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아이디어 회의라는 타석
한화는 만년 꼴찌로 유명하죠. 하지만 팬심을 유지하는 많은 팬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저는 야구광은 아니지만 적절한 관심을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기도 했고 오랜 시간 동안 엘지라는 회사에 적을 두었다는 이유 때문에 자연스럽게 엘지팬으로 살아왔습니다.
엘지 경기와 더불어 요즘은 한화의 경기 결과를 자주 봐요. 팬도 아닌데 말이죠.
그 이유는 다큐멘터리 때문입니다.
2020년~2021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부임하면서 팀을 리빌딩하는 과정을 담은 [클럽하우스]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어요. 6회로 만들어진 다큐인데 꽤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있는데, 연패들이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수베로 감독은 어린 선수들을 모아 놓고 질문을 합니다. "타석에 들어설 때 내가 오늘 뭔가 일을 내보겠다는 자세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냐"는 물음이었어요. 대부분의 선수는 손을 들지 못합니다.
수베로 감독은 말해요. 한국에서 야구를 배워온 어린 선수들은 자신감보다는 좌절하는 법을 먼저 배운 거 같다고요. 미국에서 야구하는 어린 선수들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커온 우리는 일이 잘 안 될 때, 더 잘해보고자 하는 자신감이 아니라 역시 잘 안 되는구나 하는 좌절감이 친숙하죠.
경쟁 비딩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건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솔루션을 찾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어떤 클라이언트도 넉넉하게 시간을 주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늘 우리는 시간에 쫓기며 하루하루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합니다.
여느 때처럼 경쟁 PT를 준비하는 회의실에 앉은 동료들의 마음이 궁금해졌습니다.
동료들에게도 수베로 감독과 같은 질문을 하면 똑같은 반응이지 않을까?
매번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고 들어오는 동료들은 자신감에 차 있을까? 아니면 좌절감이나 두려움이 더 클까?
뻔한 답일 거 같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석에서 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을 했습니다.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느냐에 따라 달라요"
많은 고민을 했고 그래서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면, 빨리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할 만큼 회의가 기다려진다고요.
저는 이 동료의 말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연습을 많이 한 선수는 타석에 들어서는 마음이 가볍고 두근두근 설레지 않을까?
남들보다 조금 더 고민의 시간을 투자해서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아이디어 회의 자리가 기다려지지는 않을까?
타석에 들어설 때 그러니까 우리 업에서는 광고 아이디어를 갖고 회의에 들어올 때 얼마나 더 고민하고 준비했는가가 결국 자신감과 좌절감을 가르는 기준이 될 거라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러니 남들 보다는 좀 더 시간을 내서 나만의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노력해"라고 말하진 않을래요. 그건 본인이 느껴야 하지 강요나 권유로는 이뤄낼 있는 영역은 아니니까요.
제가 해야 할 일은 더 노오력해라가 아니라 리더로서, 동료들이 안타를 치지 못해도 다음에 잘할 수 있다는 믿음과 무엇이 문제여서 안타를 치지 못했는지 알려주는 일일 테죠.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도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강타자라 불리는 3할 타자는 7번 타석에서 아웃을 당합니다. 그래도 엄청나게 잘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회의에서 내는 아이디어 중 7~8번은 소위 남들에게 까일 거예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1~2번이라도 멋진 장타를 치거나 꼭 도움이 되는 안타를 칠 때가 있을 테니까요.