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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Nov 25. 2021

혼밥을 못 해서 사회생활이 힘들다

혼자서는 밥을 못 먹는다는 게 아닙니다

 혼밥이 너무 익숙해졌다.

 아니지. 이 표현은 아니다. 혼밥이라는 말이 없을 시절에도 혼자 잘 사 먹고 다녔다. 국밥집, 분식집부터 고깃집,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 못 먹는다는 건 내 사전엔 없었다.


 아는 사람들(친하지 않은)과 같이 밥 먹는 게 싫어졌다.

 그래. 이거다. 정확히는 남들과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게 싫어졌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몇 주 동안 용인 기흥에 있는 삼*전자로 외근을 나갔다. 산 위에 공장을 지어놓아서 차를 타고 나가야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다. 차 한 대로 이동하는 게 편하니 자연스럽게 같이 일하는 상위 업체 사람들과 점심을 먹게 된다.

 더 최근에는 며칠 동안 화성시에 있는 삼*전자로 외근을 나갔다. 여긴 걸어가서 점심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우리회사 다른 팀 직원들도 같이 와서, 점심을 같이 먹는다.


 남들과 밥을 먹으면 신경 써야 할 게, 신경 쓰이는 점들이 너무 많다.


 인원수에서 하나 뺀 만큼 물을 따르며 난 밥 먹을 때 물을 잘 안 마신다고 설명해 주거나, 마시지도 않을 물을 그냥 따르거나, 물을 안 마시니 내 건 따르지 말라고 말하거나, 마시지 않을 물을 건네받아야 한다.

그냥 신경 안 쓰면 되지 않나 싶은데 안 마실 물이 컵에 따라져 있는 걸 보면 너무 신경이 쓰인다.


 메뉴를 정할 때도 얼른 대충 아무거나 골라야 한다. 나는 메뉴 오래 고르는 편이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데 이건 얼마고 저건 얼마고 다 따지면서 고르는 스타일이다. 보통 이렇게 고르고 있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몇 분 동안 앉아서 메뉴판만 보는 사람은 나 말곤 없나 보다.


 반찬이 나오면 안 먹는 반찬 애초에 반납하고 싶은데, 단체 식사에선 일일이 다 물어보고 반납하기가 힘들다. (특히 고깃집 같은 경우는 상이 좁아서 더더욱 반납이 절실하다)

이 역시 그냥 신경 안 쓰면 되지 않나 싶은데, 안 먹을 반찬이 상에 올라와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또 너무 신경이 쓰인다.


 반찬이 셀프인 곳에서는 내손으로 가져온 반찬을 남기는 걸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정말 딱 먹을 만큼만 가져오고 싶다. 하지만 남들이 얼마나 먹을지 내가 알 게 뭔가. 내가 첫 반찬을 퍼오면 다른 사람이 한 번 더 퍼오고 반찬이 남는다. 셀프로 가져온 반찬이 남는 걸 보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안 남기려고 억지로 더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를 들면, 친한 친구와 깍두기가 셀프인 식당에 가면 처음은 적당히 소량으로 퍼오고, 그 후에 퍼올 땐 내가 깍두기 몇 개 먹을 거냐고 개수를 물어본다. 친구가 퍼온다면 난 네 개 먹을 거라고 개수를 얘기해 준다)


 메뉴가 나오면 밥을 빨리 먹느라 신경 써야 한다. 먹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다들 식사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먼저 일어나라고 해도 안 간다. 천천히 먹으라고 한다. 그게 되나? 다들 기다리고 있으면 천천히 먹을 수가 없던데. '내 속도로 먹기'와 '배부르게 먹기'를 다 하면 최소 10분은 기다리게 해야 한다. 그렇게 '급하게 먹기'와 '배부르게 못 먹기'를 하루하루 번갈아가면서 하다 보면, 내가 맨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피곤해진다. 힘들다, 에너지가 고갈된다. 1분이라도 빨리 혼자가 되어 충전을 시켜줘야 내일의 사회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가 생긴다. 나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주변 상황이 내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혼자 먹겠다고 얘기하고 왜냐는 반문에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그냥 혼자 먹는 게 편해요. 남들하고 밥 같이 먹으면 스트레스받아요.' 하고 혼자 가버리는 것도 신경 쓰인다.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 게 많은 걸까?

 나 같은 사람을 예민하다고 하는 건가?

 내가 바로 눈치 없는 주제에 예민한 사람??

 사회성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사회생활에 쓸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이 부족하니까.




 혼자 밥을 먹는 것엔 장점이 많다,

 말 거는 사람도 없고, 먹는 데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식사속도를 일부러 조절할 필요도 없다.

 안 먹는 반찬은 미리 반납해 음식물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물을 잘 마시지 않아 (내가 하는 건 아니지만) 설거지도 줄어든다. 뭘 먹을지 정하는 데에도, 고르는 시간에도 제약이 없다.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고,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에너지도 채워진다. 자꾸 혼자가 익숙해지는 것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뭐, 최대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로 했으니까. 책임도 내가 혼자 지면 되겠지.


 혼밥을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직장동료나 상위 업체 직원들과 밥을 먹는 것도 사회생활의 일부인데, 그게 그렇게 에너지 많이 소모시킨다. 금요일이 가까워지면 영혼 없는 사람처럼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업무 관련 얘기도 급하지 않은 사항은 다음 주로 미뤄버린다. 미안합니다.) 말을 하는 데도 에너지가 소모되니까. 그 에너지는 밥 먹을 때 다 써버렸다.


 겨우 남들이랑 밥 같이 먹는 것이 이렇게 많은 체력을 소진시킨다니.

 힘들다. 어렵다. 사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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