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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Jan 25. 2022

치아교정이 하고 싶어요 (1)

 최근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브런치에 접속을 하지 않았다. 뭐라도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서랍에 저장해놓은 글을 열어 보지만, 초등학생 일기만도 못 한 것 같은 글들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기라도 써 본다.



 재작년 11월,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9월부터 월급이 밀리고, 한두 명씩 잘려나가더니 결국 모든 직원이 나가게 되었다. 실업급여를 한 달 반 정도 받다가 지금 다니는 회사로 취업을 했다.


 고용보험 제도 중 빠른 취업을 장려하기 위한 '조기재취업수당'이라는 제도가 있다. 당시 실업급여는 최대 6개월까지 받을 수 있었는데, 실업급여를 받는 중 취업을 하고 같은 회사에 1년 이상 재직하면, 최대 6개월치의 실업급여를 합친 것 중 내가 수령한 액수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의 50%를 지급하는 제도다.

 1월 18일이 재직 1년이 되는 날이었고, 이 날이 되기 몇 주 전부터 '조기재취업수당'을 받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목돈이 생길 텐데 이 돈으로 뭘 할까. 꿈에 그리던(?) 치아교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건강검진에서 교정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90년대 후반이었던 그 당시에도 치아교정은 1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고가의 치료였다. 우리 집은 그 정도 목돈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IMF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방치하고 살았다.

 비염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항상 입으로 숨을 쉬는 습관이 있어서, 내 치열 상태는 나도 모르는 사이 더 나빠져 있었다.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 닿지 않아 항상 혀를 이용해 음식을 잘라먹었는데, 윗니와 아랫니 사이의 간격이 전보다 더 벌어져 있었다.

(이를 꽉 물어도 윗니와 아랫니가 닿지 않는 부정교합을 개방교합이라고 한다.)




 치아교정전문의과 구강악안면전문의가 협진을 하는 치과에 방문했다.

 개방교합이 있어요... 교정하고 싶어요... 문진표를 작성하고, 말로만 듣던 파노라마 엑스레이를 찍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드디어 교정을 시작할 생각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나도 수년 뒤에 단무지나 깍두기를 이로 잘라먹을 수 있게 되는 걸까?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먹어도 양상추가 통째로 빠져나오지 않게 되는 걸까?


 내 진료 차례가 왔고, 의사 선생님은 같이 사진을 보면서 얘기를 좀 나눠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성인의 어금니는 보통 위 8개, 아래 8개, 도합 16개의 어금니가 서로 맞닿아 저작 기능 (=씹는 기능)을 하는 게 정상이지만, 내 치아는 앞니뿐만 아니라 어금니조차 제대로 맞닿지 않아 저작 기능이 굉장히 떨어진다고 했다.

 열여섯 개의 어금니 중 대여섯 개만 맞닿는다고 했다. 앞니까지 포함하면 70~80%의 치아가 저작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정을 통해서 치아는 어느 정도 가지런해질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인 저작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남들보다 식사속도가 느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씹지를 못하니 먹는 게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다들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넘기는 것 같더라니. 제대로 씹지 않는(못하는) 건 바로 나였다.


 의사 선생님은 일단 '선수술 후교정'을 권유하며, 양악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본인 치과는 전신마취전문의가 없어, 나에게 수술 의지가 있다면 수술이 가능한 병원에 방문해서 하라는 말도 했다. 양악 수술도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범위가 있으니, 그것도 같이 알아보라는 말과 함께.



 양악 수술? 엄청 위험한 대수술 아닌가? 교정으로 못 고친다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양악수술 비용은 얼마지. 어머나, 이런 큰돈은 없는데. 수술하면 입원해야 하지 않나.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얼마나 걸리지? 이렇게 오래 쉴 수는 없는데.

 치아교정을 했던 친구 한 명은, 치과 가서 교정하고 싶다고 하면 원래 다 수술하라고 하니 다른 병원도 가 보라고 했다.

 본인 치과에서 내가 교정치료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수술하라고 다른 병원에 가라고 의사가 얘기하는 걸 보면 굉장히 신뢰가 가지만, 그래도 뭐, 혹시 모르니 다른 곳도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병원 치과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약을 했고, 곧 진료일이 다가온다.

 여기서도 교정으로는 치료가 어렵고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 어떡하지? 의료보험이 안 된다고 하면 돈이 없어서 못하는 거고, 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수술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쉬어야 할 텐데. 비염 환자는 코로 숨을 못 쉬니 수술 후 굉장히 힘들다던데. 수술을 안 하면? 이렇게 평생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살아야 할 텐데.

 그저 교정이 하고 싶었을 뿐인데. 하루하루 걱정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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