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7개월 차 보고

노동과 생존, 그리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by 진정성

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한다.


내가 이따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생존 신고나 다름없다.


나처럼 일머리 없고 체구 작은 여성도

근성과 진심으로 현장에서 살아남고 있음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어느덧 현장에 몸 담은 지 7개월이 지났다.

건설현장은 타 직종보다 시간의 밀도가 훨씬 높다.

하루가 길고 반복되는데, 그 안에 긴장과 변화가 많아서

하루가 며칠 같고, 일주일이 한 달 같기 때문이다.


현장은 말 그대로 즉시성과 결과의 공간이다.

오늘 서두르지 않으면 내일 일정이 밀리고,

누군가 실수하면 다 같이 피해를 입고,

컨디션이나 성격이 그대로 작업 속도에 드러난다.

결국 현장은 실력보다 인성, 말보다 태도, 꾸밈보다 진심이 통하는 곳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 같은 사람에게 유리한지도 모른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누가 버티는 사람인지

며칠이면 다 드러나니까.


하루 12시간씩(운전 왕복 포함하면 15시간) 주 5~6일 일하다 보니

운전 실력이 좀 늘었다.

일머리가 조금 생겼다.

일당이 좀 올랐다.

팀에서 내 멘탈을 케어해 주던 선배 언니가 독립했고,

새로운 후임 몇 명이 들락거렸다.

그리고 무릎 염증이, 허리 디스크가 도졌다.


현장이 한창 바쁘게 돌아갈 때

새벽에 나가고 저녁에 들어와 뻗는 생활이 반복되면

일주일에 하루 쉬는 걸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피로가 누적되고

팀장이 되기도 전에, 내 돈을 벌어보기도 전에 내 무릎 허리 손목이 다 망가질 것만 같아


현타가 온다.

왜 사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가끔은 현실이 꿈결 같고,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특히 최근 현장에선 너무 무리한 탓인지

무릎과 허리 통증이 심해 주말에 병원에 가 주사를 맞았다.

먹고살려고 일하는데 아픈 게 서러워 눈물이 났다.

그날 저녁, 내 또래 청년이 과로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무서웠다.


난 죽기 살기로 일했다.

팀장님께 인정받아 내 일당을 올리기 위해서,

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내 존재를, 쓸모를 증명하고 싶어서.


이제 그렇게 막 달려들어 일하다간

정말로 나를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서 생존 위험 신호를 보낸다고 느꼈다.


팀장님께 내 몸 상태와 그에 따른 두려움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앞으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달리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팀장님은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경청해 주셨다.

팀장님은 예전에 나처럼 일하시다가 팔목, 허리, 무릎에 수술을 받으신 전적이 있다.


운동과 일을 꼭 병행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허리, 무릎 근력 강화 운동.

알고 있고 몇 번 시도도 했지만

고단하여 꾸준히 실천하지 않았다.

이 일을 지속하려면 운동은 필수다.


그리고 일할 때 요령껏 몸을 아껴야 한다.

어느 정도 인정받고 실력이 올랐으면

열심히 적당히 일하면서 몸을 사려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앞으로도 현장은 정신없이 돌아갈 것이다.

사람 갈아 돌아가는 현장의 시스템은 내가 당장 바꿀 수 없으니까

그 안에서 생존하고 일을 지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일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팀원과의 유대도 이렇게 애틋했던 적이 없다.

몸이 힘든 만큼, 버티고 숙련되는 보람이 있는 세계다.


누군가는 몸 더 상하기 전에 당장 그만두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진심으로 죽고 싶었던 사람이다.

지금도 내 눈앞에 삶을 끝낼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미련 없이 누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삶이 고단하고 귀찮다.


그렇지만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왜 사는지 모르겠더라도

설령 이 생이 거짓이거나 꿈이라거나 게임일지라도


내일 죽더라도 오늘을 생생히 살았다면

난 후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산다. 하루하루.


여유가 없다면 오늘 할 일에 집중하고,

여유가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나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며

약간의 귀여움을 느끼면서.


한 현장이 끝나고 오랜만에 며칠 쉰다.

이삼일 은둔해서 먹고자고 하다가

드디어 힘이 좀 생겨서 산책을 나선다.


곳곳에 단풍이 들어 가을이 무르익었구나 싶다.

겉보기에 젊은 내가 긴 바지 안에 각종 보호대를 차고 걷는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사는거겠지.


다음주부터는 병원 순회를 돌아야 한다.

나에게 속으로 위로를 건넨다.

참 애쓰고 있다고, 사느라 수고가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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