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것 '같은' 일
초등학교부터 방학 시즌이 다가오면 우린 늘 하던게 있었다. 동그란 24시간을 조각 케익처럼 쪼개서 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반 정도를 채워넣고, 남은 반은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는 것. 이런 방학시간표는 수험생활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때는 꽤 실용적으로 쓰였는데, 아무래도 입시라는 목표가 정해져 있으니 학원이나 과외, 인강, 예습•복습만 넣어도 시간표가 꽉꽉 차게 된다. 방학시간표는 사실상 대학생(어른)이 된 후 부터는 효력이 없어지는데, 이는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계절학기, 알바, 여행, 대외활동, 인턴, 연애, 취준, 자기계발... 매일 다른 일이 생기고, 갑작스레 잡히는 약속들 때문에 '계획'은 무의미해진다.
대학이라는 울타리까지 벗어나고 나면, 이직이나 퇴사를 하지 않는 한 한동안 인생에서 그렇게 길게 온전히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방학'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방학이 없어진 삶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 만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는 날이 앞으로는 없어진다는 뜻이다. 아직 학생이라면 방학을 앞두고 있는 7월, 당신이 대학생이라면 방학의 2주가 흘러 앞으로 두 달의 윤곽이 보인 7월, 당신은 무얼 하고 또 무얼 계획 하고 있는가.
그동안 열심히 달려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면, 온전한 휴식의 시간으로 보내도 좋다. 방전된만큼 방학을 충전의 시간으로 삼으면 되니까. 또, 꼭 배워보고 싶은 취미가 있었다면 그 한 가지에만 푹 빠지는 시간으로 채워도 좋다. 꼭 무언가를 이뤄내라는 뜻은 아니다. 내 24시간을 내 의지대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그냥 그렇게 흘러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햇빛과 습기가 온 몸을 땀으로 적시는 계절,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이 실감나면, 꼭 이 맘때즘 방학을 계획하던 내가 떠오른다. 방학에 뭔가를 배우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마음에 토익학원을 끊고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여러 책을 사놓고 쌓아두기만 했던 날들도 떠오른다. 난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일'들로 방학을 채웠었다. 돌이켜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고, 살아가는데 자산이 된 방학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채운 시간들. 테니스에 빠지고, 해외여행을 갔던 시간들은 물론, 영어점수가 절실해져 다시 토익으로 불태웠던 방학들까지.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아닌, 내가 진짜 원했던 일로 채웠던 방학들은 항상 알찼고, 기억에 남았다.
살면서 몇 번 안되는 방학,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그냥 하고 싶은 일 하자. 본인이 위기를 느끼면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은 알아서 '하고 싶은 일'이 될 거니까, 괜한 불안감에 방학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름의 녹음이 가시기 전에 얼른 각자의 고민을 마쳐 누리고 싶던 방학을 시작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