and storming on foot, by mines, tunnels, and breaches, I besieged and took them.“

"나의 멍에에 굴복하지 않은 유다인 히스기야에 대하여: 나는 그의 견고한 성벽 도시 46개와 그 주변의 수많은 작은 마을들을 공성퇴로 무너뜨리고, 공성기 배치, 보병 공격, 성벽 아래 굴착 및 파쇄를 통해 포위하고 점령했다.“

"200,150 people, great and small, male and female, horses, mules, asses, camels, cattle and sheep without number, I brought away from them and counted as spoil. Himself [Hezekiah], like a caged bird, I shut up in Jerusalem, his royal city."

”남녀노소 200,150명의 사람들과 말, 노새, 당나귀, 낙타, 소와 양 등 셀 수 없이 많은 전리품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내 것으로 계산했다. 그(히스기야) 자신은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그의 왕성인 예루살렘에 가두어 버렸다."


이는 열왕기하 18~19장의 내용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산헤립의 기록에는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고 기록하지 않고 '가두었다'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기록되었을까요?


성경은 예루살렘이 기적적으로 구원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열왕기하 19:35,36)


한자에 나타난 창세기 이야기

인류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왜 고대 역사 기록에는 창조, 에덴동산, 타락, 홍수 같은 창세기의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을까요? 창세기에만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자 속에 창세기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동쪽으로 이주한 고대인들이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거나 구전으로 전해 들었던 인류 기원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한자에 그 흔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禁 (금할 금): '보일 시(示)'는 제물을 차려놓는 제단을 본뜬 모양으로 하나님을 뜻합니다. 에덴동산 중앙의 두 그루 나무(林,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서 하나님(示)께서 "먹지 말라"고 금지하신 명령을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婪 (탐할 람): 두 그루 나무(林) 곁에 서 있는 여자(女, 하와)가 선악과를 탐내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는 구절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裸 (벗을 라): 이 글자는 죄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금지된 과일(果)을 먹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수치를 가리기 위해 옷(衣)이 필요하게 된 아담과 하와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세기 3:6-7)


田 (밭 전): 밭(田)은 단순히 밭을 넘어 네 방향으로 물이 흐르는 동산의 모습을 상징하며, 이는 에덴동산의 이상적인 환경을 나타냅니다. 창세기 2장에 묘사된 말씀을 상기시키는 글자입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세기 2:10)


男 (사내 남):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에덴동산(田)에서 쫓겨나 힘쓰고 수고해야(力) 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창세기 3:18-19)


船 (배 선): 배(舟)에 여덟(八) 사람(口)이 탔다는 사실을 기록한 글자입니다. 대홍수에서 노아 부부와 그들의 세 아들 부부, 총 8명이 구원을 얻었음을 나타냅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베드로전서 3:20)


義 (옳을 의): '나(我) 위에 어린 양(羊)이 있으니 의롭게 된다'는 신학적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는 희생 제물을 통해 죄를 덮고 의로워지는 구원의 원리를 담고 있는 글자입니다.


이처럼 한자의 여러 글자들이 창세기의 주요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해석은, 고대인들이 인류 기원에 대한 공통된 기억을 문자 속에 보존하려 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창세기는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베낀 거 아닌가?"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홍수 이야기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외형적 유사성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단순한 모방일까요?

아닙니다. 많은 구약학자들은 창세기가 오히려 당시 신화를 의도적으로 비판하고 전복시키려는 전략을 사용했다고 분석합니다. 이를 '반박 신학(Polemical Theology)'이라고 부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태양과 달

고대 신화: 태양과 달은 강력한 신으로 숭배됨

창세기: 이들을 단지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로 격하,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함

2) 인간

고대 신화: 인간은 신들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창조됨

창세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존엄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책임을 가짐

3) 홍수

고대 신화: 홍수는 인간의 소음 때문에 화난 신들의 변덕임

창세기: 홍수는 인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임


땅이 성경을 증언한다

고고학적 발굴과 주변 문화의 기록들은 구약성경이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문서임을 보여줍니다. 다윗 왕조는 실존했고, 솔로몬의 건축 사업은 실제로 있었으며, 앗시리아의 침공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습니다. "원본은 없고 사본만 남았는데, 필사 과정에서 내용이 바뀌지 않았을까?"


