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혼, 육의 구별과 그 유익(2)

영에 속한 사람

PART 4. 영이 지배하도록 훈련하는 3가지 방법


우리의 영(속사람)이 혼과 육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치 육체가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듯, 영도 훈련을 통해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 음성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영이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영적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영을 깨우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훈련하는 세 가지 핵심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단순한 삶: 영의 음성을 듣기 위한 환경 만들기


영은 어떻게 말하는가?

성령님은 우리의 영을 통해 인도하십니다. 영의 음성은 추리나 판단과 같은 의식적인 사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뭔가를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직관(直觀), 또는 사람의 오감을 넘어선 육감(The Sixth Sense)과 유사합니다. 필자도 영의 음성에 민감할 때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마음에 떠오르면 얼마 뒤 그 사람과 접촉할 일이 생깁니다. 전화가 오거나, 우연히 만나거나, 그 사람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또한 갑자기 확인해야 할 어떤 일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확인하면 정말 중요한 일이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마음이 이유 없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조건이 다 좋아 보이는데,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입니다. 이는 내 속의 영이 경고등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이성적 판단을 내려놓고 영의 경고를 따르면, 나중에 "아, 그때 그 결정을 안 했더니 정말 다행이었구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제가 그 원인을 이성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를 합니다(방언기도는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로마서 8:26)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혼의 음성은 시끄럽고 논리적이며, 불안과 조급함을 동반하고, 자기 유익을 계산하며, 합리화와 변명이 많습니다.

영의 음성은 조용하고 부드러우며("세미한 음성"), 평안을 동반하고, 말씀과 일치하며, 사랑과 진리의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엘리야는 강한 바람, 지진, 불 속에서가 아니라 "세미한 소리"(열왕기상 19:12)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세미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소음을 줄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단순한 삶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바쁜 사역을 하셨지만, 동시에 가장 단순한 삶을 사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의 일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 있습니다.


"새벽 아직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1:35)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태복음 14:23)


예수님은 무리를 치유하시고 가르치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반드시 '한적한 곳', '따로', '혼자'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왜일까요? 아버지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조차도 분주함 속에서는 아버지의 음성을 선명하게 듣기 어려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하고, 출근길에는 유튜브를 보고, 일하는 중에는 끊임없이 메신저가 울리고, 저녁에는 TV를 켜고, 자기 전까지 SNS를 스크롤합니다. 하루 24시간이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몸은 바쁘더라도 우리의 머리는 순간 순간 하나님께 집중하고 영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의식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어렵습니다.


후드 소리에 묻힌 음성

어느 날 아내가 주방에서 후드를 켜고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이 용건이 있는지 엄마를 불렀는데, 아내는 후드 소리 때문에 부르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계속 "엄마, 엄마" 하고 불렀지만 아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 우리의 일상생활이 너무 분주하면 영의 음성을 듣지 못하겠구나!"

후드 소리는 아내가 요리하는 데 필요한 소리였습니다. 나쁜 소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정작 들어야 할 아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필요한 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주함이 정작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을 차단하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귀먹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단순한 삶을 위한 실천 방법

영의 음성에 민감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서 의도적으로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첫째, 아침 시간을 지키십시오. 출근하기 전, 아이들을 깨우기 전,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10분만이라도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휴대폰이 익숙한 오늘날에는 휴대폰으로 성경 앱을 이용하는 것이 쉬운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필자 역시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던 습관을 고쳐 성경 앱을 가정 먼저 열고 있습니다.

둘째, 정신적인 금식을 실천하십시오. 하루에 10분이라도 모든 전자기기나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처음에는 불안하고 어색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침묵 속에서 당신은 평소에 듣지 못했던 영의 음성을 듣기 시작할 것입니다.

셋째, 의미 없는 약속들을 정리하십시오. 당신의 스케줄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정말 중요한 일입니까, 아니면 그냥 바쁘게 보이기 위한 일입니까? 마르다처럼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누가복음 10:41)하며 사는 것이 영적인 삶이 아닙니다. 마리아처럼 "한 가지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넷째, 잠시라도 혼자 걷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면 그러한 환경을 벗어나 잠시라도 혼자 걷는 시간은 우리의 영을 깨우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합니다.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게으름이나 무책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영적 지혜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 (Meditate)


읽기와 묵상의 차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they are full of the Spirit and life"(NIV 6:63)

살리는 것은 성령님인데 예수님이 이르는 말씀에 성령과 생명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어도 영적으로 무력할 때가 많을까요? 말씀이 우리의 머리(혼)에만 머물고 영까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읽기는 눈으로 훑어보며 정보를 얻어 머리(혼)에 머무는 것이지만, 묵상하기는 입술로 중얼거리며 되뇌고, 말씀이 영 깊이 새겨지도록 곱씹으며, 말씀이 나의 실재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여기서 '묵상하다'의 히브리어 '하가'(hagah)는 '중얼거리다, 낮은 소리로 되뇌다, 곰곰이 생각하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듯, 말씀을 반복해서 씹고 또 씹어 완전히 소화시키는 것입니다.


