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번이라도 파랑새를쫓아 본적이 있었을까?
"검사 결과를 보면... 중증의 우울증이세요.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였다. 단순한 스트레스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일을 할 때 글자 한 자를 못 써 내려가는 순간들이 빈번해지고, 회사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다가 타지 않고 다시 흡연장소로 돌아가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다.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내가 병에 걸린 것이었다니. 그것도 아주 중증의...
"특히 자살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심리상태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에요."
누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는 줄 알았다. 사법연수원 때 동기들과 대화할 때도 장난식으로 웃으면서 다들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며 낄낄대던 모습들이 생각났다. 그러한 대화가 사실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상담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죽음을 그렇게 가볍게, 일상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약물치료를 하고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하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의 웃음은 환자를 안정시키기 위한 도구였지만, 나는 그 미소에 화답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각종 의존증이란 의존증은 죄다 달고 있는 내가 약물을 버티고 조절할 수 있을까?' 약물 때문에 죽었던 내 우상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인화되었다. 리버 피닉스, 지미 헨드릭스, 필립 시모어 호프먼... 마약과 정신과 치료약물은 물론 엄연히 다르지만, 인위적인 화학성분으로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변화시킨다는 측면에서는 그 둘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니... 내 흔들리는 눈동자와 초조함을 읽은 의사 선생님은 잠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긴 후, 다시 나를 바라보며 검사를 이어 나갔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아버지는 내가 4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이별을 했던 탓에 아버지와의 추억은 당연히 기억나는 게 없었고, 아버지의 얼굴은 제사 때마다 올려지는 영정사진만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두 형제를 키워내느라 하루하루가 고단했고 바빴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머니에게 묻는 건 힘든 세상살이를 버텨내 가고 있는 그녀에게 몹쓸 짓이라고 생각해서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아버지의 형제들과 사촌들에게서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 고생하시니까 엇나가지 말고 항상 잘해드려야 한다"라는 말과 덧붙여서. 다행히 두 형제 모두 큰 사고 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편입될 수 있었고, 동생은 출가해서 이쁜 조카들을 키우며 잘 살고 있다.
"공황장애의 초기 증상도 보이고, 강박 지수가 너무 높아요. 특히 자살에 대한 생각은 큰 문제인데...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시작되었나요?"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는 상담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비록 나를 진단하는 의사이지만, 어쨌든 그녀와 나는 만난 지 이제 겨우 10분이 갓 넘었을 뿐이다. 처음 나를 대하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되었나에 대한 가장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이해가 쉬운 답변은 '이별'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처음 만난 그날은 결혼을 생각하며 3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와 이별한 지 약 4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 친구와의 이별에 대하여 말하자, 의사 선생님은 답을 쉽게 찾았다는 표정으로 상담을 이어나갔다.
"이별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상담 전문가인 그녀 앞에서도 어떻게 하면 그 이별을 아름답게 포장할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수 겹의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 가면들을 완전히 해체시킨 적은 없었다. 죽기 전에 신 앞에서 고해성사를 할 때에도 그 가면은 쉬이 벗겨지지 않으리라. 그녀에게 설명한 이별의 원인은 이렇다. 올해 초에 대형 로펌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회사 생활 적응이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감에 그녀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그래서 참다못한 그녀는 저에게 이별을 고했노라고.
판결문에서 많이 보이는 표현으로 '일견.... 인 것처럼 보이나... 더 나아가 이유 없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별에 대한 내 설명은 일견 이별의 원인으로 타당해 보이나,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사실 이별할 이유가 없었다. 이별의 심연 속에 묻혀 있는 나의 고통의 씨앗은 발견하기 어려운 원피스와 같은 존재지만, 사실 발견하고 보면 매우 벗기기 쉬운 땅콩 같은 모습이다. 나는 30대 중반이 되던 지금 이 시점까지 사회적 시선과 나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연기를 해 오고 있었고, 남들이 보기에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항상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여자 친구가 나와 미래를 설계하고 싶었던 원인 중에는 이런 자신감 있는 나의 미래와 비전도 큰 조각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이 와 버렸고, 나는 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뉘앙스는, 여자 친구가 이해한 바는 아래와 같았으리라.
"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어. 이때까지의 내 인생은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나는 실패한 인생 같고, 다시 인생을 되돌리고 싶은데, 진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더 심각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도 할 용기가 나지 않아."
나를 감싸고 있는 거짓된 포장지를 완벽하게 풀지 않았기 때문에, 첫 번째 정신과 상담은 결국 수박 겉핥기로 끝나게 되었다. 상담을 마무리하고, 약물치료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다시 방문을 드리기로 하였다. 카드로 진료비를 결제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커다란 달을 보았다. 중증 우울증 선고를 받고 나온 30대 중반의 어정쩡한 변호사를 유일하게 위로하는 것은 달 뿐이었다. 멍하니 담배를 피우며 달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살도 치사율의 통계에 들어간다면, 중증 우울증은 치사율이 가장 높은 질병군 중에 하나다. 약물치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고, 스트레스의 원인도 제거하지 못한다면, 나는 높은 확률로 1년을 채 못살지 않을까?... 그렇다면 죽음 앞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무슨 소용일까? 죽기 전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해 보자."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 작은 일의 첫 시작이 내 글을 써 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