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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교회에 한 번이라도 다녀보신 분이라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셨을 말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말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이 두 말은 언뜻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구원의 열쇠가 오직 믿음이라면, 왜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의 '행함'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믿음만으로는 정말 충분하지 않은 걸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이 질문 앞에서 혼란스러워합니다. 이 장에서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이 입장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 인간은 이 선물을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행위나 공로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선한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열매이자 증거라고 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지, 선을 행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적 근거는 분명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10)
"행함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입장은 구원이 믿음으로 시작되지만, 그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함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서 2:24)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26)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두 입장 모두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구원은 절대로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죗값을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에 대가를 지불하려는 것은 선물의 의미를 스스로 퇴색시키는 것입니다. 더구나 구원에 상응하는 대가를 인간이 지불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행함은 구원의 대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행함'이라는 단어에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느끼셨을 것입니다. 앞에서 등장한 '행함'이라는 단어가 항상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요.
성경은 두 종류의 행함을 분명히 구분합니다.
하나는 '율법의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이 강하게 비판한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과 공로로 율법 조항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시도입니다. 구원의 자격을 스스로 얻으려는 헛된 수고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과 야고보가 강조한 '살아 있는 믿음에서 나오는 행함'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결혼의 비유
결혼은 "평생 함께하겠다"는 서약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결혼식에서 이미 서약했어. 이제 배우자를 위해 뭘 따로 할 필요가 없지."
우리는 그 사람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표현되고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결혼생활은 서약으로 시작되지만, 그 서약은 매일의 행동을 통해 살아 숨 쉬게 됩니다. 행동이 없는 서약은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가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실
히브리서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두고 두 구절이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브리서 3:19)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히브리서 4:6)
같은 사건인데, 한 곳은 '믿지 않아서', 다른 곳은 '순종하지 않아서'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이 '믿음'과 '순종(행함)'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곧 순종을 포함합니다.
예수님도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3:36)
행함이 믿음의 '자동' 결과는 아닙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짜 믿음이 있으면 행함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말, 맞는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삶이 자동으로 편안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지적 결단이 필요한 치열한 여정임을 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7)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브리서 12:1)
"믿음을 지키는 것은 달리기 시합과도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할 수 있는 한, 승리할 때까지 열심히 뛰어가십시오." (디모데전서 6:12, 쉬운성경)
믿음대로 살기 위해서는 부단한 의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싸워야 하고, 인내해야 하고,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나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행함은 천국에서의 상급 차이를 결정할 뿐이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나누시는 장면을 말씀하셨습니다. 왼편에 선 사람들은 굶주린 자를 먹이지 않고, 목마른 자를 외면하고, 나그네를 영접하지 않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태복음 25:41)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왼편에 선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고, 믿는다고 고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없었습니다.
행함의 부재는 단순히 상급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인지 죽은 믿음인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원은 끝이 아닙니다.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10)
에베소서 2장 8-9절은 우리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인 10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고, 소금처럼 부패를 막으며,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당신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손과 발이 필요하셨고, 그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출전 선수 명단에 올랐으니 됐어"라며 주저앉는 선수가 있다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이겠습니까?
정직하게 두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며 변화 없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반대로 "선한 일을 많이 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며 율법주의의 무거운 짐에 눌려 계십니까?
위선자는 겉으로는 선한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다른 사람입니다. 자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실체가 드러나도 크게 억울할 게 없습니다. 반면 확신범은 자신이 옳다는 신념으로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그 신념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면 정말 억울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을 망각한 채 종교적 확신범으로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확신 속에서, 정작 그 믿음이 요구하는 삶의 변화와 이웃 사랑의 실천은 외면한 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믿음은 우리를 자기만족의 안전지대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세상 속으로 내보내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4)
나의 신앙생활이 너무 편안하고 아무런 도전도 없다면, 내가 정말 그 좁은 길을 걷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지금,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까?
[점검하기]
아래 질문에 대한 답변 해보기
1)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2) 이때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고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3) 살아 있는 믿음은 행함이 따라오는 믿음입니다.
4) 그러면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