적용 방법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묵상한다면, 반복해서 읽으며 "염려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를 되뇌고, 염려가 찾아올 때마다 이 말씀을 붙들며, 주야로 생각하여 잠들기 전, 일어날 때, 일하는 중에도 이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필자의 실제 사례

말씀 묵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2008년 7월,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첫째 아들이 태어난 지 며칠 만에 갑작스러운 고열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나왔습니다.

"뇌척수액 검사 결과 아기는 세균성 뇌수막염인 것 같습니다."


세균성 뇌수막염은 사망에 이를 수도 있고, 치료 후에도 청력장애, 언어장애, 발달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높은 병입니다. 의사의 진단을 들으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밤새 격리실 앞 의자에 앉아 있는데, 커튼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울음소리와 불안감으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 선생님이 늦은 시간에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윤 변호사님, 병은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사들의 손을 빌리시는 것뿐입니다."


그 분은 교회에 대한 비판과 불평이 많았던 분이었고, 자신이 의사였기 때문에 필자는 그 말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입술로만 하나님을 의지했구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뒤 대학병원 기도처에서 말씀을 붙들기로 했습니다. 신약성경을 읽어 내려가다가 마가복음 5장 말씀이 강하게 마음을 감동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였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36)


그 본문을 곱씹었습니다.

'메신저가 전한 딸의 사망 소식에 절망했을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믿음을 요구하신다. 의사의 객관적 진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구나'

결국 그 말씀에 사로잡혀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래,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무런 후유증 없이 나을 것이라고 믿자.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러자 짧은 찬양이 떠올랐고 반복해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 두 손을 높이 들고 주께 감사하네." 점차 불안감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회 새벽기도에 참석했는데, 교회에 들어서자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말씀이 제 혼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평안을 가져온 것입니다.

며칠 후 아들의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퇴원하는 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세균성 뇌수막염이었는데,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처럼 경과가 진행되었네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절망의 순간 붙잡은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 제 영을 강하게 했고, 그 강해진 영이 두려움과 불안을 이겼다는 것을. 이것이 말씀 묵상의 능력입니다.


3. 말씀을 실천하라 (Practice)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22)


실천 없는 지식의 위험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 지식은 풍부하지만 영적으로 연약한 이유는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에 대한 설교를 100번 들어도 한 번도 용서해 본 적이 없다면, 믿음에 대한 책을 10권 읽어도 한 번도 믿음으로 행동해 본 적이 없다면, 사랑에 대한 말씀을 암송해도 실제로 원수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의 영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영을 개발하는 가장 빠른 길

영을 성장시키는 공식은 '말씀 + 실천 = 영적 근육'입니다.

예를 들어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25)는 말씀을 실천할 때, 염려가 찾아올 때 의식적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염려를 거절하며 평안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구체적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지만, 반복할수록 영이 강해지고,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평안이 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44)는 말씀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해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을 선포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기회가 되면 선을 베푸는 실천을 통해 영이 강해집니다. 처음에는 감정이 따라오지 않지만, 순종할 때마다 영이 강해지고, 어느새 진짜 용서와 사랑이 마음에 생깁니다.


필자가 20년 전쯤 절친에게 돈을 사기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년 전쯤 절친에게 큰 돈을 사기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오피스텔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며 곧 갚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습니다.

당시 빌려준 돈은 제가 대출을 받아서 준 돈이었기 때문에 배신감이 엄청났습니다. 돈도 문제였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배신감에 사로잡혀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급기야 민형사상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합의를 부탁하면서 연락을 했습니다. 무릇 합의는 돈을 마련한 뒤 진행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 친구는 50만 원씩 분할해서 갚을 테니 합의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합의를 해주지 않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제 영이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용서하라." 만약 제게 신앙이 없었다면 단칼에 거절했을 것입니다. 고심 끝에 합의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너무 홀가분해졌습니다. 그 친구가 2번 정도 돈을 갚고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 상황 속에서 말씀에 따라 순종함으로써 얻은 마음의 평안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진정한 의미를 몸소 체험했다는 사실이 못 받은 돈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즉시 순종하라 (Instantly Obey)

왜 '즉시'여야 하는가? 시간이 지체되면 혼(이성)이 개입하여 "잠깐, 정말 그게 맞아? 다시 생각해 보자"라고 방해하고, 논리적 핑계가 생겨 "지금은 시기가 안 좋아, 나중에 하자"라고 미루게 되며, 불순종이 합리화되어 "이런 상황에서는 예외지"라고 자신을 속이게 됩니다.


