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에 대한 다양한 관점

칭의 바로 보기

나는 날마다 말씀에 따라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누구의 말이 옳은가?

이런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예수님을 영접했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앞으로 제가 어떻게 살든 그건 구원과는 별개의 문제 아닙니까?"

반대로 이런 말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따라 살면서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어느 쪽이 맞는 말일까요? 한편으로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된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떤 교회에서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며 신자의 삶이 어떠하든 구원은 이미 보장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반면 어떤 교회에서는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며 죽는 날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혼란의 중심에 칭의(稱義)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칭의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어느 한 순간에 완전히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평생에 걸쳐 이루어가야 하는 과정인지를 놓고 기독교 역사는 오랫동안 치열하게 논쟁해 왔습니다.

나치 시대의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값싼 은혜란 회개 없는 용서요, 제자도 없는 세례이며, 십자가 없는 성찬이다." 칭의를 단순히 법적 선언으로만 이해하고 삶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때, 복음은 그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칭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 가톨릭과 개신교는 어떻게 다른가요?

가톨릭의 입장 — "구원은 평생에 걸친 과정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구원을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이루어가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칭의는 하나님의 의로운 성질이 죄인의 마음속에 실제로 심겨져서, 그를 조금씩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의롭다고 선언받는 것'과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이 하나의 과정으로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입장 — "구원은 믿는 순간 완성된 선물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가톨릭의 이 관점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향해 "너는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단번의 선언이라는 것입니다.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에서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칭의는 내가 뭔가를 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믿음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칼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했습니다.

칭의(稱義) — 내가 믿는 순간 단번에 일어나는 신분의 변화.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성화(聖化) — 칭의를 받은 이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평생에 걸쳐 실제로 거룩해져 가는 과정입니다.

이 둘은 개념적으로는 구분되지만, 실제 삶에서는 절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칭의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성화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화는 칭의가 진짜라는 증거입니다.


2. 개신교 안에서도 새로운 논쟁이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개신교 내부에서도 새로운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을 새롭게 읽어야 합니다" — 새 관점 학파

톰 라이트와 같은 학자들은 종교 개혁자들이 바울의 편지들을 16세기 유럽의 상황에 맞게 읽다 보니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이 살았던 1세기 유대교의 맥락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핵심 주장을 쉽게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바울이 비판한 '율법의 행위'는 구원을 스스로 얻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표시들(할례, 음식 규정, 안식일 등)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신실하심을 뜻한다고 봅니다.

셋째, 칭의는 개인의 죄 용서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속하게 되었다'는 선언이라고 봅니다.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 통합적 칭의론

이 관점은 성경의 '이미와 아직(already-not yet)'이라는 구조를 칭의에 적용합니다.

우리는 믿는 순간 '이미' 칭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기 때문에, 칭의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받은 칭의는 구원의 첫 열매일 뿐이고, 최종 완성은 세상 끝날에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3. 구원의 확신,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이 논쟁은 매우 실제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구원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각 관점은 서로 다른 답을 줍니다.

전통적 개신교는 말합니다. 구원의 근거는 내 상태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성하신 일에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구원은 내가 얼마나 잘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사실에 근거한 '보장된 신분'입니다.

새 관점 학파와 통합적 칭의론은 여기에 긴장감을 더합니다.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전 생애를 통해 완성해 나가야 할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빌립보서 2:12

이 관점은 신앙의 진지함을 이끌어 내지만, 동시에 구원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4. 구원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필자도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을 하였는데, 이 모든 논쟁을 하나로 묶어 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구원을 관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생각해 보십시오. 결혼식 날 두 사람이 서약을 나누었다고 해서 그 관계가 자동으로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한쪽 배우자가 아무리 신실해도, 상대방이 관계를 저버린다면 그 결혼은 깨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실한 배우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관계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특성 때문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신실하십니다. 당신의 약속을 결코 스스로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관계인 이상, 우리의 역할과 책임도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관계적인 언어로 표현합니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 예레미야 31:32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 요한복음 15:6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 로마서 11:20-21


출애굽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하는 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을 떠올려 보십시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 구원은 분명하고 완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곧바로 가나안 땅 입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것이 우리를 위한 교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고린도전서 10:5-6, 12


히브리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히브리서 3:14

구원은 순간이 아니라 여정입니다.


관계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반복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깨어 있으라." — 마태복음 26:41
"믿음에 굳게 서라." — 고린도전서 16:13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베드로후서 1:10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 히브리서 3:12

이 권면들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동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삶이 어떤 것인지,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달리기 시합과도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할 수 있는 한, 승리할 때까지 열심히 뛰어가십시오." — 디모데전서 6:12 (쉬운성경)
"우리는 그 누구도 지난날 불순종했던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며,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 4:11 (쉬운성경)


5.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칼빈은 '칭의와 성화는 분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이 둘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어떻게 살든 괜찮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은 묻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continue in my word)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 요한복음 8:31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 히브리서 3:12

특정 교리의 틀에 사로잡혀 '이미 구원받았다'고 안주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아니면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날마다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지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점검하기]

1. 나는 날마다 말씀에 따라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2.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이 장의 첫머리에 나온 두 가지 말, 여러분은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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