PART 3. 본문 전승 과정의 문제: 조작인가, 보존인가?


사실을 직시하자

성경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필사자들이 손으로 베껴 쓴 사본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까요?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신뢰할 수 없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닙니다. 오히려 사본들 사이의 차이점들이 성경의 신뢰성을 증명해 줍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99.5%의 일치율이 말해주는 것

신약성경의 모든 사본을 비교했을 때, 약 99.5%가 일치합니다. 나머지 0.5%는 무엇일까요? 대부분은 철자 오류와 비슷한 단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차이들이 성경의 의미를 바꾸지는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의미와 내용이 달라진 경우는 사실상 없습니다.


오히려 이 0.5%의 차이는 악의적인 조작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누군가 성경을 조작하려 했다면, 전 세계의 사본들을 모두 똑같이 고쳤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본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필사되었기에 작은 차이들이 생겼습니다. 이 차이들이 오히려 조작이 없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성경에서 구절이 사라졌다던데요?"

"마태복음 18장 11절이 현대 성경에는 없던데, 교회가 내용을 숨긴 거 아닌가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A.D. 3~5세기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초기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없습니다. 후대의 필사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복음서의 유사한 구절(누가복음 19:10)을 가져와 추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성경 번역자들은 이런 후대 추가 부분을 삭제하고, 대신 각주에 "어떤 사본에는 이러이러한 내용이 있음"이라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숨기는 게 아니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없음)' 표시는 성경을 조작한 증거가 아니라, 원문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복원하려는 학문적 노력의 결과입니다. 오히려 교회가 정직하게 학문적 연구를 받아들인 증거입니다.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일치

1947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가 일어났습니다.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의 발견입니다.


그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구약 사본은 A.D. 900년경의 '마소라 본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해 동굴에서 B.C. 125년경에 기록된 이사야서 전체 두루마리가 발견되었습니다. 무려 1,000년의 시간 차이가 있는 두 사본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학자들은 놀랐습니다.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백 번의 필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본은 거의 동일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 필경사들이 경이로운 수준의 정밀함으로 성경을 보존해 왔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한 글자 한 글자를 세며, 실수가 있으면 그 줄 전체를 다시 썼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조작이 아니라 투명성의 증거

사본들 사이의 작은 차이들은 악의적 조작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 세계에 흩어진 사본들이 독립적으로 필사되었고, 그럼에도 99.5%가 일치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현대 학자들의 본문 비평 작업은 숨기려는 시도가 아니라, 원문에 더 가까이 가려는 정직한 노력입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66권의 성경은 누가, 언제, 어떻게 결정했는가?"


PART 4. 정경의 형성: 권력의 산물인가, 공동체의 인정인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만들었다?"

때때로 이런 주장을 듣습니다. "로마 황제나 교회 권력자들이 회의를 열고, 자기들 마음에 드는 책들만 골라서 성경을 만들었다. 불편한 책들은 다 빼버렸다."

정말 그럴까요?


정경화가 필요했던 이유

A.D. 2세기, 초기 교회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마르키온(Marcion)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자신만의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 전체와 신약의 대부분을 거부하고,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일부만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이단도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도마복음', '유다복음' 같은 자기들만의 문서를 만들어 기독교의 가르침을 왜곡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무엇이 진짜 기독교의 가르침인가? 어떤 책이 권위가 있는가?"

정경화는 권력자들이 내용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앙의 기준을 흐리려는 외부의 도전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정경을 결정했는가?

교회는 책을 선택할 때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성(Apostolicity): 사도들이 직접 쓰거나, 사도들과 가까운 동역자가 썼는가?

보편성(Catholicity): 여러 지역의 교회들이 오랫동안 널리 사용해 왔는가?

