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호 Sep 22. 2021

속 좁아도 괜찮아

취향 존중 좀 해주세요 제발

 나는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여기서 남들이란,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직장동료의 친한 동생, 친구의 아는 형 등이 내가 생각하는 '남들'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 보면 나의 친구들(기껏해야 3~4명)과 부모님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도 나에게는 그저 '남'일 뿐이다.


 직장동료끼리 서로 잡담을 주고받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과 관련돼서 말을 걸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먼저 말을 잘 걸지 않는다. 왜냐면 그 사람의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한 게 없다.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꼭 험담을 한다는 것은 아니고, 누가 어쨌다더라, 누가 저쨌다더라 하는 근황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누가 어쩌든 저쩌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소규모 회식(?) 자리에서 어느 이사님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셨다.

"저는 게임하는 거 좋아하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추리소설도 좋아합니다."

 그러자 이사님은 집에 처박혀서 만날 게임만 하고 그러니까 여자 친구도 없는 거라며, 활동적인 취미를 하나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내 취미생활을 내 돈 주고 혼자 즐기겠다는데, 그분은 거기에 대고 조언인지 비난인지 모를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나는 입을 닫았다.

 남들이 취미로 무슨 무엇을 하든, 불법적이거나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이상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누가 등산을 하든, 게임을 하든, 술을 마시러 다니든, 독서모임을 가지든, 내가 끼어들 부분은 아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도 이어진다.

 나는 다른 사람의 취미나 취향을 존중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술을 좋아하는구나. 이성을 밝히는 편이구나. PC방을 싫어하는구나.

 하지만 주변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 중엔 특히 게임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이 나의 경험적인 결론이다.


 존중이 없는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술을 강요한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마시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건강을 위해 금주 중이다. 맛도 없다. 흡연은 또 하는데, 흡연과 음주 중 적어도 한 가지는 끊기로 하고 술을 끊었다. 아니, 끊었었다.


 회식자리에 가면 나의 금주는 존중받지 못한다.

"한두 잔은 괜찮아."

"분위기 좀 맞춰"

"마시다 보면 늘어"

 나는 남들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는다. 나의 금주를 존중해달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건가? 왜 술은 꼭 다 같이 마셔야 하는 것일까?


 비흡연자에게 담배를 권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비음주자에게 술을 권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도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내가 너무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건가?


 내 주변에는 다른 사람의 취향을 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그분들의 논리는 이렇다. '남자가 화장하고 다니면 꼴 보기 싫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한다. 싫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 뒤가 문제다. '그러니까 너는 화장하고 다니지 말아라. (왜냐하면 내가 싫으니까)'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데, 문제 될 거 없지 않냐고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자기는 보기 싫은데 자꾸 눈에 띄니 그게 피해를 주는 거란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만약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걸음걸이가 꼴 보기 싫으면 어떡하지? 내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내 말투가 이상해서 사람들이 불쾌해하지 않을까? 내가 입은 티셔츠와 바지가 너무 유행과 동떨어져서 누군가의 눈엔 꼴 보기 싫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위의 저런 분들은 이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이해심이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속 좁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 좁은 사람이어도 괜찮다. 넓은 사람도 있고 좁은 사람도 있는 거지 뭐.

매거진의 이전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렇죠?(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