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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Sep 17. 2021

양산을 씁시다. 눈치 보지 말고.

나만 쓰기 아까워

 난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열이 많았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청소년기에는, 버스 안이 덥다는 이유로 한겨울에도 패딩 입어본 적이 없다. 난방이 되어 있는 교실은 더워서 반팔 티셔츠만 입고 있었고, 데워진 몸이 쉬이 식지 않아 쉬는 시간 매점에 갈 때도 반팔 티만 입고 돌아다녔다.


 여름이 되면,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이 유난히 싫었다. 최대한 그늘로만 다녔고, 햇빛을 피할 수 없는 곳은 잠깐 뛰어서 얼른 그늘로 들어갔다. 햇빛을 받아 등과 머리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뱀파이어냐고 했다.


 8년 전 여름, 부산에서 대중교통과 도보로 출퇴근을 했다. 부산의 여름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더웠다. 그래서 양산을 쓰기 시작했다. 양산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시켜 주었다. 내가 어떤 곳을 가도 그곳은 그늘이 되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 머리와 등을 데우지 않았고, 햇빛을 피할 수 없는 구간에서 뛰어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봤다.

 '지드래곤이 양산 한 번 써주면 좋겠다. 그러면 양산도 유행이 될 거고, 남자가 양산을 써도 아무렇지 않게 될 것이다'

 댓글을 달았다.

 '그냥 쓰고 다니세요. 저는 쓰고 다니는데 아무도 신경 안 써요. 백화점 양산 코너 같은 곳에서 남자가 쓸만한 거 골라 달라고 하면 무난한 걸로 잘 골라 주시더라고요.'


 실제로 8년 동안 늦봄, 여름, 초가을에 양산을 쓰고 다니는 동안 나를 향한 수군거림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신경이 무뎌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듣지 못했다. 수군거리면 또 어떤가? 그냥 지나쳐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모르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오지랖 때문에 자신의 생활 편의를 포기하기는 아깝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날, 친구를 만나 잠깐 걸어서 이동할 때 양산을 펼친다. 그리고는 친구에게도 그늘을 만들어준다. 다들 안 뜨겁다고 좋아하더라. 피부가 타는 걸 싫어하는 남자도, 자외선이 유발하는 피부 노화가 걱정되는 남자도 양산을 쓰고 다니면 좋겠다. 이 좋은 걸 나만 쓰고 다니자니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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