정통성(Orthodoxy):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정경 확정의 과정

정경이 오늘날의 형태로 확정된 것은 한순간의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수 세기에 걸친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A.D. 140년경: 이미 4복음서와 바울 서신들이 널리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A.D. 367년: 아타나시우스가 신약 27권의 목록을 공식적으로 제시했습니다.

A.D.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가 이 목록을 재확인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카르타고 공의회가 성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교회가 사용하고 권위를 인정해 온 책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판결은 어떤 사실을 인공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실을 정리하여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 정경: 왜 개신교와 가톨릭의 성경이 다른가?

구약 정경을 둘러싸고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히브리어 성경은 39권이지만, 그리스어 70인역(Septuagint)에는 추가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Jerome)와 아타나시우스는 히브리어 성경 39권만 정경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70인역에 포함된 추가 문서들(제2경전)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서방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따랐고, 이것이 가톨릭 전통이 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때 개신교는 히브리어 성경 39권 만을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PART 5. 결론: 증거 앞에 선 우리의 선택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긴 여정을 마쳤습니다. 처음 던졌던 질문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성경은 믿을 수 있는가', '후대에 조작된 문서 아닌가?"

증거들을 정리해 봅시다.

1) 신약성경: 24,000개 이상의 사본, 원본과 25~60년의 시간 간격, 99.5%의 내용 일치율.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보다 40배 많은 사본, 10분의 1 수준의 시간 간격. 요세푸스와 타키투스 같은 적대적 증인들의 교차 검증.

2) 구약성경: 텔 단 석비가 증명한 다윗 왕조의 실존, 세 지역에서 발견된 솔로몬 시대의 동일한 건축 양식, 앗시리아 제국 기록과의 놀라운 일치. 사해 두루마리가 보여준 1,000년에 걸친 경이로운 보존의 정확성.

3) 본문 전승: 99.5%의 일치율과 0.5%의 작은 변이들은 조작이 없었다는 증거. '절 없음' 표시는 원문 복원을 위한 학문적 정직성의 표현.

4) 정경 형성: 권력의 산물이 아닌 수 세기에 걸친 공동체의 인정 과정. 명확한 기준(사도성, 보편성, 정통성)에 따른 신중한 확인 작업.


다른 고대 문헌과 비교해보면

만약 우리가 성경을 '조작된 문서'로 의심한다면, 같은 잣대를 다른 고대 문헌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플라톤의 저작들은 약 7개의 사본으로 전해집니다. 원본과 최고 사본 사이의 간격은 1,200년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는 10개의 사본이 있고, 시간 간격은 1,000년입니다. 타키투스의 역사서는 단 2개의 사본으로만 전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책들이 조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 교과서에 실리고, 대학에서 가르칩니다. 누구도 플라톤의 저작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24,000개의 사본을 가진 성경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조작되었다면 불가능한 것들

만약 누군가 성경을 조작하려 했다면, 다음의 일들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24,000개의 사본을 모두 동일하게 수정하기 - 그 시대에는 인터넷도, 전화도, 빠른 교통수단도 없었습니다.

적대적인 역사가들의 기록까지 통제하기 - 요세푸스와 타키투스는 로마와 유대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기독교 교회가 어떻게 그들의 기록까지 조작할 수 있었을까요?

땅속의 고고학 증거까지 조작하기 - 텔 단 석비, 솔로몬의 성문, 앗시리아의 비문들. 이것들은 20세기에 발굴되었습니다. 1세기 교회가 어떻게 미래의 고고학자들을 속일 증거를 땅속에 묻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1,000년 간격의 사본들이 동일하게 만들기 - 사해 두루마리는 기독교가 생기기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초기 교회가 어떻게 과거로 돌아가 이 두루마리를 조작할 수 있었을까요?


믿음의 눈으로

성경은 당신에게 눈을 감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을 뜨고 증거를 보라고 초대합니다. 역사적 사실들을 조사하고, 고고학 발굴을 확인하고, 사본들을 비교해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증거들은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신뢰할 수 있다.....'

성경의 내용을 믿음으로 눈으로 바라볼 때 하나님의 독생자,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나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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