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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Jul 15. 2022

연봉 통보를 당했다

협상이 아닌 통보

 사장님이 갑자기 설계팀 송대리와 나(대리, 제어팀)를 같이 사장실로 들어오라고 부르셨다. 송대리와는 업무 상 같이 불려 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의아했다.


 "둘 다 대리라서 불렀어, 허허"

 이게 무슨...?


 철저한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있는 난 우리 회사 사장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통장에 예기치 못한 돈이 꽂힐 때마다 사랑에 빠져버린다. 두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고, 전 회사는 흔히 말하는 '좆소'였기 때문에 명절 상여금이나 특별 보너스 같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소소한 돈들이 입금될 때마다 사장님에게 너무 감사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친구 김대리와 나는 같은 희망연봉을 적고 지금 회사에 같이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 첫날 사장님은 나만 따로 불러 얘기하셨다. 김대리는 4년제 대졸이고 난 고졸이라서 회사 내규 상 동일한 연봉을 적용할 수는 없으니 내 연봉을 깎겠다고 하셨다. 뭐 별 수 있나, 그렇다는데. 알겠다고 했다.(사장님 미워ㅜㅜ) 어차피 주어진 일만 잘 해내면 되는 직종이라 나중에 능력으로 보여주고 인상을 요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입사해서 올해 초 첫 연봉협상을 할 거라 생각했던 난 '우리 회사는 연봉협상이 아니고 그냥 통보야. 연봉 통보.'라는 말을 들었다. 협상에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자신 없다) 그래도 일방적인 통보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보통 3~5% 인상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올해 연봉은 이 정도겠거니, 하고 혼자 계산을 했다.

 계약서에 사인도 하기 전에 인상 연봉이 적용된 월급이 입금됐다. 생각보다 더 큰 금액이었다. 이게 맞나 싶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니지, 계산기를 클릭했다. 대략 10~11% 정도 오른 것 같았다. 연봉 협상을 하게 된다면 내가 요구하려고 했던 금액보다 조금 더 많았다.


 그리고 두 달 뒤, 나는 또 사장실로 불려 들어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장님이 부른다고 할 때마다 뭔가 죄지은 기분이 든다. 교무실로 끌려 들어가는 학생 기분이랄까)

 사장님은 과거에 학력으로 연봉에 차별을 둔 것이 부끄럽고,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을 반성하고 있다며 친구 김대리와 동일하게 연봉을 인상해준다고 하셨다. 아직 딱히 뭘 보여드린 것도 없는데. 반성까지 하실 만큼 내 능력이 뛰어났나^^? 하하핫.




 또 두 달 뒤.


 "둘 다 대리라서 불렀어, 허허"

 요즘 날도 더운데 고생이 많다, 대리와 과장이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직급이다로 시작한 얘기는 연봉 인상 통보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퍼주다가 연말에 회사 망할 수도 있다는 농담과 함께. '예'와 '알겠습니다'만 반복하다가 연봉 통보(인상)를 당해버렸다. 출장을 나가 자리에 없는(외근과 출장이 잦은 직종이다) 내 친구 김대리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바로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기쁨을 나누기 위해 브런치에 글도 쓴다.


 대부분 우울하고 다운되어 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오랜만에 기분이 좋다. 이 기분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한다.


 사장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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