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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Oct 08. 2021

누가 우리 준호를 때렸어!!

아니 선생님, 그게 아니라...

(고등학생의 대화를 재현하는 부분이 있어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친근한 욕설들이 많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P와 M을 교무실 한 쪽에 앉혀놓고 물었다.

 "준호 누구랑 싸웠어."

 "아니요, 싸운 게 아니구요. 자기 혼자 벽에 박았어요."

 "뭐하다가 벽에 박아, 그게 말이 되니? 솔직히 말해 봐. 준호 누가 때렸어."




 "야 이거 봐. 물 조절 보이냐? 황금비율. 황금비율."

 M이 또 내 얼굴에 짜장컵라면을 들이밀며 황금비율 타령을 시작한다.

 "아 알았으니까 제발 좀 치우고 처먹기나 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는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M에게 비꼬기 공격을 한다.

 "미친놈, 또 시작이네. 횅귬비율~~~에베베베"


 0교시와 1교시 사이에 있는 15분의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는 매점으로 달려가 컵라면을 하나 해치운다. 사실 나와 P는 그 15분이라도 자고 싶은데, M은 항상 둘 중 한 명 이상은 끌고 간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두 번의 수업을 거쳐 2시 53분이 지나가고 있을 때쯤,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야. 야.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게. 옛날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했대. 토끼는 빠르고 거북이는 느리잖아. 그래서 토끼가 방심을 하고 중간에 잠을 잔 거야. 잠에서 깨서 다시 달렸고, 토끼가 이겼대."

 "??? 븅신."

 M은 나의 회심의 개그에 웃어주지 않았다.


 다음 쉬는 시간, M이 갑자기 나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옛날옛날에 햇님과 달님이 살고 있었어. 걔네 엄마는 산고개를 넘어 마을에 떡을 팔러 나갔어. 날이 어두워지고 다시 산고개를 넘어 집으로 가던 도중 호랑이를 만났어.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했고, 엄마는 호랑이에게 떡 하나를 줬어. 그래서 집에 잘 도착했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다음 쉬는 시간.

 "이번엔 내 차례야. 옛날옛날에 바닷 속에 용왕님이 살고 있었는데, 큰 병에 걸린 거야. 육지에 있는 토끼의 간을 먹어야 나을 수 있는 병이었대. 그래서 자라가 육지로 올라가 토끼를 거짓말로 꾀어내 토끼와 함께 바다로 들어갔어. 그래서 토끼는 익사했대."

 "ㅋㅋㅋㅋ지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몇 번 주고받다보니 소재가 고갈되었다. 새로운 놀이는 하루를 채 가지 못하고 끝이 났다. 나는 너무 심심했다. '이번엔 뭘 하고 놀지? M 놀리고 도망가기를 해볼까?'


 M과 P와 나는 석식을 먹고 교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M을 놀리고 도망가는 놀이를 혼자 하기 시작했다. M은 P와 이야기를 하며 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고,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M을 놀릴만한 말들을 생각해내고, 그 말들을 M에게 외치며 혼자 도망갔다. M과 P는 '쟤 왜 저래?'하며 신경도 쓰지 않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우리가 지나가던 길은 본관과 신관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이었는데, 그곳엔 건물 기둥이 3m정도의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난 기둥 뒤에 숨어 M을 한 번 놀리고 뒤돌아 다음 기둥으로 뛰어갔다. P와 M이 조금 가까워지면, 다시 뒤돌아 다음 기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또 다음 기둥으로 뒤돌아 뛰어가려고 하는 순간.


 '뻒!!!!!!!!!!!!!!!!!!!!'

 얼굴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따갑기도 했다. 정신을 부여잡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니, 하필 그곳만 두 기둥 사이가 1m도 되지 않았다. 난 뒤돌아 뛰어가려는 그 힘으로 얼굴부터 기둥에 박았다. 얼굴이 너무 아팠다.


 M과 P가 뛰어왔다.

 "뭐야 괜찮아????"

