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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Sep 14. 2021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렇죠?(3)

고난의 연속

 대학교에 자퇴 원서를 내고, 알바로 모은 돈과 등록금 환불받은 돈을 가지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짐을 싸서 부산으로 향했다. 집은 인천이었는데,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어서 부산으로 정했다. 부모님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몰래 집을 나왔다. 편의점이나 공장에서 알바를 하며 월세를 냈다. 집이라는 곳이 원래 이렇게 좋은 곳이었나? 이렇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나? 지금까지 내가 집에 가기 싫었던 건 다 형 때문이었구나. 집에 오면 이렇게 좋은데 그걸 모르고 살았네.


 혼자 살기 시작하자 깨닫는 게 많아졌다. 지금까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하나씩 알게 되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 감정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남의 심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건드릴만한 말은 내가 손해보더라도 무조건 참고,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좀 더 행복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란 사람은 단점밖에 없는 인간쓰레기인데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는 거지?


 부산에서의 생활은 어떤 면에선 인생의 낭비라고 볼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첫 기회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평일에는 편의점, 공장 생산직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취미생활을 즐겼다. 보증금 100, 월세 25만 원 6평짜리 작은 원룸이었고 월급은 적었지만, 원래부터 씀씀이가 작은 편이라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1년을 그렇게 지내며 돈을 모아 보증금 500, 월세 28만 원 8평짜리 큰 원룸으로 이사도 갔다.


 1년 9개월간의 잠수를 끝내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형은 취직해서 집을 나갔으니 이제 들어오라고 하셨던 것 같다. 방 계약이 끝나고 2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냥 지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앞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대학교는 자퇴해서 졸업장도 없다. 내가 어떤 일은 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릴 때 막연하게 커서 뭐가 돼야지, 하고 상상했던 게 전부였다. 학교는 다들 가니까 그냥 갔고, 공부는 그냥 학교 가니까 했고, 남들 다 대학교 들어가니까 성적 맞춰 아무 데나 갔다. 그렇게 남들이 하는 대로, 누가 시키는 대로 살기만 하다가 그 길을 벗어나니 앞이 막막했다. 난 자신감도 없고 사회성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아무런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골라 아무 일이나 했다. 960점짜리 토익 성적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에 부쳤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오는 게 부담이 됐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서 항상 쩔쩔맸다.


 정확한 이유나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교에 재입학하기로 했다. 대학교 졸업장을 갖고 나면 좀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자퇴했던 대학교에 다시 입학하는 데는 등록금만 있으면 되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27살에 다시 대학교 1학년생이 되었다.




 대학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성적에 맞춰 골라 갔던 건축공학과는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1학년 때는 건축공학에 관련된 수업이 한두 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단 그냥 다녔다. 하지만 거의 7년 동안 하지 않았던 공부를 다시 하려니 따라가기가 벅찼다. 조별과제 때문에 조원을 만나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엄청났다. 앞에 나가서 발표라도 해야 하면 하루 종일 불안감에 시달렸다. 점심을 먹을 때도 100원 200원 따져가며 먹고 싶은 메뉴를 대부분 포기하는 것도 힘들었다.


 학교 다니는 게 그 정도로 힘들었던 걸까? 내가 나약한 인간이라 그런 걸까? 재입학 한지 2개월도 되지 않아 내 정신은 망가져갔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내 인생은 이미 망했고, 내 능력으론 대학교를 졸업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난 이미 망가진 사람이라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죽고 싶었다.


 살면서 이런 기간들이 자주 있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잠수를 타고 몇 개월씩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간들이 말이다. 자신에 대해 조금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게 병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나에게 병이 있는 게 아닐까? 정신과를 방문해 보기로 결심했다.


 정신과를 방문해 의사에게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의사가 노트에 '대학교 생활'이라는 단어를 썼던 건 기억이 난다.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얘기하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의사는 나에게 혹시 인터넷에서 자살방법을 검색해 본 적이 있는지도 물었다. 내가 왜 검색해 볼 생각을 못했지? 약을 처방받았고, 상담치료도 예약했다.


 심리상담을 하며 알게 되었다. 상담을 하기 전까지는 모르고 살았다. 내 마음의 상처가 이렇게 크고 깊은 줄 몰랐다. 내 마음을 살펴보려고 한 적도 없었다.

 과거에 내가 겪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있으면, 상담사는 그때의 내 감정에 관한 물음을 많이 던졌다.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하면, 생각 말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었다. 나는 '좋았다', '슬프다', '속상하다' 말고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상담사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대답해도 된다고 했다. 그 후로 감정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한참을 생각하다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상담사가 이끄는 대로 대답을 하다 보니 형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됐다. 노예처럼 산 것 같다고 얘기했다. 12살부터 내가 먼저 형에게 말을 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얘기도 했다. 길바닥에 누워 울었다는 얘기도 했다. 상담사는 어린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나와 분리해 놓고, 그 어린아이는 왜 그렇게 울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글은 지금 시점에서 쓰느라 '구조 신호'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난 그때서야 내가 어른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낸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 어린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펑펑 울었다.


 약을 먹고, 일주일에 1시간 상담치료를 받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고, 병원에 가는 것마저 귀찮아지고, 학교도 가지 않았다.

 상담치료의 부작용이었을까?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건 80%는 형 탓, 20%는 부모님 탓이라는 결론에 혼자 도달했다. 자신감이 없고,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문제가 생기면 피해버리는 것은 모두 날 괴롭힌 형 탓. 내가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부모님 탓.

 내가 이상해진 것이 내 잘못이 아니고 남 탓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너무 억울해졌다. 내가 너무 병신 같아서 살기가 싫어졌는데, 심지어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 공부해보겠다고 대학교에 갔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 못하겠다고 말할 자신도 없어서 부모님을 피해 다녔다. 항상 그래 왔다. 형을 피해 다녔던 것처럼 불편한 상황은 무조건 피하기만 했다. 내 입을 열게 하려는 사람들도 피했고, 내가 불편한 말을 해야 되는 상황도 피했다. 오후 늦게 일어나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밤늦게 부모님이 주무실 때 들어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충치가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 귀찮기 때문에 최소한의 자기 관리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랬다. 머리는 3~4일에 한 번 감았고, 양치는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했다. 어차피 죽어 버릴 거니까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매일 밤마다 집에 돌아오면 어떻게 죽을지 생각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할까? 목을 매달아야 할까? 강물에 뛰어들어야 할까? 지나가는 덤프트럭에 뛰어들어야 할까? 어떤 나라에 가면 '조력 자살'이라는 안락사가 합법이라던데. 돈을 모아 그 나라로 가야 할까? 내가 죽으면 부모님이 슬퍼하겠지?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이렇게 힘든데 내가 죽은 후까지 신경 써야 되나? 유서에는 뭐라고 쓰지? 인터넷에 자살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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