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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Sep 13. 2021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렇죠?(2)

내가 나가야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형은 군대를 다녀왔다.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기로 하고, 남는 시간에는 알바를 하기로 부모님과 함께 정했다. 지금은 사라진 빠른 년생인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19살이었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성년자가 할 수 있는 알바는 한정적이었다.



 어느 날 형은 왜 알바를 하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찾고 있다고 했다. 형은 알바몬 사이트 한 페이지를 보여주며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열 개는 넘는다고 했다.

"안 넘을 걸"

"세 봐서 넘으면 어떡할래"

"넘으면 넘는 거지"

형은 손에 잡히는 것, 침대 위에 있던 바지를 나에게 집어던졌다.

"왜 또 혼자 지랄이야? 넘으면 넘는다고 한 게 그렇게 화나? 나 19살이야. 거기서 20살부터 구하는 알바 다 빼 봐 몇 개나 되는지"

 형은 대답은 하지 않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밤 10시였기 때문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부모님이 와서 형을 말렸다. 이거 보세요 부모님. 형이 이렇다니까요? 이게 사람 때릴 일인가요? 물론 생각만 하고 말하진 않았다.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와도 그냥 똑같구나. 한 번 더 절망하고, 체념했다. 곧 둘 다 성인인데, 다음에 또 그러면 경찰을 불러서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군대에 갔다 오고 전역을 했다. 형은 대학교 4학년이었고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내가 복학을 하고 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형은 항상 집에 있었다. 그게 싫었다. 같은 공간에 있기가 싫었다. 밖에서 시간을 때우다 새벽 1~2시가 되면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은 5층짜리 아파트에 4층이었는데, 밖에서 보면 TV가 켜져 있다는 걸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새벽 2시에 집에 와도 TV 불빛이 켜져 있을 때가 많았고, TV불빛이 켜져 있다는 건 형이 자지 않고 깨어있다는 뜻이었으므로, 나는 밖에서 MP3로 음악을 들으며 TV 불빛이 꺼지길 기다렸다가 집에 들어갔다. 거의 매일 그랬다. 아침이 거의 다 되어 자고, 늦잠을 자 수업에 결석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새벽 4시까지 기다려도 TV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TV를 켜놓고 잠들었나? 안 자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 새끼 면상을 보고 싶지는 않은데. 근처 공원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

 나는 지쳐갔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오후 2~3시가 되었고, 수업은 다 빠지고, 대학생활은 망했다.

 


 그날은 왜 그랬을까?

 그날도 TV불빛이 켜져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 얼른 자고 싶어 그냥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필이면 낮에 형한테 전화가 왔던 날이었다. 형이 나한테 전화를 한다는 건, 뭔가 시킬 일이 있을 때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형의 전화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게 화근이었다.



 집에 들어가자 형은 전화했는데 왜 전화를 받지 않냐고 했다. '네가 전화하는 게 뭐 시킬 때밖에 더 있냐. 너 같으면 너 같은 새끼 전화를 받고 싶겠냐?'라고 하면 또 싸우게 될 것이 뻔하니, 꾹 참고 그냥 전화 온 줄 몰랐다고 했다. 형은 부재중 전화보고 연락 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왜 전화했냐고 물어보는 게 다였다. 형의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짜증스러운 말투로 그래서 왜 전화한 거냐고 물었고, 형은 또 나를 때리려는 분위기를 풍겼다. 자주 맞아왔기 때문에 나를 때리기 직전의 분위기를 그때의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왜. 또 때리려고? 때려. 때리고 싶으면 마음껏 때려"

 때리라는 말에 화가 난 걸까? 형은 나를 패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맞았다. 막지도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몸에 힘을 빼고 그냥 맞았다. 얘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오늘이 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날이구나. 방에서 거실까지 끌려다니며 맞고 밀쳐지고 하는 소음에 부모님이 잠에서 깼다. 아버지가 형을 말리는데 형은 아버지를 밀치고 넘어 뜨리면서까지 나를 때렸다. 아니 이렇게까지 화가 났다고? 왜? 말리는 아버지를 밀쳐 넘어뜨릴 정도로? 결국 부모님이 형을 붙잡았다.

 형에게 분노조절장애 있냐고, 아빠를 밀어 넘어트릴 정도로 화가 났냐고, 그저 조금이라도 자기 심기 건드리면 무조건 주먹부터 나가는 게 아주 짐승 같다고 했다. 이 말에 형은 더 날뛰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나에게 얼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라고 했다. 형은 부모님이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도 나를 때리고 싶어 발정 난 개처럼 발작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나며 눈물이 났다. 20대 중반이 넘어서도 이러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경찰서 한 번을 안 갔을까? 나한테만 그러는 건가? 밖에서는 착한 사람인가? 밖에서는 온갖 착한 척을 다하고, 집에서는 노예가 감히 기어오른다고 생각해서 나한테만 그러는 거구나.



 나는 집을 나섰다. 어머니, 아버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폭력은 범죄라고요. 저 새끼는 그걸 모르는 것 같으니 제가 알려줘야겠어요. 나는 신발도 신지 않고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가까운 지구대로 향했다. 가족도 폭력으로 고소장 접수할 수 있나요? 물론 우리나라 경찰들께서는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래도 가족이다'라며 '좋게 좋게' 해결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경찰이 개입하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그놈도 깨닫는 게 있지 않을까? 경찰관 두 분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한 분은 집으로 들어가서 형을 만나고, 다른 한 분은 집 앞 계단에서 나와 함께 앉아 나를 위로해주셨다.



 집 안에서 경찰과 형이 얘기하는 소리가 밖까지 들렸다. 형은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때렸는데 왜 자기한테만 그러냐면서 너무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뭐가 억울한 걸까? 맞을 짓을 한 사람을 때린 것뿐인데 자기 보고 잘못했다고 해서? 나는 피해자 코스프레나 하는 여우 같은 놈이라서? 아직도 모르겠다. 결국 경찰은 형에게 어쨌든 그래도 때리지 말고 대화로 잘 풀어보라는 말을 하고 집에서 나왔다. 부모님의 얼굴을 보자 서러움에 울음이 터졌다. 서러웠다. 항상 내 감정을 숨기고 사느라 모르고 있었는데, 이게 바로 '서러움'이라는 거구나. 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 후에도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형은 때릴만해서 때린 것뿐이었고, 나는 형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집에 들어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집을 나가서 혼자 살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 그래, 집을 나가서 혼자 살자.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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