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종원 Jul 27. 2022

제주에 이별을 두고 왔습니다

거센 바람이 훨훨

제주에서의 스쿠터 여행을 생각해낸 건 재작년 즈음, 오랜 사랑에 마침표를 찍고난 직후였다. 사람들이 힘들 때 고향으로 돌아가듯, 나는 제주로 돌아갔다. 제주에서의 석 달 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간 다음으로는, 처음 방문하는 제주였다.


아프면서도 후련한 마음, 이런 마음으로는 어떤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좋을까. 무작정 사람들에 섞여 생각할 틈도 없이 여기저기 쏘다녀야 할까. 아니면 혼자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루종일 책이나 읽어볼까. 전자도 후자도, 다른 어떤 선택지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더 설명할 필요 없는 완벽한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시끌벅적 놀고 올 마음의 여유는 없지만, 너무 혼자 오래 있으면 여러 생각에 오히려 우울해질 것 같은 상태. '정말 완벽한 기분전환이 필요해',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제대로 기분전환을 해볼겸 쨍한 노란색 스쿠터를 빌렸다. 드라이브라도 주야장천하면 심심하지는 않겠지. 차와는 다르게 스쿠터를 타면 어떤 생각도 끼어들지 않을 거고, 혼자 돌아다니면 여유도 즐길 수 있고. 오랜만에 제주의 세찬 바람을 맞고, 지난 기억들을 모두 두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여름, 제주는 아주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여줬지만, 나는 그 노란색 스쿠터와 함께 끝없이 달렸다. 폭우가 내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뜨거운 햇빛에 피부가 너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어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배기음 소리가 점점 커지는 만큼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너무 열이 올라 터질 것 같은 엔진만큼 가슴이 미친 듯이 벅차올랐다. 어떠한 잡념도 끼어들 틈 없이, 제주의 바람을 만끽하고 오는 것. 지난 사랑의 어떤 추억도, 아픔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하늘 아래서 해안선을 따라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것. 그야말로 완벽한, 기분전환이었다.


그때였다. 완벽한 기분전환을 온몸으로 체감할 때. 마치 처음부터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던 것 처럼 스르르, 나는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보석이 군데군데 박혀 반짝이고 있는 바다와 해가 질 시간에 맞게 주황색으로 칠해진 하늘, 그 사이를 정갈하게 가르고 있는 수평선, 월정리였다. 그 앞에서 나는, 힘들었던 지난 시절에 대한 후련함이라 할지, 아니면 앞으로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다는 희망찬 기분이라 할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고작 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소설같은 월정리 해변을 바라보다, 해가 지기 시작해 노란색 스쿠터에 다시 올랐다. 어둑어둑해진 제주의 동쪽을 향해, 부아앙 부아앙. 


밤이 되어갈수록, 제주는 더더욱 거센 바람을 들려줬다. 그리고 훨훨. 거센 바람을 따라서 무언가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오기 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제주의 밤 속을 그렇게 끝없이 달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에 왜 드립커피를 마셔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