 "박는 소리 존나 크게 났어ㅋㅋㅋㅋㅋㅋ"

 "나 아무 짓도 안 했어ㅋㅋㅋㅋㅋㅋ이 새끼가 지 혼자 놀리고 지 혼자 도망가다가 그런 거야"

 "알아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지랄하더니 이게 뭐하는 거야ㅋㅋㅋㅋㅋ"

 "야 얼굴 들어봐ㅋㅋㅋㅋㅋㅋ괜찮아??"


 나는 얼굴을 들었다. 안경은 박살이 났고, 하필 또 기둥 표면이 상식 이상으로 까칠까칠해서, 상처도 많이 났다.


 "아니ㅋㅋㅋㅋ미친놈이 혼자 뭐하는 거야ㅋㅋㅋㅋㅋㅋㅋ괜찮아??ㅋㅋㅋㅋㅋㅋㅋ"

 "아 개아파 진심...내 안경......."


 그렇게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채로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었고, 요의를 느낀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계단을 올라오는 국사선생님을 발견했다. 내 얼굴 보면 싸웠다고 오해하실 텐데. 나는 최대한 얼굴을 가리며 지나치려 했다.

 "야 너 얼굴이 왜 그러냐??"

 망했다.

 "놀다가 벽에 박아가지구요..."

 "뭐? 벽에 박아?"

 "네......"

 "알았어"

 납득하신건가?


 그렇게 화장실을 들러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P와 M이 보이지 않았다. 국사선생님이 우리 담임선생님에게 준호 어디서 얻어맞은 것 같다고 전하셨단다. 아닌데. 혼자 벽에 박은 건데. 납득하실 리가 없지. 아 쪽팔려.


 약 10분 후 P와 M이 돌아왔다.

 "야 미친놈아, 담임이 자꾸 너 누구한테 맞았냐고 무섭게 우리한테 화내잖아"

 "아니...ㅋㅋㅋㅋ그래서 혼자 벽에 박은 거라고 했어?"

 "어. 근데 안 믿잖아. 자꾸 누가 때렸냐고 솔직히 말하래ㅋㅋㅋ그리고 너 교무실로 오래"

 "후..."


 3학년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 저 부르셨어요?"

 "어, 그래, 준호야, 여기 앉아 봐"

 "넵"

 "너 얼굴 왜 그래"

 "그...... 벽에 박았어요."

 "벽에 박아서 얼굴이 그렇게 되는 사람이 어딨어. 솔직히 말해 봐. 누구랑 싸웠어."

 "믿기 힘드시겠지만 진짜로 벽에 박은 거예요..."

 "준호야. 괜찮아. 선생님한텐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

 "아니, 믿어주세요...진짜 벽에 박았어요. 저기 화장실 밑에 보면 기둥들이 있는데 기둥 간격이 일정하다가 한 군데만 좁거든요. 그래서 기둥 뒤에 숨어서 뒤돌아 달려가다가 그 기둥에 박은 거에요. 근데 그 기둥 표면이 엄청 까칠까칠해서 얼굴이 이렇게 됐어요. 제가 가서 그 기둥 표면 만져보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그래. 알았다. 진짜 맞은 거 아니지?"

 "네 진짜예요."


 그렇게 결국 오해(?)를 풀었다. 푼 건가? 풀린 거 맞겠지?


 "오~ 벽이랑 싸운 준호 왔어? 담임이 뭐래?"

 "계속 누가 때렸냐고 그래서, 계속 벽에 박은 거라고 믿어달라고 했지"

 "벽이랑 싸워서 완패했나보네. 얼굴 꼴을 보니"

 "아 몰라. 못 이겨."

 사실 벽에 아니라 기둥이었지만, 그 때는 그냥 벽이라고 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동안 코를 풀 때마다 피가 섞여 나왔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홍보 동영상 같은 게 있어서, 그 기둥을 찾아봤다. 지금은 표면이 아주 매끈매끈하게 바뀌어 있다.

 그 때도 그랬다면, 어디 가서 일방적으로 얻어 맞았다는 자존심 상하는 오해(?)는 받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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