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적 신앙
당신의 교회에서 누군가가 "어젯밤 기도회에서 허리 통증이 즉시 치유되었다"라고 간증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감격하며 하나님을 찬양할까요, 아니면 속으로 '심리적 효과겠지'라고 생각할까요?
2천 년 전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으며,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21세기 과학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단순한 신학적 호기심이 아닙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신앙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 문제입니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습니다. 성경 시대의 기적들이 오늘날에도 계속되는가, 아니면 이미 종결되었는가?
크게 두 가지 대립되는 입장이 존재합니다. 바로 '기적 종결론'과 '기적 지속론'입니다. 이 장에서는 두 입장의 핵심 주장을 살펴보고, 필자의 경험을 통해 이 논쟁이 갖는 실천적 의미를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기적 종결론: 성경의 완성과 은사의 종결
기적 종결론(Cessationism)은 성령의 특별한 은사, 특히 표적 은사가 사도 시대와 성경이 완성된 시점을 기점으로 종결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서 주로 발견되며,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같은 신학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종결론의 신학적 근거
종결론자들은 성령의 은사, 특히 방언이나 병 고침과 같은 표적 은사가 특정한 역사적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고 봅니다. 그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사도들의 권위를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는 아직 신약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고, 복음의 메시지가 참된 하나님의 계시임을 증명할 객관적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기적과 표적은 메시지 전달자의 권위를 확증하는 '인증서' 역할을 했습니다.
둘째, 신약 성경이 완성되기 전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예언과 방언 통역 같은 은사들은 기록된 말씀이 없던 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이 완성되어 모든 계시가 충족된 지금은 더 이상 새로운 계시나 사도적 권위를 확증할 표적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종결론의 핵심 주장입니다.
성경의 충족성 원리
종결론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강조하는 것은 '성경의 충족성(Sufficiency of Scripture)'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완전한 기록을 통해 이미 자신을 충분히 계시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특별한 은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적 지속론: 교회 시대의 계속되는 은사
기적 지속론(Continuationism)은 성령의 은사들이 사도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교회의 완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늘날에도 교회 내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고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이 이 입장을 대표하며, 존 파이퍼(John Piper), A. W. 토저((Aiden Wilson Tozer) 같은 학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지속론의 성경적 해석
지속론자들은 고린도전서 13장 8~10절을 근거로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8-10).
여기서 '온전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핵심 쟁점입니다. 종결론자들은 이것을 '성경의 완성'으로 해석하지만, 지속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성된 하나님 나라'로 해석합니다. 즉, 교회의 시대는 아직 완성이 아닌 진행 중이므로,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은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선교 현장에서의 실제적 역할
지속론자들은 기적과 치유가 복음 전파와 선교 현장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도구라고 믿습니다. 특히 미전도 종족이나 복음이 낯선 문화권에서는 하나님의 치유와 권능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실질적인 증거가 됩니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의 많은 선교 보고서들은 기적과 치유가 복음 전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증언합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하심과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는 통로로 작용합니다.
종결론자들과 달리, 지속론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교회를 세우고 개인의 신앙생활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현재 진행형의 은사로 받아들입니다. 치유, 방언, 예언 등의 은사는 성도들의 덕을 세우고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고 봅니다.
필자의 경험: 이론을 넘어선 실재
필자는 1987년에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서 진행한 성령수양회와 치유집회를 통해 기적 지속론이 단지 신학적 이론이 아닌 생생한 실재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치아 충전물의 기적
성령 수양회에서는 성령님께서 오늘날에도 기적을 행하신다는 전제하에 기적을 간구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의 내용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치아를 치료한 뒤 다른 인공물로 대체한 충전 물질이 금으로 변화되는 기적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두 명씩 짝을 지어서 목사님의 기도 전후에 서로의 치아 상태를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필자의 아내는 다른 사람과 짝이 되었는데, 놀랍게도 아내의 검게 변색된 치아 충전 소재가 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것은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결혼 후에 필자가 아내의 치아 상태를 보고 놀란 적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허리 통증의 치유
또 다른 경험은 필자 자신의 몸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필자는 허리 통증이 심해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여러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지만 뚜렷한 원인도 찾지 못했고, 치료 효과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편했던 자세가 기도하듯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였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치유의 밤' 모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허리 아픈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고 양 손바닥을 붙여서 앞으로 뻗게 했는데 오른쪽 손바닥이 왼손보다 한 마디 정도 짧았습니다.
그 상태에서 목사님께서 치유를 위한 선포기도를 하셨는데, 순간 척추가 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오른손이 필자도 모르게 앞으로 길어졌습니다. 그날부터 필자는 허리 통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회의와 거부의 눈빛들
필자가 이러한 간증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필자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분들일수록 더욱 그러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치아 충전 소재를 금으로 변경하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런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필자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느냐고 답했습니다. 예수님의 그 기적도 당시에는 '왜 하필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적의 형태가 아니라,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권능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기적이 종결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설명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기적은 성경 시대에 끝났다'는 신학적 전제가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일어난 기적
필자가 아는 한 부목사님은 자신이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금니 사역으로 유명한 목사님이 신학교를 방문하여 기적에 대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신학생들은 즉각적으로 강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 보시죠.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제 기도 전후에 서로의 치아를 확인해 보십시오. 성령님께서 정말 기적을 행하시는지 말입니다."
그 목사님이 기도를 한 뒤 놀랍게도 일부 신학생들의 치아 충전물이 금으로 변했습니다. 신학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더 깊은 믿음과 순종을 향하여
선교지나 국내의 치유 집회에서 여전히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기적 종결론은 이러한 실재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모든 기적적 현상이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심리적 작용, 집단 최면, 심지어 속임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적적 경험을 일괄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 4:1)고
명령합니다. 이는 영적 현상을 무조건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며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필자는 기적이 오늘날에도 계속된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의해야 할 점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기적 자체의 현상에 집중하여 계속적으로 기적 자체만 추구하는 것보다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여야 합니다. 무속신앙을 믿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곳에도 병이 낫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근본적인 목적은 기적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순종의 지경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체험신앙의 회복을 바라며
혹자는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하지 못하고 대신 성경공부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지적으로만 알고 있으며 하나님을 향한 가슴은 식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공부하지만 정작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자란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점검하기]
나의 신앙은 체험이 동반되는가? 지적인 고백만 있는가?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능력에 한계를 두지 않았는가?
기적을 경험한 뒤 나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