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경험보다 오래 남는다.

기억하는 자아가 만든 경험의 기억을 이용한 습관 설계에 대하여

by 지능의 여백
나는 성격이 모가 났다. 그래서인지 사랑니도 모나게 자랐다.

교정을 하기 전 사랑니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고, 총 4개의 사랑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아래쪽 두 개는 90도로 누운 채 잇몸 깊숙이 박혀 있었다. 겁이 잔뜩 난 나는 발치 전에 수많은 후기를 찾아보며 병원을 열심히 검색했다.


처음 찾아간 곳은 홍대에 있는, 사랑니 발치로 유명한 병원이었다. 놀랍게도 시술은 단 10분 만에 끝났지만, 끝날 무렵 느낀 극심한 통증은 예상 밖이었다. 시술 후에도 통증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래서 반대쪽 사랑니를 뽑을 땐, 같은 병원에 다시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신 동네에서 평판이 좋은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이번엔 발치에만 1시간 20분이 넘게 걸렸고, 심리적 압박과 육체적 고통도 상당했지만, 마무리 무렵에는 통증이 거의 없었고 시술 후의 통증도 훨씬 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두 번째 병원에서의 고통의 총량이 첫 번째 병원에서보다 더 컸던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누군가 사랑니 발치를 고민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두 번째 병원을 추천할 것이다. 고통은 길었지만, 마지막이 아프지 않았던 곳.

왜 그럴까?


이 질문의 답은 우리의 '기억하는 방식'에 있다.

우리가 겪은 경험은 결국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경험의 전체가 아닌 '정점'과 '종점'에 의해 판단된다. 이른바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점-종점 법칙'이다. 경험 중 가장 강렬했던 순간(정점)과 마지막 순간(종점)의 평균이 그 경험의 전체 인상을 좌우한다.


이 법칙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바바라 프레더릭슨의 동료들이 주도한 이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두 가지 조건에서 손을 얼음물에 담그는 실험에 참여했다.


첫 번째 조건에서는 왼손을 60초 동안 차가운 얼음물에 담갔다.

두 번째 조건에서는 오른손을 90초 동안 담갔는데, 60초가 지난 뒤 약간 따뜻한 물을 섞어 마지막 30초는 온도를 1도 높였다.


이후 실험자는 물었다. "둘 중 다시 해야 한다면 어떤 조건을 선택하겠습니까?"


대부분은 놀랍게도 두 번째, 더 오래 손을 담갔던 실험을 선택했다. 이유는 마지막 30초의 약한 온기가 기억을 조작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흐름 속에서 마지막 인상이 전체를 결정짓는 착각을 만든다. 그리고 이 착각은 우리의 선택, 행동, 기억을 바꾼다.


우리가 보는 연극이나 영화도 그렇다. 중반까지 아무리 뛰어났더라도 결말이 나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평가를 주지 않는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루틴이라도 마지막 세트가 너무 고통스러우면,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연애도 그렇다. 중간에 힘든 일이 많았더라도 마지막이 따뜻하게 마무리되면 기억은 미화된다. 반대도 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보다 기억에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며 살아간다.


이 원리를 습관 설계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꾸준한 운동은 지속하기 어려운 습관 중 하나다. 시도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바쁜 일상 속에 육체적 활동을 주기적으로 끼워 넣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루틴을 이렇게 구성해 보면 어떨까?


중간에는 강도 높은 탑세트(가장 높은 무게, 힘든 운동)를 배치하고, 마지막은 가볍고 즐겁게 마무리한다. 그러면 운동의 '끝맛'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다음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반복하기 쉬워진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초반엔 싫어하는 과목이나 어려운 작업을 배치하고, 마지막은 좋아하는 과목이나 간단한 복습으로 끝내자. 그럼 다음 공부 시간이 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이런 방식으로 루틴을 짠 이후, 거의 매일 운동을 나가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꽤 효과적이었다.

끝이 전부는 아니지만, 전부처럼 느껴진다.


삶에서 고통스러운 경험이든, 기쁜 경험이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기억은 때때로 우리의 행동, 선택, 습관까지 지배한다.


사랑니 발치의 경험이 내게 알려준 것은 단순했다. "얼마나 아팠는가"보다 "어떻게 끝났는가"가 더 깊이 남는다는 것.

그러니 무엇을 하든, 마지막은 조금 더 부드럽고 스무스하게 마무리해 보자.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작심삼일을 깨뜨리는 핵심 키가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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