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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Sep 11. 2021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렇죠?(1)

나는 형의 노예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맞벌이를 나가시고, 집에는 4살 터울의 형과 나만 남아 있었다. 보통의 형제가 다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형은 나에게 항상 일거수일투족 심부름을 시켰고 그 심부름을 실행하지 않으면 구타로 이어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형이 이해되지 않았다.

"형은 왜 맨날 나한테 다 시켜?"

"내가 하기 귀찮으니까."

"형이 귀찮은 것처럼 나도 귀찮아.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시켜."

"알았어."

 이런 대화를 열 번은 한 것 같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형은 거짓말쟁이라는 생각을 했다.



 형이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빈도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형과 단둘이 있으면 난 형의 손과 발이 되었다. 잠시라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를 않았다. 부모님에게 일러바쳐도 그냥 '동생 괴롭히지 말고, 형 말 잘 들어라' 이 한 마디로 끝났다. 형이 너무 싫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의 일이다. 이모(엄마의 언니)의 생신을 맞아 외가 쪽 친척들과 모여 서울에 있는 어떤 고깃집에서 외식을 하는 날이었다. 어른들은 식사를 마치고 술을 마시며 대화를 했고,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숨바꼭질을 했다.

 법이 개정되어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모든 가게 앞에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가게 현관 앞 두 칸짜리 계단 위에 있는 입간판 뒤에 숨었고, 그곳에서 나오는 과정에서 입간판을 밀어 입간판이 두 계단 밑으로 떨어지며 넘어졌다.

 형은 애들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나를 다그쳤고, 이 별 것 아닌 일로 쌓여있던 나의 감정은 폭발했다.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왜 맨날 나만 다 잘못한 거고 나만 싫어하고. 난 길거리에 드러누워 서럽게 울었다.

 동네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형이 날 너무 괴롭혀서 나 너무 힘들어요. 나 좀 봐주세요.

 친척동생들이 울지 말라며 나를 위로해 줬지만, 난 형과 나의 관계를 해결해 줄 어른이 올 때까지 오기로 계속 울었다. 이 표현이 서툰 어린아이는 이것이 어쩌면 기회라고 생각했다.



 술자리를 마친 어른들이 나왔다. 길바닥에 누워 울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형이 너무너무 싫다고, 형이랑 같이 살기 싫고, 형은 맨날 나를 때린다고 울부짖었다. 형은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에게 사과했고 다시는 심부름을 시키거나 때리지 않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날 이후 3일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부모님은 나의 구조 요청 신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형제는 원래 다투면서 크는 거니까,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물을 떠다 주고, 라면을 끓여주고, 밥을 퍼주고, 국을 데워주고, 상을 펴주고, 치약을 갖다 주고, 컴퓨터를 켜주고, 꺼주고, TV를 켜주고, 꺼줬다. 짜증이 나서 하기 싫다고 하면 맞았다.



 12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의견을 말하거나 내 생각을 어필하면 난 결국 맞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알았다고 하며 시키는 일은 모두 하는 것이다.

 부모님한테 말해도 해결이 안 된다. 그냥 참아야 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렇게 무기력해져 갔다.

 형의 노예처럼 살았다.

 나는 형의 노예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서툰 방식으로 한 번 더 부모님께 구조 요청을 했다.

 말없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네 집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중학생이 갈 곳이 어디 있었겠나. 친구네 집밖에 없었다. 친한 친구네 집 전화번호는 부모님도 다 알고 있었기에 친구네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너 왜 집에 안 들어오냐"

 "집에 가기 싫어요. 집에 가면 형이 있잖아요. 형이랑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자야지..."

 부모님은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자야지라며 날 설득했다. 난 알겠다고 하고 집에 들어갔다.



 형은 영악해졌다.

 부모님이 있을 때는 나에게 아주 상냥한 어투로 잡일을 부탁했고, 내가 형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면 부모님은 형 편을 들었다. 형은 내가 나쁜 사람인 것처럼 만들었다.

 형 때문에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호소를 해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형이 나에게 시킨 일들, 나에게 한 욕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밥을 차리라고 해서 찌개를 데워 밥상을 차려줬고, 찌개가 미지근하다며 욕을 해서 그럴 거면 직접 차려먹으라고 했다가 맞은 일, 자고 있는데 뺨을 마구 갈기며 깨워서 라면을 끓이라고 한 일(군말 없이 끓여주고 다시 잤고, 시간은 새벽 2시였다.), 거실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던 형이 방에서 컴퓨터를 하던 나를 굳이 불러서 소파 앞 탁자 위에 있는 리모컨을 집어달라고 하는 일, 불렀는데 바로 튀어오지 않는다고 맞은 일. 하나하나 다 열거하려면 밤을 새야 할 것 같다.



 형이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하면 그때는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철이 들면 괜찮겠지. 그때까지만 더 참아보자.

 형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내 안에 그저 쌓여만 갔고, 이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는 부모님한테도 마음의 문을 닫았다.

 새벽에 자고 있을 때 식칼로 형의 배를 찌르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참았다. 그 정도로 형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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