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리는데 왜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까?"
"수입의 10%를 꼭 드려야만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신약 성경 어디에도 십일조를 명령하지 않는데, 왜 교회는 계속 십일조를 강조할까? “
당신도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마음속으로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질문이 불경스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십일조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신앙의 최소 기준이라고 강조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신약 시대에는 자유롭게 드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왜 이렇게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걸까요?
"십일조가 모세의 율법(구약)에 속한 제도인가, 아니면 율법 이전에 시작되어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한 원리인가?"
십일조를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
이 입장은 십일조가 모세 율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원한 원리이므로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거나 최소한의 기준으로 적용된다고 봅니다.
율법 이전의 원리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약 B.C. 1400년경)이 주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아브라함(B.C. 2000년경)과 야곱이 자발적으로 드린 믿음의 행위였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20)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8:22)
예수님의 인정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더 중요한 '정의, 긍휼, 믿음'을 소홀히 한 것을 책망하셨지만, 십일조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십일조의 실천을 인정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3:23)
축복의 원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통해 부어주시는 축복의 원리는 신약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주장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신약에서의 재확인
신약성경인 히브리서가 아브라함의 십일조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는 것 자체가 십일조의 원리가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 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히브리서 7:4~9)
십일조는 구약에 한정된다는 입장
이 입장은 구약의 십일조 '제도'는 모세 율법의 일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혹은 폐지)되었으며, 신약 시대에는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연보'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봅니다.
율법의 완성
십일조는 구약 시대 레위 지파(제사장)의 생계를 유지하고 성전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율법' 조항이었습니다(레위기 27:30, 민수기 18:21). 그러나 제사장 제도와 성전 제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으므로, 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십일조 '법'도 문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새로운 기준: 자발적 헌금의 원리
신약성경 어디에도 교회 성도들에게 '10분의 1'이라는 구체적인 비율을 명령한 구절이 없습니다. 대신 '마음에 정한 대로',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겁게', '수입에 따라' 드리는 자발성과 은혜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9:7)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결론: 그리스도인의 재정원칙 - 주는 것은 신앙고백이다
신약 성경에는 믿음에 대한 구절이 215개, 구원에 관한 것이 218개인 반면, 금전과 재정의 청지기직과 책임에 대해 다루고 있는 구절은 무려 2,084개나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38개 비유 가운데 16개가 금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비록 돈 자체는 악이 아니지만, 돈은 본질적으로 유혹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재정원칙을 어떻게 세우는가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사고파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대가 없는 주는 것은 왠지 불편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원리가 아닌 은혜의 원리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우리가 물질을 대가 없이 줄 수 있는 이유는 물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거나 사업체를 경영하더라도, 사장과 거래처는 하나님이 물질을 공급하시는 통로에 불과할 뿐입니다.
실질적인 재정 원칙: 범위를 정하기
하나님은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복음의 전달자가 되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물질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 불필요한 살이 찌는 이유는 우리 몸에 필요한 양을 넘는 과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적당한 양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이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물질의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복은 자칫 우리 영혼 배만 불릴 수 있습니다. 수입이 늘어날수록 그에 따른 지출도 늘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범위를 정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복을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누가복음 12:18,19)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객관적인 물질의 범위를 정한 뒤, 범위를 초과하는 물질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필자의 실천 사례
필자 역시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고민 속에서 신앙서적들을 읽다가 성경적인 재물관과 원칙을 정립하게 되었고, 앞서 언급한 생활에 필요한 비용의 범위를 정한 뒤 물질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컴패션을 통해 한 명씩 아동을 후원하여 현재 17명을 후원하고 있고, 2명의 선교사를 정기후원하고 있으며 다른 일시적인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교회에 드리는 헌금과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듯이 필자 역시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후원하는 아동의 숫자가 늘어나자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이 물질의 근원이심을 고백하면서 돈이 주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쳐야 했습니다.
10%의 틀을 벗어나기
"10%만 드리면 된다"는 생각은 나머지 90%는 내 것이기 때문에 나의 필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든, 그 이상을 드리든, 혹은 지금은 그보다 적게 드리든 중요한 것은 물질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당신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베풂을 통해 부어주시는 축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6:38 새번역)
우리가 물질을 흘러 보낼 때 하나님은 넘치도록 후하게 더 채워주실 것이며, 우리가 정한 범위에 따라 결국 우리는 더 많은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재정원칙을 세우고 실천한다면 소위 번영신학의 폐해도 극복되지 않을까요!
[점검하기]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재정원칙을 세웠는가?
나는 물질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가?
나는 수입의 몇 퍼센트를 흘려보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