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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호 Sep 16. 2021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렇죠?(4)

내 잘못이 아니라서 괜찮아

 부모님이 내 방에 있던 정신과 약봉투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나를 불러 얘기 좀 하자고 하셨다. 나는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고 살기가 싫고 그래서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마음가짐을 잘 가져보라고 했고, 나는 그게 될 거 같으면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마음만 먹어서 되는 게 아니니까 병원에서 가서 약을 처방받아먹는 거라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마음가짐을 잘 가져보라고 했다. 답답했다.

 약을 먹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속 깊이 들어있는 말들을 내뱉으려고 하면 눈물이 나온다. 지금도 그렇다. 왜 그런 지는 잘 모르겠다. 내 감정들이 전부 눈물샘에 들어있어서 감정을 꺼낼 때 눈물이 같이 나오나 보다.


 그 후의 기억은 희미하다. 저녁에는 게임을 하고 새벽에는 자살 방법만 생각하며 그렇게 몇 개월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모아 놓은 돈이 다 떨어졌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었는데, 돈이 떨어지니 알바를 시작하게 됐다. 사람이 참 웃긴다.


 대충 재밌어 보이는 일을 골라서 했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일이어서 그랬던 건지, 같이 일하는 몇몇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랬던 건지, 그냥 괜찮아질 때가 되어서 그랬던 건지, 우울증에서 많이 회복되었다. 알바를 하고, (몇개월 쉬고) 건설현장 노다가를 하고, (몇개월 쉬고) 학원에서 엔지니어 속성과정을 배워 취직을 했다.

 

 그 사이 형은 결혼을 했다. 나한테 심부름을 시키지도, 욕을 하지도, 때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가끔씩 용돈을 챙겨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형이 좋아지진 않는다. 아직도 싫다. 지금의 내가 자신의 모습에 불만을 갖고 살아가는 건 다 형 때문이니까.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에 부모님과도 담을 쌓아서 부모님과의 유대감도 별로 없다. 난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냥 나를 낳은 부부, 그뿐이다. 그저 아들로서 명절과 생신에 현금을 조금씩 드릴 뿐이다.


 가족 구성원의 생일에는 주로 가족 외식을 한다. 형을 또 봐야 된다니, 난 끼고 싶지 않은데. 속으로만 생각한다. 화목한 가족 흉내를 낸다.

 얼마 전엔 형에게 아이가 생겼다. 형수님이 출산을 했다. 부모님이 아이를 보러 가기로 하셔서, 내가 운전을 해드릴 겸 같이 갔다. 부모님은 손주가 생겨 매우 기쁘신 듯하다. 난 조카가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역시 내색은 하지 않는다. 나만 참고, 나만 괜찮은 척하고 있으면, 우리 가족은 화기애애하다.


 연예계를 달구는 학폭 논란이 남 일 같지가 않다. 내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고, 난 형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피해자가 원하는 건 애써 잊고 있던 고통을 최대한 떠올리지 않게 해주는 것, 가해자를 보지 않는 것이다. 평생 형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비정기적으로 힘든 시기들이 이유없이 찾아온다. 수개월에 한 번씩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문득 생각하게 된다. 살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금 살아 있고, 죽기는 무서우니 그냥 사는 거다.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날들을 그냥 흘려보낸다. 그렇게 흘려보내는 데에 익숙해졌다.


 남들은 겉으로 보기에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불행한 순간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나처럼 내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보다 불행을 더 많이 느끼며 살고 있다. 나만 빼고 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내 삶을 버텨낼 수가 없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렇죠?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사회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내가 사회성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몰라도 괜찮다.

 나는 고장난 사람이고, 그래서 남들과 대화하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냥 듣기만 한다. 모든 반응은 속으로만 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온라인에서 활발한 사람인 척을 한다. 척? 척인가? 원래 활발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망가져서 그렇지.

 유치원 때는 생판 모르는 앞집 아이가 학종이로 종이접기를 하고 있길래 '안녕? 같이 놀자!' 하며 같이 놀았다. 중고등학생 때는 수업시간에 참여도가 높고 대답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가끔씩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때가 있다. 이건 내가 갑자기 초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고, 내 선천적인 성격이 나오는 것이다. 업무전화를 하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직장 동료에게 업무에 관련된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이 어쩌다가 된 것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연애를 포기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사람과 누가 연애를 하겠는가. 연애는 포기해도 된다. 괜찮다.

 결혼과 출산도 포기했다. 결혼은 연애와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혼인신고라는 제도 자체에 의문이 들어 포기했다. 내 아이는 착하고 바르고 상처 받지 않고, 받더라도 그걸 잘 극복할 수 있고,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키울 자신이 없다. 분명 내가 내 손으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건 한 사람을 불행의 구덩이로 빠트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출산(내가 낳는 것은 아니지만)도 포기했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자신이 망가졌다고 생각해도, 매사에 자신감이 전혀 없어도, 자존감이 바닥을 쳐도, 다른 사람의 외모나 성격, 능력을 질투하면서 부러워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될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다.


 그 무엇도 내 잘못이 아니니까 괜찮다. 내가 잘못 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자기합리화를 해도 괜찮다. 나는 나를 너그럽게 용서하기로 했으니 전부 다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면 숨통이 트인다. 그게 다 내 잘못이면 난 고통에 몸부림치며 서서히 질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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