필자의 실제 사례

필자가 후원하는 선교사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중앙아시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는 친구의 아들이 미국에서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제 마음에 이상한 감동이 왔습니다. "이 친구 부부에게 후원금을 보내라." 머릿속에 구체적인 금액까지 떠올랐습니다. 몇 십만 원 정도의 단위가 아니었지만 나중으로 미루면 순종하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 즉시 순종하여 파송교회로 송금했습니다.

며칠 후, 선교사 부인에게서 긴 문자가 왔습니다.


"... 남편이 표현을 잘 안 해서 모르실 수도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 간구와 웅얼거림에도 하나님이 얼마나 세밀하게 응답하시는지... 그때마다 두 분을 통해 위로받고 있어요.

이번에 아들의 결혼이 결정되고 나서 솔직히 마음이 좀 힘들었어요. 부모로서 뭐 하나 제대로 못 해주는 게 미안하고 속상하더라고요. 양말 한 짝도 못 사주면서 비행기값 없다고 말할 때 마음이 참... 우리 비행기표도 6개월 할부로 겨우 끊었고, 동생은 비행기값 때문에 못 오는 상황이라 마음이 복잡했어요.

미국 와서도 결혼비용, 생활비, 외식비 다 아들이 감당해야 해서 '하나님, 돈이 필요해요...' 그렇게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기도 잘 안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간절히 하게 되는 순간마다 꼭 두 분을 통해 응답이 와요.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손길 되어 주시는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해요."


문자를 읽으며 소름이 돋았습니다. 만약 제가 계산하고 망설이고 '나중에'로 미뤘다면, 이 정확한 타이밍을 놓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교사 부부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바로 그 순간에 저를 통해 응답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즉시 순종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 실천 훈련 방법

먼저,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일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낮은 단계에서 큰 단계로 순차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00미터를 뛰지도 못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200미터를 목표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습관이 될 때까지 작은 것에 지속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것에 습관이 되었을 때 어려운 순종에 한 발을 내딛습니다. 그 뒤에는 동일하게 습관이 될 때까지 반복하고 습관이 되고 나면 보다 어려운 순종으로 나아갑니다.

필자는 컴패션을 통해 아동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이 태어난 뒤 매년 1명씩 후원하고 있으며, 현재 17명이 되었습니다. 만일 필자가 처음부터 이 인원을 후원하라는 음성을 들었어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매년 한 명씩 후원 아동을 늘여가다 보니 습관이 되고 영적 근육이 형성되게 된 것입니다.


핵심 원리

순종이 먼저, 감정은 나중입니다. 많은 사람이 "느낌이 있을 때 순종하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거꾸로입니다. 영적 성장은 순종 → 믿음의 행동 → 감정 변화의 순서로 일어나지만, 육적 태도는 감정 대기 → 느낌 없음 → 불순종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즉시 순종을 훈련하면 영적 감각이 예민해져 성령의 음성을 더 잘 듣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다"라고 분별하는 확신이 생기며, 하나님의 타이밍이 완벽함을 체험하는 기적을 경험하고, 혼과 육을 다스리는 힘이 생겨 영이 강해집니다.


PART 5. 결론: 온전한 인간, 온전한 성화를 향하여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예수 안에 있고.."

(고린도전서 1:30)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영과 혼을 구별해서 이해하면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죄를 지을 때 그것은 영인 '진짜 당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새롭게 되어야 할 '혼'의 문제이거나 훈련되어야 할 '육'의 문제입니다. 당신이 불안할 때 그것은 영인 '진짜 당신'의 상태가 아니라, 혼(감정)이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며, 영인 당신은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평안합니다.


이 구분을 이해하면 정죄에서 벗어나 "나는 구원받지 못한 게 아니야"라고 확신하게 되고, "내 혼은 변화될 수 있어"라는 소망을 갖게 되며, "어떻게 영을 더 강하게 할까?"라는 훈련에 집중하게 됩니다.


영을 중심으로 사는 삶

영·혼·육의 구분은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중심인 '영'을 바로 세워 인격(혼)과 삶(육)을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시키기 위한 지혜입니다.

이 명확한 자의식을 가지고 말씀 묵상과 순종을 통해 영을 개발할 때, 우리는 환경과 감정에 휘둘리는 연약한 삶을 청산하게 됩니다. 대신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성화의 과정과 영광의 소망

우리의 영을 말씀으로 훈련하고 혼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이 과정, 그리고 육체를 영의 지배 아래 복종시키는 이 여정이 바로 성화(聖化)의 과정입니다.

영의 거듭남은 구원의 순간에 이미 완료되었고, 혼의 변화는 현재 평생에 걸쳐 진행 중이며, 육의 부활은 주님 재림 시에 미래에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날마다 훈련해야 할 영적 과제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장차 부활을 통해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하나 되어 회복될 '온전한 인간'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혼·육의 구분을 이해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요!


[점검하기]

1) 당신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 존재입니까(영 중심)?

2) 환경이 당신을 지배합니까, 아니면 당신이 환경을 지배합니까?

3) 당신은 영을 개발하고 강화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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