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아닌 ‘나’를 선택했다.

잔고는 줄었지만, 방향은 또렷하다.

by Think Of Me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을 선택했다. 1년간 다녔던 회사를 떠났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회사였다. 정말 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업’이라는 직무를 한번 경험해 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안정적인 급여가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한 1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주 6일, 하루 10시간 근무를 했다. 체력적인 한계를 분명히 느꼈다. 나 자신의 부족함도 많이 발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안정적인 월급에 끌려 다녀야 했던 시간 자체가 힘들었다. 영업이 완전히 안 맞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월급을 위해 하루하루 수동적으로 출근하는 나 자신과 마주했다.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나의 모습을 계속 상상했다. 그 둘 사이의 괴리감이 컸다. 하루하루 내가 나로 살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루 10시간의 노동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 나에게 유일하게 의미를 주는 것은 만 1살 아들의 미소였다. 그마저도 너무 피곤한 날에는 아들의 투정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 삶은 내가 원하던 삶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번 1년의 시간을 통해 분명히 깨달았다. 조금 벌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신학을 잠정적으로 멈춘 이유도 귀촌 때문이다. 만약 “목사”가 된다면, 나의 “지방 신학대”라는 배경으로는 유학이나, 더 좋은 학벌로 학력 세탁이 필요했다. 유학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고, 설령 유학을 간다고 해도, 공부 머리가 뛰어나지 않은 내가 학위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런 나의 배경으로 자립한 교회(안정적인 급여가 가능한 교회)에서 청빙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개척을 선택하기에는 내가 가진 토대가 너무 얕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개척을 한다 해도 목회적 성공은커녕, 경제적인 생존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생존”을 고민하면서, 기독교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를 따라 사는 길이 반드시 목사여야만 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또래의 목회자의 길을 걷는 이들 대부분은 신학대학원을 장신대로 가거나, 신대원을 마친 뒤 서울의 일반대학 석사과정을 밟거나, 조금이라도 서울에 가까운 사역지를 찾으려 애썼다. 나는 그 모습이 ‘중심으로 가기 위한 노력’처럼 보였다. 그들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나의 정체성과 방향을 성찰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예수를 따르는 길을 발견했을 뿐이다.


나는 주변으로 가기로 했다. 나의 정체성의 일부인 ‘호남’이라는 자리로 말이다. 예수 또한 그런 삶을 살았다고 나는 믿는다.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는 말을 들었던 갈릴리. 그 갈릴리가 예수의 활동 본거지였다. 예수는 갈릴리라는 주변에서 당시 부정하다고 여겨지던 주변인들과 함께했다. 세리와 창기, 병자와 문둥병자, 사마리아인과 여성들. 그들과 대화했고, 함께 밥을 먹었고, 어울렸다.


예수의 공생애에서 발견되는 ‘주변성(marginality)’과 나의 ‘호남’이라는 정체성을 나란히 놓아보았다. 그러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꼭 목사여야 할까?”

물론 목사로 시골 목회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사’의 삶만이 예수를 따르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이상 ‘목사’라는 직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완전히 닫아두지도 않았다.


목수로 5년여의 시간을 보낸 것 역시 모두 “귀촌”을 위한 선택이었다. 귀촌·귀농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싶었다. 동시에 경제적 생존 역시 가능한 삶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신학대학교를 휴학했고, 사역을 내려놓은 채 곧바로 “목수”라는 길로 들어섰다. 예수가 목수였다는 속설 때문은 아니다. 현재 나의 목수의 숙련도는 팀장급만큼 능숙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디인가 싶다.

바로 직전의 1년도 마찬가지였다. 귀촌 이후를 대비해 안정적인 월급 안에서 조금이라도 가져갈 수 있는 돈을 모으기 위한 시간이었다.


누군가 보기에는 중구난방이고,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삶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시간은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오롯이 ‘나’로, 오롯이 ‘우리’로 존재하기 위한 긴 시계열의 시작이라는 것을.


오는 3월, 우리 가족은 ‘완주’라는 지역으로 이주한다. 3월 이전까지 나와 아내는 온전한 쉼을 선택했다. 몸을 쉬게 하고, 운동하며 관리하고, 마음도 쉬게 하며 책을 읽고 스스로를 다잡으려 한다.

늘 피곤한 몸으로 제대로 반응해 주지도, 충분히 놀아주지도 못했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제는 아들과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송길영 씨의 『시대예보』 시리즈는 이러한 나의 선택을 마치 응원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핵개인’으로 바로 서는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이 되었으면 한다. 내년 3월부터 긴 시간, 긴 호흡으로 우리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깊은 서사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것은 도피도 아니고, 표류도 아니다. 진정한 자립. '나'로, '우리'로 이 세상에 서기 위해 그곳에 단단히 뿌리를 내릴 것이다. 우리 삶의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는 아닐지라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더 뾰족하게, 더 단단하게 우리 삶을 단련해 나가려 한다. 이것은 귀촌을 앞둔 ‘나'와 '우리' 가족에게 건네는 일종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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