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는 이유에 대하여
"인간은 절대 혼자서 존재하지 않고 항상 타자들과 더불어 존재하는 존재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나는 인간 예찬론자다. 인간은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게 왜 필요한지 명확히 몰랐고, 그래서 학창 시절 만났던 대부분의 친구들을 스치듯 흘려보냈다.
심지어 사랑도 그랬다.
타인에게 기대하면 실망스러운 모습을 마주할 때 더 아프기 때문에,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 기본값이다.
덕분에 인간관계에서 어떤 일이 터져도 나는 화내거나 심하게 당황하지 않았다.
최근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한 달 넘게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지냈다. 이별의 슬픔보다는 만날 사람이 없었고, 나도 내 일이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3년쯤 알고 지냈지만 실제로 만난 건 10번도 되지 않는 지인(친구).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 드물게 꾸준히 책을 읽고, 생각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식사 후 비 내리는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분위기가 괜찮은 카페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그중 사랑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처럼 서로 다른 입장을 얘기했지만, 결국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혼자 돌아오는 길,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밀려왔다. 마치 인간을 만나는 본질적 이유를 가슴으로 이해한 듯한 기분이었다.
왜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그토록 열심히인지, 왜 소년만화를 보면 친구와 우정을 그렇게 찾아대는지.
즐거워서였을까? 혹은 지적 대화를 나눠서였을까?
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할까
실존주의 철학자의 대표 하이데거는 인간을 '자기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라 보며(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 존재), 인간은 절대 혼자서 존재하지 않고 타자와 더불어 존재한다고 봤다.
하지만 인간사의 대부분의 관계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 니체가 말한 '무리에 끼어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며 사는 군중'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내가 인간관계, 모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그러나 실존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그것과는 다르다. 이 관계들은 서로의 존재를 진심으로 마주하고, 그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이해까지 확장되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의 바람이나 태양은 그것이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기도 하고 득을 주기도 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바람, 태양, 나무, 돌멩이 같은 자연의 요소조차도 그 자체로 의미를 갖기보다는, 인간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것들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 의미를 띤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도구’로, 혹은 ‘의미 있는 존재자’로 드러난다.
마치 인간관계에서도 상대가 의도했든 아니든, 그 존재나 말 한마디가 나에게 감정이나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그런 관계가 진정한 의미를 갖는 실존적 만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이 감정 역시 일시적인 착각일 수도 있다. 한 달 넘게 혼자 지내서 일 수도, 분위기 좋은 카페와 비 오는 날씨가 만들어낸 일종의 감정 착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착각일지 아닐지 모르는 이 감정을 조금 더 구체화해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간관계에는 진심을 두려 한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