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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Sep 11. 2021

한국 나이 체계와 계급 문화에 반항하며

형이면 다야?

 나이가 계급과도 비슷한 우리나라의 문화에 나는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 나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만 나이를 사용하면 좋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어김없이 호칭 문제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럼 어제는 형이었다가 오늘은 동갑이야?? 이상하잖아'라는 식이다.

 호칭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지만, 그럼 뭐라고 부를 거냐고 많이들 묻는다. '~~ 님'이 제일 무난하고, 친해지면 서로 합의하에 '~~ 씨', '~~ 야'로 부르면 깔끔하지 않나? '~~ 님'은 너무 이상하단다.

 난 좋은데... 구체적으로 어디가 이상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님'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이상한가 보다.




 이런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난 형과 동생 사이의 암묵적인 예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을 부수는 말을 하는 것을, 듣는 것도 참 좋아한다.


 호텔 하우스맨으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객실에 들어가는 물품을 관리하고 손님의 요청이 있을 때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주거나 호텔 전 직원들의 유니폼과 객실 침구류를 세탁 보내는 일이 주 업무였다.

 손님의 요청은 주로 무전을 통해 전달이 되었다.


 같이 알바를 하는 3살 많은 형이 한 명 있었다.

 총 6명 정도에 그 형을 제외하고, 20대 초반 어린 동생을 제외하면 다 같은 또래였다. 그 형은 과묵했고, 옷을 입어도 그 위로 탄탄한 몸이 느껴질 정도의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과묵한 성격과 외모가 더해져서인지, 바쁘지 않아 인력이 남을 땐 자연스럽게 동생들이 주로 업무를 처리했고,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똑같이 일하러 왔는데 나이 많다고 형님 대접이라니.

 다른 또래 친구들은 그와 둘이 남아 일하면 불편하다는 얘기를 흘려서, 주로 내가 그와 같은 시간대로 업무시간이 편성되었다. (아르바이트생들끼리 자체적으로 업무시간표를 짜는 시스템이었다.)


 다행히 그는 형이라는 이유로 편의를 봐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고(고마워했지만 나서서 일을 하진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일하며 많이 친해지게 되었고 내 마음도 활짝 열렸다. 친하면 친할수록 생각을 많이 드러내는 편인 나는, 그에게 친구처럼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지냈다.

 위에서 언급한 암묵적인 예절은 개나 주는 말도 많이 했고, 그런 말들을 할 때마다 약간의 쾌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와 함께 한가하게 둘만 있을 때, 무전으로 손님방에 물품을 갖다 주라는 업무가 무전으로 전달되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옆에 같이 앉아 있던 그를 쳐다보며

 "뭐하세요? 못 들으셨어요? 안 가세요?"

 라고 정색하며 말하면, 어이없어하는 웃음을 짓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막말(?)을 정말 자주 했다.


 호텔에는 간식으로 구비된 컵라면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그가 자기는 컵라면을 먹을 거라고 했다. 컵라면은 못 참지.

 "저도 먹을래요. 저는 짜장라면으로 물은 딱 선만큼만 넣고 수프는 2/3만 넣어서 4분 뒤에 불러주세요~ 비벼주기까지 하면 참 고마울 것 같아요~"

 하면 어김없이 어이없어하는 웃음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뒤질래?'라는 말도 함께.


 장난치는 만큼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장난으로. 물론 아프긴 아팠다. 힘이 정말 셌다...), 그가 날 때리면 그건 그것대로 때리게 만들었다는 쾌감이 있었다.


 '난 형님이고 넌 동생이야!' 같은 느낌이 들어있는 말을 그가 내뱉을 때마다

 '형이면 다예요? 그저 유교사상에 세뇌당해서는... 쯧...'(농담으로 하는 소리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하며 나도 그를 때.

 그럴 때면 남자의 본능으로는 이길 수 없는, 나보다 강한 상대를 때렸다는 다른 쾌감이 있었다. 너무 변태 같나...?



 

취미생활을 통해 만나 친한 동생 D가 있다.

 D는 전형적인 형님 대접과 동생 대접을 구분 짓는 사람이었다.

 또 다른 동생인 S는 D보다 더 어렸다.

 S와 나는 서로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놀다가(남자들은 대부분 그러고 놀 걸요...? 아마도...) S는 귓속말로

 '형, 나대지 마세요.'

 로 받아쳤고, 우린 배꼽이 빠지게 웃어제꼈다.

  '제가 이런 말 했다고 D한테 얘기하시면 안 돼요. 저 혼나요.'

 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D는 우리가 웃는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나 보다. S가 뭐라고 했는지 집요하게 물어왔다.

 결국 D에게 S가 한 말을 실토하며 난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았으며 너도 나한테 그런 말을 자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S도 거들었다.

 D는 형한테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선은 지켜야 된다며 S를 나무랐다. 아니... 내가 괜찮다는데 왜 그래......





 요즘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이나 직급으로 나누어진 계급 사회를 보게 된다.


 탕비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하는 잡일을 할 때, 굳이 사원급 어린 친구를 불러 시킨다. 당연히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라는 듯한 말을 덧붙이는 건 덤이다. 그까짓 쓰레기통 아무나 비우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회사 업무를 제외한 그 어떤 일도 아래 직급의 사람에게 시킨 적이 없다. (혼자 하기 힘들어 도와달라고 한 적은 있다.)

 재활용 쓰레기통이 꽉 차면 담배 피우러 나가는 길에 들고 가서 한 번 비워주면 된다. 그거 하나 비운다고 업무가 밀려 퇴근을 못 할 정도로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회사에선 계급 질서에 반항하기가 힘들다. 내가 나이를 먹어 변해서 그런 건지 직장과 아르바이트의 차이인지는 몰라도, 회사 사람들과는 친한 친구같이 지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차장님, 쓰레기통 꽉 찼는데요? 제때제때 안 비우실 거예요?'라고 익살스럽게 얘기할 만큼 친밀감이 있지 않다. 유머로 받아줄 것 같지가 않다.


 물론 나도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내 안에도 뿌리 깊은 유교 보이(boy)가 잠들어있긴 하다. 하지만 이 유교 보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영원히 잠재우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그깟 쓰레기통 누가 비우면 어때'하며 쓰레기통을 내가 미리 비우는 것으로 소심하게 반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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